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독] 14.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말씀과 교제하는 것으로 가르침이 된다

by 김응수
“모세가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백성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이렛날에도 그것을 거두러 나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출16:27)


하나님의 명령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좌향좌! 우향우! 뒤로 돌아 갓! 하면 꼭 다른 생각하다가 반대로 했던 경험이 생각난다. 하나님 말씀도 훈련이다. 하라고 하는 데로만 하는 것이다. 거룩한 것이 어렵고 심오한 것이 아니었다. 쉬운 것이었다. 하지만 잘 안되었던 것은 말씀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어렵게 해서 그렇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믿음의 교제가 필요하다. 특히 강단에서 사명을 받고 그 사명을 따라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과 교제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무조건 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확성기로 강단을 차려 두시고 말씀을 전하지 않으셨다. 말씀이신 그분이 사람에게 오셔서 육신이 되셨다. 이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지금도 우리는 성령과 교제하고 있다. 그렇지만 교제는 단지 노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아시고 간섭? 하실 수 있다. 이것이 교제다. 나를 모르시는 분이 아닌 매일 보듯 잘 아시는 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고 원하시는 것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이겠는가.


그러나 안타까운 것도 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요즘은 강단의 말씀이 온통 해당 본문에 대한 해석뿐이지 ‘가르침’이 없다. 즉 교제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가르침은 곧 교제다. 서로 교제가 돼야 가르침이 통한다. 그런데 근래 느끼는 것은 유튜브도 많아졌고 정말 찾고자 한다면 말씀을 해석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많아도 말씀대로 산 것을 나누거나 그 말씀을 내 삶에 가르침으로 주시는 말씀을 듣기 어렵다. 이것이 잠언이 말씀하는 교훈이라 생각한다.


말씀을 듣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 이렛날에는 거두지 말라 했으면 그래야 한다. 혹시? 하고 내 뜻대로 하면 안 된다. 교제 곧 가르침이 필요하다.


#어성경

이 글은 ‘어 성경이 읽어지네’ 의 생터성경사역원에서 하는 성경 통독방에서 1년 1독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매일 읽고 나눈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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