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이상적현실주의
"우리 보증 서 달라는 말은 하지 말자!"
응??
호기심이 가득했던 중학생 시절 과자와 함께 어른들의 음료를 마시고 있던 어느 밤
갑자기 친구가 이 말을 훅 던졌습니다.
어른들의 음료를 드링킹 하며 우리의 우정이 절정에 다다랐다고 생각한 건지
마치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듯 우리는 평생 갈 친구라고 생각을 했던 건지
한 친구가 갑자기 보증 서 달라는 말은 하지 말자고 선포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사업가의 아들이었던 친구는 아버지가 선 보증으로 고생을 단단히 했었는데 당시에는 지인 대부분이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친구들이었기에 그 친구가 딱히 어려워 보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보증을 잘못 서서 혹독한 고생을 했던 건
단지 그 친구의 집뿐만이 아니었습니다.
IMF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서로 보증을 서주는 것은 서로 밥 한번 사주는 것처럼 그다지 특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정이 넘치는 문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증을 섰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생각
그동안의 정을 외면할 수 없다는 약한 마음
까짓것 별일이나 생기겠는가 싶은 마음
이유가 무엇이었던 쿨하게 서명을 해준 그 보증서 한 장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도 보증을 서주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굳이 그 친구처럼 "우리 보증 서 달라는 말은 하지 말자!"
이런 결연함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더 이상 우리는 개인에게 보증을 부탁하지도 보증을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그럼 이제는 보증 없이 안전해진 걸까요?
대체 왜 우리의 선조들이 그토록 보증을 섰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도 모른 채 수많은 보증서를 끊어주고 있습니다.
큰 고민 없이
굳이 얻는 것도 없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그 보증서를 말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무섭게 발급하는 보증서는 바로 "우리의 말"입니다.
"난 절대 ~는 안 할 거야"
"난 절대 ~는 안 하는 사람이야"
무언가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말은
우리의 삶에 차곡차곡 쌓여 우리의 발을 묶어버립니다.
너무도 따듯한 마음의 소유자였던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미국은 절대 공격을 안 한다는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고
그 말을 듣고 안심한 쿠바의 카스트로는 바로 아프리카를 공격해 버립니다.
카터가 굳이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카스트로가 미국의 공격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었더라면
불필요한 희생자가 발생할 필요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저 또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보증서를 끊고
수많은 말빚을 쌓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굳이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음에도
단지 그 순간 쿨해 보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입을 열면서 몸을 묶어버렸습니다.
"굳이 보증은 서지 말자!"
오래전 어른들의 음료를 마시며 친구가 저에게 해줬던 말을 이제는 커피를 마시며 자신에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저 침묵으로 그동안 쌓아온 말빚을 갚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갚아야 할 것은 단지 돈 뿐만은 아니니 말입니다.
/The end/
By 이상적현실주의
어느 날 문득 달라지고 싶은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설레임
인생을 바꾸는 필연적 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