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가장의 무너짐

허우적

by Juan Lee

위태위태 하더니 결국 사달이 났다.

동훈.
나보다 열살은 어린 내 팀원.
지난 삼년을 함께하다가 얼마전 승진한 중간 관리자.
이십대 중반에 결혼하고 육아를 시작한 남편이자 아빠 라는 점과
집-회사 외에는 신경쓸 겨를도, 뺀질거릴 꾀도 없다는 점에서
동훈이는 여러모로 10년전의 나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듯 보였다.

회사사람들에게 결혼이나 육아에 대해 쉽게 생각을 비추지 않는 나는,
동훈에게는 종종 '나는 그때 이랬다'' 며 그 시절 내 못난 점을 털어놓곤 했었다.

그렇게 지난 십년간 내가 걸어온 길을 묵묵히 걷는 것 같았던 동훈은

최근 별안간 내가 걸어보지 앉은 길로 들어섰다.
지난 주 동훈의 직속 상사로 부터 받은 보고 내용은 짧막했다.

동훈씨 가정에 경찰이 개입했다고 합니다.
당분간 업무에 집중 못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주 대략적인 보고였지만 그 사안에 대한 팔로업을 지시하지 않았다.

그냥 머릿속에서 그려졌기 때문이다.

이제 막 서른 언저리의 새내기 부부의 연년생 육아
빚은 안지겠다는 고집으로 그 달 수입에서 빠듯하게 꾸려가는 가계
승진에 대한 잠깐의 기쁨이 증발된 곳에 남겨진 책임감
그 무게를 견디려는 압박감이 야근으로 이어지며 소원해지는 가사분담
점점 벌어지는 서로의 입장
사소하지만 해소되지 않는 잦은 부부의 다툼
서로의 이해만 얘기하며 날선 채 끝나는 대화
충족되지 않는 서로에 대한 기대
그 반복...
그리고 남편도 아내도 '희생' 이라는 키워드에서 차오르는 억울함과 분노, 우울의 감정들.


사실 동훈은 한달 전 이런 감정기복을 내게 고백한 바 있고,

나는 정신과에 가서 상담해보고 감정기복을 조절하는 약을 처방받기를 권장했다.

그 한시간 정도 여러 말을 해준것 같다.


"지금은 서로 입장을 헤아려줄 만큼의 여유가 없는 시기야."
"아내에게 (너의 기준에서 최소한 이라고 생각하는) 기대 조차 갖지마."
"아내에게 너를 이해해달라는 기대를 갖는다는 것 자체가 실망이나 서운함이 되서 돌아올거야. 지금 아내분은 그런걸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없을 거야."
"아내와 대화로 매듭을 풀려고 하기보다는, 그냥 아내의 힘듦을 알아 주기만 해도되."
"동훈이 너도, 아내분도 다 잘하고 있어. 그 시기는 대가리 땅에 묻고 존버해야한다."


그 얘기를 해주던 순간을 돌아보면
내가 붙잡고 절규하듯 얘기한 대상이 동훈이었는지, 10년전의 나 자신이었는지 모르겠다.

동훈은 지금 접근 불가 조치로 아내와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며 출퇴근을 하고 있다.
나도 사무실에서 동훈과는 인사만 하고 아직 별다른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라고 했지만,

그 시절의 나 역시 디딜법한 한끗차 였으므로 누가 누구에게 뭐라한단 말인가.
내 입에서 나올 질책도 위로도 공감도 그 어떤 말도 다 위선 처럼 느껴졌다.

나는 동훈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10년이나 앞서 그 길을 걸었고
어쨋든 존버해내서 다음 스테이지를 깨나가고 있음에도,
지금의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때는 본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진짜 알고 말하는 건가 싶은 사람들 처럼
나도 숨쉬듯 상투적인 표현의 위로나 조언을 뱉어낼 수 있다면 어땠을까
쉽게 쉽게.

지금 내 앞에 무너진 10년 전의 나에게 해줄 어떤 말도 찾지 못하고 있다.

너도 허우적 나도 허우적
허우적 허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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