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성과 외향성의 콜라보
내 안의 내향성과 외향성.
사회생활을 하며 그 둘을 점점 능숙하게 '설정 변경' 해왔다.
내향성은 조직체계를 세심하게 설계하고 계획을 짜고 사려깊은 심사숙고를 할 때,
외향성은 성과를 위해 팀원들을 고무시키고 리더로서의 과감한 결단을 보여할 할 때.
사실, 난 내향적인 성향이 외향성 보다 훨씬 짙다. 거의 80::20 정도?
회사 동료들에게 20년 가까이 한번도 바뀐 적 없는 내 MBTI가 'I' 라고 하면 열에 여덟은 “진짜요? I요?” 하고 놀란다. 이 정도면 괜찮게 설정 변경 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은 내 외향성이 한 몫 해줘야하는 날이다.
여러 이유로 팀의 전반이 원활하지 못하고 팀분위기가 낮아진 요즘을 환기하고자 팀 점심 자리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리에서 내 역할은 식사를 다 마쳤을 때 즈음 한 타이밍 잡아서 간단한 스피치를 하는 것이다. 메세지는 간결하되, 리더로서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며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야 한다.
11년차 운영관리자로서 수백번을 해와서 익숙하고, 잘하는 편이다.
슬슬 내 외향성을 세팅하고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문득 낯선 것이 고개를 든다.
내향성이었다. 업무적인 내향성도 아닌, 그보다 더 깊은 여행자적 내향성.
내 존재를 지우고,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던 혼자 여행할 때의 그 모드.
"아, 아무 말도 하기 싫어. 조용히 사그러들고 싶어..." 라는 읊조림이 마음에 가득 들어찼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했던 그 스피치 내용을 지금와서 복기해보면, 난 직감적으로 알았던것 같다.
내가 뱉을 말에 힘이 충분히 실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리더의 스피치가 필요한 시점이었음은 분명했지만, 내가 꺼낼 실체적 카드는 없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 짧은 순간 본능적으로 준비한 스피치를 팀의 기세를 몰아올리기 보다는 현재 힘든 상황에 공감하는 내용으로 바꿨고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결국 외향성은 제 몫을 해냈고,
순서도 아니었는데 나 구하겠다고 슬며시 고개를 든 내향성에게도 고맙다.
두 마음의 완벽한 콜라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