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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Dec 02. 2021

아버지의 일기 #8.트라우마

잊어버렸던 기억

"...진짜 돌아버릴 것 같다고!"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 갑자기 돌변한 아들녀석의 눈에는 초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씩씩거리는 것인지, 흐느껴 울고 있는 것인지, 그 어딘가에서 헤메이고 있는 아들녀석도 자신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몸이 바르르 떨리는 것 같기도 하고, 욕으로 가득한 목구멍을 꾸역꾸역 집어 삼키며 버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상황이 잘 인지가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아들녀석을 끌어 안아 진정시키는 것 조차 겁이 났다. 덜컥. 내 심장은 온데간데 없고 가슴 깊이 비어버린 자리는 내 몸을 그리고 마음을, 있는 힘껏 끌어당겨댔다. 나는 지금 무엇이 겁이 나는 걸까. 처음 보는 아들 녀석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내가 방금 했던 행동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걸까. 한 손은 아직도 주먹을 꾹 쥔채, 슬며시 팔을 내리며 아내로 시선을 옮겼다. 아내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채로 그 자리에 서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아들녀석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으어어어! 으아아아악!끄어어어..."


저 멀리서 아들녀석의 흐느낌이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고통 속에 울부짖는 영혼의 안타까운 절규가 내 귀를 맴돌아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선명하게 그리고 더 날카롭게 나를 찔러 깨웠다. 


"아야, 아들아. 아야. 정신 차려 봐봐. 왜 그냐. 왜 그냐잉? 읭? 아들!"


겨우 현실로 돌아온 나는 힘겹게 아들을 붙잡고 흔들어댔다.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 뭘까.


아들녀석은 이내 바닥으로 꼬꾸라져 펑펑 그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울어대기 시작했다.


"휴..."


마음이 한 켠으로는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아들 녀석의 등에 차마 손을 올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처다만 볼 뿐이었다.


"알았다. 알았다. 안 할게... 안 할게... 안 할 테니. 진정 좀 해봐라 아들... 흐흑.."


아내는 옆에서 같이 주저앉았다. 한 손으로는 얼굴을 감싸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들 녀석의 팔을 부여잡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이내 내 머릿속으로 스쳐가는 한 장면. 


아니야. 아니야. 아닐거야.


흐릿하게 머릿속을 채워 나가는 그 때의 모습은 터질 것 처럼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고도 결국 선명하게 그 때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속에서의 아내의 절규, 내 모습만큼은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지금처럼 무엇인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고, 아내는 구석에 쭈그려 지금처럼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고 있었다. 그릇에 깔려 비명조차 내지 못하는 온갖 음식들과 그 위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뒤짚힌 밥상. 한쪽 구석을 보니 아들녀석이 안방 문 뒷편에서 잔뜩 겁에 질린 채,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나는 곧 화를 못이기는 척 집 밖으로 나와버렸다. 너무 화가 난다고 생각했다. 지금와서 무엇때문에 화가 났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너무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내가 창피하다. 그런 행동을 하고도, 이런 모습을 보이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 처럼 그 때의 부끄러운 나를 감춰놓았는데. 그 시절을 '화' 라는 감정 안에 꾹꾹 담아놓았었는데. 결국 이렇게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결국 다시 이렇게.


아들 녀석이 지금 본 것도, 그 때의 나 일까. 아니야. 아닐거야. 그렇게 오래전 일을 지금까지 저렇게 자지러질 정도로 반응할 리가 없다. 


"아들아, 뭐때메그냐? 응? 왜? 먼 일이여..."


아닐거야. 그럴리 없다.


나의 바램은 철저히 짓밟혔다. 아들 녀석은 그 때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쏟아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진짜 미칠 것 같다고, 나는 지금도 누가 소리를 지르거나 큰 소리만 들리면 그 때가 생각나.  가슴이 뛰어서 진정이 안돼. 진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오!"


"그래...? 나는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은디...진정해봐라. 응? 소리 지르고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의견 충돌이여. 우리 싸운거 아니여어. 응?"


나는 무엇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나를? 내 기억을? 아들 녀석의 기억을? 대체 무엇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저런 말들은 참말로 내 가슴을 거치지 않고 툭툭 잘도 입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럴라고, 니를 오라고 한 것이 아닌디. 나가 저 말을 할라고 한 것이 아닌디. 그런것이 아니다 아들아. 나가 그랄라고 그런것이 아니고. 그냥 어쩌다봉께 그렇게 되브렀당께. 안 있냐잉. 


입을 떼기도 전에 아들 녀석은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쿵! 삐리릭'


문이 닫히자, 아내가 짧은 목소리를 토했다.


"어쯔끄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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