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추월차선을 읽고
경제적 자유
나는 부를 이루고 싶다. 많은 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저 버린 적이 없다. 다만, 돈이라는 것이 너무 속물 같아서 수많은 그럴듯한 핑계들과 고귀한 단어, 문장들로 그 욕망을 가려왔다. 매주 로또를 사면서도 안돼도 이 돈은 좋은 일에 쓰이는 거라는 자위. 돈은 내가 버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큼 받아가는 거라는 거대한 종교적인 방패 뒤에 나는 조용히 숨어 있었다. 제주에서의 삶을 꿈꾸면서도, 그곳에서의 벌이를 확신하지 못하는 나는 '돈을 못 버는 대신, 꿈꾸던 삶을 이뤘잖아' 라며 매일매일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하고 있었다. 먼발치에서 돈을 흘겨보던 나에게 이 책은 정신적인 자유를 선물해 주었다.
나는 왜 그동안 돈이 마치 악의 상징인 것처럼, 뱀이 하와에게 건네던 선악과처럼 생각하고 있었을까. 이 책에서도 사실 돈 그 자체는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내 인생의 목적은 가족, 자유, 행복 같은 보다 고귀한 것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고귀한 인생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를 이루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내가 돈을 벌려고 몰두하지 않을수록, 내 인생의 시간표에서 돈으로부터 멀어져 자유가 많아질수록 내가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시간들은 내가 스스로 내 인생을 행복하다고 인지하게 만들어 줄 것임에 틀림없다.
경제적 자유
결국 우리는 돈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전반을 통과하는 개념이다. 돈으로 멀어져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돈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삶이 더 이상 돈에 매몰되지 않는 상태 말이다. 내가 회사에서 업무를 하는 것은 결국 돈이 가장 클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그 자체로 큰 가치가 있고, 사람이라면 응당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법 하지만 결국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받지 못한다면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거리를 찾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일이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가치를 넘어서 자아를 실현해 주고 오랜 꿈을 이루어 주는 매우 상위의 고귀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충분히 그 가치가 돈을 치환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는 내 일이 좋다. 하지만 내 꿈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이 충분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나는 당장 다른 일을 찾을 것이다. 결국 내가 찾아야 하는 건, 돈으로 부터 멀어지는 방법이다.
이 책은 논란이 될 만한 개념들을 꽤나 많이 강조하고 있다. 인생을 아무런 재무 계획 없이 허비하는 인도, 재무계획은 있지만 해방되지 못한 주행차선, 꽤 좋은 재무 계획과 자동화로 내가 일 하지 않아도 돈이 일하게 해 주는, 경제적 자유를 얻은 추월차선. 인생이라는 아주 복잡하고 거대한 개념을 오로지 '돈'과 '부'의 개념으로만 나눠버린 저자의 방식에 나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논리를 쓰레기 같다며 반박하고 비난하는 데에 내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이 책에서 인생을 차선에 비유한 것은 '부'를 설명하기 위해서 오로지 '부'의 기준으로만 인생을 나눠본 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의 기준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의 결론을 '사업을 해라'로 정의하고 있는 독자들이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업을 했을 때 망할 수도 있다는 건 왜 알려주지 않느냐.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왜 설명하지 않느냐.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라며 날이 선 후기들도 꽤 볼 수 있었다. 마치 하와이는 풍경이 좋아요. 멋진 풍경을 보려면 하와이로 가 보세요.라고 말해준 사람에게 왜 비행기 표가 비싸다고는 말해주지 않느냐, 안 좋은 날씨를 피하는 방법은 왜 알려주지 않느냐. 하와이를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라며 불평하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이 책의 결론은 물론 '사업을 해라'가 맞다. 그러나 '당장' 사업을 하라거나 '꼭' 사업을 하라는 이야기는 담겨있지 않다.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하면서 그 실현법이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 자유가 실현될 거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똑똑히 알고 있지 않나? 내 월급은 아무리 많이 받더라도 회사가 정해놓은 급여 체계 이상을 받을 수는 없다. 조금 더 받거나 특별 대우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내가 결정하지 않고 내 상사가 결정하게 되어있다. 나는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 부당한 것 같은 업무지시도 견뎌가며 일을 하지만 그렇게 일한다고 해서 내 고과가 상위로 확정된다고 그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내 상사도 결국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이태원 클라스에서 박서준 님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결국 우리가 살고 싶은 인생은 이런 것 아닐까. 내 가치를 내가 평가하는 것. 그럼 사업을 한다고 해서 내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걸까? 사업도 결국엔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 것일 뿐이다. 사업도 결국엔 내 가치를 결정해 주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 가치 평가를 위한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있고, 그 범위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 어떤 시스템이 정해 놓은 바운더리가 안정적일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나를 시스템에 가둬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 책이 불편하면서도 다 읽고 나서는 뭔가 틀에 박혀있는 내 생각을 깨 줘서 희열을 느꼈다. 나는 월급쟁이다. 시스템에 속해서 '그들'의 평가를 받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이 정해 놓은 바운더리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그런 나를 부의 가능성이 0에 가깝다고 정의해 두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동시에 사실이지 않나? 책을 읽는 내내 꽤나 불편했다. 언젠가 용돈이 다 떨어져 간신히 생활을 이어나가던 나에게 누군가 '그지냐?'라고 장난을 쳤을 때의 그 불편함이 떠 올랐다. 그때 내가 정말 돈이 있었더라면 그 말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을, 굳이 입 밖으로 스스로는 꺼내지 않고 있던 그 단어가 나에게 씌워지자 몰려오는 민망함과 모멸감, 자괴감, 열등감이 폭발했던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부를 추구하는 행동이 결코 그릇된 행동이 아님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말고 '개념'을 선사해 준 것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경제적 자유
그리고 그 뒤에 숨은 내 인생의 통제권.
책을 읽고 나서도 공식 따위는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저자가 제공해 주는 공식들을 외운다고 해서 내가 사업을 하고 또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는다. 삶은 각기 다 다르기 때문에. 그러나 통제권 하나만큼은 가슴 깊이 새길 수 있었다. 나는 부를 이루어 나갈 것이다. 경제적인 자유를 실현해 나갈 것이다.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 인생의 통제권만큼은 내가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