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건 어린이의 특권이다
워커홀릭의 육아 이야기
"아빠! 아빠도 사마귀 치료받으면 울어?"
어느덧 반년 째 이어지는 지난한 사마귀 냉동치료를 받으러 나가는데 아들이 물었다.
전에 내 옆 침대에 있던 꼬마는 그 냉동 토치를 악마의 가스라고 부르던데.. 그만큼 진짜 겁나 아픈 냉동치료를 받을 때 우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아니.. 어른은 창피해서 못 울어 너무 아픈데 손을 꽉 움켜쥐고 괜찮은 척.. 멋있는 척을 해
너희는 억지로 참지 않아도 돼 울고 싶으면 우는 게 건강한 거야 울고 싶으면 울어 짜증이 나면 짜증을 내고.. 그게 어린이의 특권이야"
"어린이일 때 어린이로 살아야
어른일 때 어른으로 살 수 있는 거야"
나는 어릴 적 소위 말하는 애늙은이 었다.
어려웠던 우리 집 사정을 익히 알았기에 난 투정을 부리지도, 누나와 싸우지도 않았다.
가뜩이나 하루하루가 버거운 부모님의 인생에 한 줌의 짐이라도 얹고 싶지 않았는데, 더 정확히는 그분들이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없었다.
그렇게 난 유년기부터 좋게 말하면 성숙한 애늙은이가 되었고 어른들은 그런 내 모습을 듬직하다며 칭찬하고는 했다.
나도 그런 으른 같은 내가 싫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서야 내가 어린이라는 단계를 건너뛴 대가가 가볍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어린이일 때 어린이로 살지 못한 난
막상 어른이 되니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어린이일 때 어린이다워야
어른일 때 어른 다울 수 있음을
어른스럽다며 칭찬받던 그때는 몰랐다.
아마 그래서가 아닐까?
내가 아이들의 응석을 받아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아이들의 모습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경험하지 못했다고 다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아이를 아이답게 키우는 것
우는 특권을 누리게 해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이미 다 자라 버린 나라는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