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을 읽고 : 흐릿해진 외부인의 경계에서
『노동의 배신』은 "노동 → 성실 → 성공"이라는 공식을 믿어온 자본주의 사회,
그 중에서도 가장 선진화된 국가인 미국에서,
노동이 오히려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좀먹는가를 파고든 현장 취재 보고서 입니다.
이 책은 작가가 저임금 노동자로 취업하고 그 수입만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쓴 현장기 로서,
시기는 1998년~2000년,
마침 요즘 제가 공부하는 미국 자본주의의 여러 사건들이 겹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힐빌리의 노래』 - 오일쇼크 이후 제조업 하락으로 중산층 쇠락 (1970~1990년대)
『Pain killer』 - 퍼듀 사의 옥시콘틴 사태로 미 전역이 마약진통제 중독 (1996~2010년대)
『자본주의 그 러브스토리』 -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미국 중산층 붕괴 (2007년 ~)
아시다시피 제가 일련의 사건들에 관심을 갖게된 계기는
지난 미국여행에서 거리에 즐비했던 부랑자들을 보며 '그들은 어떻게 존엄을 잃게 되었는가' 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존엄 상실의 범주와 사유가 단지 '부랑자' 혹은 개인의 일탈' 에 국한되지 않는다는걸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애팔래치아 산맥 에서 중서부로 힘들게 이주하여 일군 삶의 터전에서 잠깐의 제조업 황금기가 쇠락으로 이어지면서 황량해진 러스트 벨트. 그 이후 공허해진 삶을 마약과 복지정책에 의존하며 이어나가는 백인 노동자와 그 다음 세대의 이야기 까지는 '그렇구나..' 했습니다. (힐빌리의 노래)
하지만 이 책은 지금 이 시대의 동부 서부 중부 할 것 없는 미국 각 도시의 백인 저임금 노동자들을 조명합니다.
실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자본주의 특유의 문법은 복지수급자들에게 고문이자 학대로 표현되는 '복지시스템의 헛점' 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게으르고 저축은 하지 않고 수입에 비해 많은 지출을 하며, 자기관리를 하지 않아 뚱뚱하고, 돈만 생기면 마약을하고, 복지세금만 축낸다는' 합의된 편견으로 그들을 취급해왔습니다.
그에 반해 작가의 체험은 그들 대부분이 노동을 아주 성실히 (투잡은 기본) 수행하고 있고 모두 수입과 지출사이에서 치열하게 존엄의 최소한을 찾아보려 하지만 하루 8시간~14시간 머무는 그들의 거친 노동환경과 빈약한 보상 그리고 부를 쌓은자에게 맞춰 설계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그런 시도 자체를 아주 부질없게 느끼게 한다고 말합니다. (자꾸 반복하지만) 우리와 동시대에, 미국에서 말입니다.
작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저임금 노동자로서 실전 생활을 낱낱이 기록하며 한편의 생존 다큐멘터리를 보여줍니다. (참고로 미국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5달러. 2009년 이후로 쭉 동결. 미국의 물가 특히 집세는 미쳐날뜀) 아래는 작가가 청소부, 웨이트리스, 월마트 물품정리원, 노인요양사 등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로서 고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면서 신음처럼 뱉은 독백들 입니다.
(청소부로 불려간 저택에서, 누수되는 벽에 당혹스러워 하는 집주인을 보며....)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르시아산 카페트를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 입니다.'
"직업군으로서 청소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이고 우리가 보이게 되는 경우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뿐이었다."
"누구도 우리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우리에게 일은 우리가 사회에서 '왕따' 로 전락하지 않도록 구원해 주는 수단일뿐이었다. "
먼저 지난 제 글에서는 흔치 않았던 작가에 대한 경의를 표합니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매번 외부인으로 발만 동동 구르며 '그렇다고 내가 가서 내부인이 될 수 는 없잖아' 라며 합리화 하던 내 뒷통수를 얼얼하게 실천하신 분. (최근 근황이 어떤지 보려고 검색해봤는데 돌아가셔서 뒤늦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흐릿해진 외부인의 경계에서 저는 아래를 다짐해봅니다.
1.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당연한 존재로 여겨지며 노동하시는 분께 감사하다는 표현을 아끼지 말기. (단, 선민의식이나 동정이 아닌, 같은 노동자로서 내게 편리를 주시는 것에 감사함을 표현)
2. 이용자의 탈을 쓴 노동자 (관리자) 로서 혹시 내 팀원들이 노동하는 와중 그들의 존엄이 좀 먹히는 상황이 없는지 좀 더 유심히 살필 것.
3. 나 역시 '노동' 이 내 삶의 전부인양 착각하며 내 스스로 존엄을 좀먹는 것을 경계할 것.
작가님이 온 몸으로 써내려간 이 책 덕분에, 저는 '바라보고 기억하는 것 만이 할수 있는 전부라고 믿어왔던 외부인의 자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언가를 직접 해봐야겠다는 다짐도 하게되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작가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