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적현실주의 Mar 11. 2022

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

워커홀릭의 육아 이야기

퇴근길에 사람들이 벚꽃을 사랑하는 이유는

유한함 때문이라고, 지나고 나면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붙잡겠다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겠노라는 포스팅을 올리고

집에 도착했다.


그간 누적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때문인지

피로했지만 아이들은 역시 사랑스러웠고

흔하지 않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도 감사했다.


그런데 안보는 사이에 누나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있는 아들을 보며 이성을 잃고 혼을 내니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사랑받는 방법은 하라는 일을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는 것인데 하지 말라는 것을 안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아무리 내가 재미있어도 싫어하는 건 안 하는 거라고 신사답게 행동하라며 간신히 내 마음을 다스리고 좋게 타일렀다.


그런데 자기 직전에 문제가 생겼다.


기저귀를 갈아주려는데 늘 그렇듯


"엄마가"를 외쳤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이거 엄마가 해주면 왜 다 엄마가 하냐고 할 텐데..


힘들어할 아내도 그로 인해 힘들 내 모습도 이미 상상해버린 나는 처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갈아주기로 했다.


자기가 하겠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에게 그 어떠한 설명을 할 기운도 없어 말없이 기저귀를 입히는데 끝없이 소리치며 싫다고 하는데도 그냥 힘으로 찍어 누르며 기저귀를 갈면서 자괴감이 밀려왔다.


워커홀릭의 육아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변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전의 안 좋은 모습은 사라지고 새 사람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의 내 모습은 이렇게 보듬어주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대하는 형편없는 모습이라니..


그동안 내가 썼던 글과, 했던 말들이 모두 가식이라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순간 다 포기하고 싶었다.


나는 그냥 원래 이런 놈이니까.. 나는 원래 재능이 없으니까.. 가식으로 보여주는 인생을 사는 거라면 그냥 다 때려치우고 싶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육아서적에서 읽었다.


모든 것이 다 피로하기 때문이니 피로하지 않게 조심하고 그것이 안되면 사람이나 가전의 도움을 받으라고.


안다. 나도 안다. 피곤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거..


그리고 아이들 또한 내가 피곤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 그런데 이런 상황이 일상인 것이 인생인걸 어찌하나


경제학의 치명적인 이론적 결함이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라면 육아서적의 문제는 마치 무균상태처럼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는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 때려치우고 포기할 수는 없고

피곤함이 기본값(디폴트)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마치 바둑처럼 그 상황을 복기해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보기로 하고 같은 상황이 생기면 3가지 스텝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1) 자존심

2) 상사

3) 도망


1) 자존심: 내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건 아이를 이기고 싶다는 내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대로 두면 비 뚫어질까 봐 훈육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이기고 싶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훈육이었다면 자괴감이 들었을 리가 없으니까. 이 어린아이를 이겨서 뭐하냐고 생각하고 그냥 져주자


2) 상사 : 직장상사였어도 그런 식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했을지 생각해보자.


무리한 요구("엄마가")를 했을 때 내가 늘 들이받았는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힘없는 아이라고 막대하는 한심한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보자. 그렇게 그냥 져주자


3) 도망 : 1번과 2번으로도 해결이 안 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도망가자.


아름다운 방법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상처를 남기는 것보다는 더 좋을 테니까.. 정답이 없다면 차악을 택하는 것이 최선이니까. 이 또한 져주는 것이다


이 방법이 정말 성공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부동산(등기)을 절대 포기하지 않듯 이 또한 포기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다 가족이 행복하길 바라서 산 집인데.. 정작 그 집에 살아갈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면 압구정 한강뷰라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늘도 이렇게 하나의 고민과 노력을 쌓는다. 타고난 재능이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제나 오늘이나 노력뿐이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워커홀릭의 육아 이야기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