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인들의 자긍심과 긍지의 날, 5월 5일
매년 5월 5일을 남미 언어로 “씽코 데 마요” (Cinco de Mayo)라고 부르는데 미국 내를 포함해 전 세계에 살고 있는 멕시코인들이 이날을 커다란 축제날로 즐기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 등지에 사는 멕시코계 사람들에게 이날은 비록 오랜 식민지생활을 마무리 한 날은 아닐지라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타향살이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그들만의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날임에는 틀림없다. “씽코 데 마요”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또 하나의 인류역사를 살펴보자.
[태풍] 선생님, “씽코 데 마요” 가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인가요?
[해월] 태풍이도 물어보네! 흔히 “씽코 데 마요”를 멕시코의 “독립기념일”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날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날이지. 한 가지 알 것은 멕시코도 미국과 같이 독립기념일을 독립을 쟁취한 날이 아닌 독립을 선언한 날로 기념하고 있어! 그래서 멕시코의 독립기념일은 9월 16일이야!
[태풍] 그럼 “씽코 데 마요”라고 부르는 5월 5일은 무슨 날이에요? 한국처럼 어린이날은 아닐 테고요!
[해월] 우선 “씽코 데 마요” 가 무슨 날인지 알려면 그날이 발생한 배경을 잠시 살펴봐야겠지. 첫째로 멕시코의 식민통치 종식 과정을 보자. 화려한 아즈텍 (Aztec) 문명과 마야(Maya) 문명의 탄생지 멕시코는 1521년부터 300년간 스페인의 식민지배를 받아 왔지. 나라이름도 “뉴 스페인 (New Spain)”이라고 불렸었어.
그러다가 1808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하고, 자기 형 죠셉(Joseph)을 스페인왕으로 임명하는 사건이 벌어져. 이 사건 후 스페인의 내정이 흔들리고 그 여파가 “뉴 스페인”에 미치면서, 서서히 독립의 싹이 트기 시작하지.
[태풍] 왠지 나폴레옹이 영국과 전쟁을 일으키면서 미국이 전쟁에 참여한 "1812년 전쟁"이 떠오르네요!
[해월] 그래? 결국 스페인 내정이 복잡해지자 식민지정부 내에서도 분열이 생기기 시작한 거야. 일종의 내전양상을 띤 초기의 독립운동은 당시의 혁명지도자 버나도 구티에레즈 (Bernardo Gutiérrez)가 도로레스 (Dolores)라는 작은 도시에 있던 천주교 신부 “미구엘 히달고” (Miguel Hidalgo)와 손잡고 1810년 9월 16일 민중을 이끌며, “도로레스의 외침” (Cry of Dolores)이라는 기치아래 멕시코 독립을 선포하면서 시작되었지. 그 후 11년 만인 1821년 9월 27일 마침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어.
둘째는, 이들 독립운동가들이 오거스틴 1세 (Agustín de Iturbide)를 황제로 옹립하면서, 어렵게 건립한 ‘1차 멕시코제국’ (the first Mexican Empire)의 기초가 튼튼하지 않았다는 거야. 스페인제국을 본떠서 세웠던 입헌군주정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내분으로 갈라지다가 끝내 1824년에 연방공화정이라는 정부 체제로 바뀌게 돼. 새 대통령이 들어서고, “멕시코공화국” (first Mexican Republic)이 탄생하는 혼돈이 오지. 게다가 오랜 전쟁으로 국가경제와 재정은 파탄지경에 이르고 있었어.
[태풍] 300년씩이나 식민지 생활을 했으니 정신적으로도 피폐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겠네요!
[해월] 물론 그랬을 거야! 셋째는, 독립은 했지만 모든 면에서 취약한 정부를 구성했고, 북부에서는 미국 쪽 원주민들인 코만치(Comanche), 아파치(Apache), 나바호(Navajo) 족 등의 끝없는 침략으로 시달렸지. 이들의 침입을 막고 국경에 텍사스주라는 완충지대를 만들기 위해 멕시코 쪽 사람들을 이주시켰는데 그들은 현지 원주민들과 오히려 멕시코를 배신하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텍사스공화국’(Republic of Texas)이라는 국가를 설립하는 불행을 보게 되었어. 이 국가는 원래 ‘Coahuila y Tejas’라는 이름을 가진 멕시코의 주 (Mexican Texas) 였는데 1836년 3월 2일 독립을 선언하고 멕시코에 저항하다 1845년 12월 29일 미국정부에 투항하고, 1846년 2월 19일 정식으로 미국의 28번째 주 Texas에 편입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지게 됐지.
[태풍] 국토를 지키려다 오히려 빼앗긴 멕시코가 가만있지 않았겠네요?
[해월] 당연하지! 넷째는, 북쪽땅을 졸지에 미국에 빼앗긴 멕시코는 결국 1846년 4월부터 미국과 전쟁에 돌입했어. 멕시코인들은 잃은 땅을 찾기 위해 근 2년여에 걸친 전쟁을 치렀지만 결론은 땅은 땅대로 뺏기고 수많은 국민들의 목숨까지 잃는 비애를 맛보아야 했어.
다섯째는, 당시 정치 이념이 다른 자유당파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 주장)와 보수당파 (천주교회와 국가의 연합 주장) 간 이념투쟁을 벌이고 내란(1858-1861)까지 겪으면서 국가 재정이 말이 아니게 되었지. 자유당 소속 대법원장으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베니토 후아레즈 (Benito Pablo Juárez García 1858.1.15 – 1872. 7.18 재임)의 입장은 진퇴양난이었고, 자유당파 의 승리로 내전이 끝나자 그는 결국 1861년 7월 17일 영국, 스페인,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에 대한 모든 대외 부채를 2년간 지불정지 (moratorium)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말았어.
[태풍] 채권자들인 유럽의 강대국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잖아요?
[해월] 물론이지. 영국,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는 곧 해군을 멕시코로 급파하여 협박을 하였고, 멕시코 정부의 설명을 들은 영국과 스페인 군대는 철수하였지만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는 이번 기회를 멕시코를 합병하는 기회로 삼고 군을 더 투입하는 결정을 하게 돼. 프랑스의 남미 ‘라틴 아메리카’ (Latin America) 화를 뜻하고, ‘2차 멕시코제국’ (second Mexican Empire) 건설의 발톱을 드러낸 것이지.
[태풍] 어렵게 독립을 이룬 멕시코에 다시 어두움이 끼기 시작했네요!
[해월] 내전까지 시달려온 국민들에게 또 외국과의 전쟁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한 거지. 프랑스의 침입으로 힘 약한 멕시코정부는 북쪽으로 쫓겨나기 시작했어! 북부로 치고 올라온 프랑스군을 맞이한 멕시코군은 운명의 프에블라 시 (Puebla City)에서 대처했지.
[태풍] 프에블라시가 한국동란 때 낙동강전투 같이 배수진이었을 것 같네요!
[해월] 하하! 배수진이라! 하긴 북한군이 한반도를 곧 집어삼킬 것처럼 밀려왔던 낙동강에서 한국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 그래!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6,000여 명의 프랑스 군대에 맞선 멕시코 정부군은 겨우 2,000명뿐이었고 그마저 열악한 무기밖에 없었지.
[태풍] 저런! 국가가 패망할 수도 있는, 풍전등화의 순간이네요!
[해월] 맞아! 그런데,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 기적이 일어난 거야!
[태풍] 정말요? 무슨 기적인데요?
[해월] 당연히 승리를 맛보아야 할 프랑스군대가 크게 패하게 된 거지! 안시성에서 당나라대군을 맞이했던 양만춘 장군과 고구려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멕시코군인들이 죽을힘을 다한 항전에 성공한 거지. 2,000의 겁먹은 멕시코군을 이끌었던 서른두 살의 이그나시오 자라고자 장군은 (General Ignacio Zaragoza) 여명이 밝아오던 1862년 5월 5일 아침 힘차게 외쳤지! “멕시코의 아들들이여! 우리의 적은, 세계 최강의 군대다! 그러나 여러분은 멕시코의 장자들 아닌가! 우리 모두 힘 합쳐 이 나라를 뺏으려 하는 저들로부터 멕시코를 지키자!”
[태풍] 젊은 장군의 감동적 연설이네요! 멕시코군인들이 애국의 마음으로 전투에 임했겠네요!
[해월] 그랬겠지! 세계적 명성을 떨치던 아군 최고지휘자까지 사망하는 등 크게 패배한 프랑스군의 모습을 감격의 눈물로 바라봤던 멕시코인들은 크게 환호하며 애국, 애족, 민족단결을 외쳤던 거야! 이날이 바로 1862년 5월 5일이었고, 이 전쟁을 ‘푸에블라 전투’ (Battle of Puebla)라고 부르고 있어!
[태풍] 그럼 5월 5일 “씽코 데 마요”는 바로 <승전의 날>이군요!
[해월] 바로 그렇지! 막강한 프랑스군을 열세의 멕시코군이 무찌른 날! 그래서 멕시코인들은 이 “씽꼬 데 마요”를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킨 날로 삼고 축제로 즐기고 있는 거야.
[태풍] 내 나라를 식민지로 삼으려 한 큰 나라를 무찔렀으니 얼마나 좋았겠어요!
[해월] 미국과 캐나다, 영국,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저메이카, 일본, 호주 등 여러 나라에 사는 멕시코 인들은 비록 외국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지만 본토에서 외국군을 한 때라도 물리쳤다는 자긍심을 갖고 만방에 알리려는 거야.
[태풍] 그 승전의 날 이후로 프랑스와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어요?
[해월] 프랑스와의 전쟁은 결국 3만 대군을 앞세운 프랑스에 패하고 말았지. 그 후 3년간 프랑스식민지로 전락하여, 외국인 황제 맥시밀리언 1세 (Maximilian 1세)를 통치자로 내세운 ‘2차 멕시칸 제국’ (second Mexican Empire)이 건립됐어. 그리고 멕시코 공화정부는 "망명정부"가 되었지.
[태풍] 그럼 다시 식민지가 된 거네요?
[해월] 오래가진 않았어!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의 지속된 공화정부 지지와, 프랑스의 내부 사정으로 3년 만에 프랑스군이 떠나자, 양위를 거부한 채 멕시코에 남았던 황제는 곧 체포되고, 처형되면서 통쾌하게 끝이 났지. 35년 동안 가혹한 식민통치를 받으면서도 자력으로 해방을 맞지 못했고, 해방을 맞이했어도 외세에 의해 국토분단이란 쓰라림을 안고 사는 우리와의 역사가 교차되는 대목이야.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끝내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겪은 역사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작 멕시코 정부는 이날을 국경일로 삼지 않고 있으며 오로지 승전고를 울렸던 ‘프에블라 주’에서만 주휴일로 삼아 축하하고 있다는 사실. 이곳 축제의 공식적 명칭도 “씽코 데 마요” 가 아니라, “프에블라 전투의 날” (The Day of the Battle of Puebla)이라는 뜻의, “엘 디아 데 라 바탈라 데 푸에블라” (El Dia de la Batalla de Puebla)라고 하지.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우리도 이날만큼은 멕시코인들을 마음으로나마 흠뻑 격려하며 축하해 주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