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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준 David Kim Sep 03. 2023

5초의 갈림길

대장검사

미국에서는 50세가 되면 보험에서 무조건 검진비용을 부담해 주는 항목이 있다.  ‘대장검사’다.   안 하면 손해라고 득달같이 의사 졸라 첫 검사한 것이 어언 20년이 됐다.  그때 배운 영어단어가 ‘Colonoscopy’와 ‘Polyp’ (용종)이었다.  보험회사가 지정해 준 전문의가 다행히 한국분이라서 마음 놓고 준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도 모르게 ‘위내시경’ 검사까지 하면서 난생처음 내 몸의 한 구석, 위와 대장의 사진을 보는 영광을 가졌었다.


용종이 두 개 발견되었고 이를 제거했다는 소견서에는 그로부터 5년 뒤에 또 검사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이 들어있었다.  그 뒤 매 5년마다 지옥을 넘나드는 일을 이럭저럭 늦추다 얼마 전 4번째 마쳤다.  안 하면 손해에서 이제는 솔직히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심정으로 소를 구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새벽 7시에 검사약속을 하고 받은 의사의 2장짜리 준비안내문에는 부드러운 말로 상세히 지시가 내려져 있었다.  첫 번째 종이에는 검사 병원의 약도와 함께 도착하여 접수하고 1-2시간 정도 로비의 딱딱한 의자에서 기다리게 되니 각오하라는 말과 함께 검사가 다 끝나고 환자가 깨어나면 간호원이 약 20분 전에 데려갈 사람에게 전화로 준비하라 연락할 테니 그리 알라고 한다.  


두 번째 종이에는 약국에서 구입해야 할 약물에 대해 먼저 지시한다.  Bisacodyl 5 mg이 들어간 Dulcolax 4알, 255g Miralax 한 병, 64 fl oz 옅은 색 Gatorade 한 병, 10 fl oz Magnesium Citrate 한 병.  

검사 7일 전부터는 피를 묽게 하는 아스피린 계통의 약 복용을 중단한다.  타이레놀만 무사통과된단다.  검사 4일 전부터는 내가 즐겨 먹는 통밀빵, 과일, 야채, 콩, 씨앗 등 섬유류 식품 섭취를 중단해야 한다.  그래도 흰쌀이나 닭고기, 생선, 계란, 감자 등은 먹으라니 참 다행이다.    


문제는 검사 하루 전이다.  첫째 맑은 음료를 제외한 모든 곡기를 끊으란다.  커피나 티는 가능한 삼가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 4시간 전까지는 복용약을 제외한 일체의 음식을 먹지 말아야 한다.    그리곤 오후 5시에 준비한 Dulcolax 4알을 먹어야 한다.  보통 변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복용하는 약인데 대장검사에는 필수다.  오후 7시부터는 준비한 Miralax와 Gatorade를 잘 섞은 액체를 매 15분에서 30분마다 8 oz씩 나눠서 계속 마셔야 한다.  4시간 정도 걸린다.  마시다 구역질이 나면 한 반시간 쉬었다 마시라고 친절한 안내도 한다.  마지막 준비로 검사 예약한 시간 6시간 전 그러니까 새벽 1시경 Magnesium Citrate 한 병을 자다 말고 다 마셔야 한다.  이 놈은 처음엔 오렌지 맛이 나서 쉬울 것 같은데 두 번째 모금부턴 너무 독해 최소한 10분은 걸린다.


오후 5시부터 먹기 시작한 약물은 드디어 아랫 속을 뒤집어 놓기 시작해 최초 약 복용 후 두 시간이 지나면 다음날 아침 검사약속 시간까지 최소한 10번은 화장실 신세를 져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맡아본 적 없는 냄새부터 해맑은 대변물까지 겪으면서 갑자기 다가 온 번민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웬일이 벌어질지 모를 병원에 도착해 있다.  


접수하고 한참을 보내니 간호보조사가 나타나 마취 시 일이 생겨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라 하고 사라진다.  그리고 한 반시간 지나면 간호사가 나타나 문안으로 들어오라 한다.  침대가 놓인 쌀쌀한 방으로 안내하고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말고 다 벗으라면서 등이 터진 가운 하나와 양말을 건네며 입으라 한다.  손등에 IV 주사기를 아프게 꽂아 놓고 휑하니 나가면 마취의사가 들어와서는 자기 이름을 밝히고 자기가 조금 후에 전신마취를 하게 된다고 알린다.  그러고 나서 15분쯤 지나면 조금 전 아프게 주사를 놓았던 간호사와 다른 간호사 한 사람이 더 들어와 누워있는 침대를 그대로 검사실로 밀고 들어간다.  끌려 들어가며 물결치듯 흐르는 천정을 쳐다보면 영화에서 많이 보는 그 장면이다.


코에다 산소공급노즐을 끼운 뒤 왼쪽 옆으로 몸을 세워 누으라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모로 누우면 다른 간호사가 베개를 조절해 주는 사이 아까 본 마취의사가 홀연히 들어와 살짝 웃으면서 “Mr. Kim!  You’ll get sleep soon!  And you feel hand burning, but will be okay soon!  See you!” 한다. 마취액을 은근슬쩍 손등 IV 주사기에 넣는 순간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수술실 벽에 있는 싸인을 읽는 척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Mr. Kim…”   “Mr. Kim...”  “Wake-up, Mr. Kim!!!”


이 소리가 들리면 나는 분명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래!  나는 그 5초 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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