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아이가이 평범하지 않은 곳에 떨어지다.
"소극적이고 반에서 눈에 띄지 않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아이"
위에 문장의 아이는 전형적인 바른 또는 평범하되 이상적인 남자 아이의 스테레오타입이 아닐까 싶다.
10대 때까지는 저 표현에 한 끗도 벋어나지 않는 삶이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그 10대의 배경이 미국이었다는 사실.
혼자 미국시골에서 보내는 10대 시절은 평범했고 소극적이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최고 수준으로 배울 수 있는 대학을 가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두는 삶이었다
하지만 10대때의 시절은 쓸모 없어진듯 결국 그 궁극적 목표는 의미없어지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한국으로 20살에 귀국하게 되었다.
한국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기에 모든것이 낯설었고 1달이라는 시간내에 모든 서류와 조건들을 어렵게 준비해서 결국 대학교에 합격했다. 합격한 과는 흔히 우리가 알고있는 국제학부, 국제경영학부 등의 영어특기자들이 주를 이루는 학부였다. 유학, 영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어찌보면 다른 과보다 내가 적응하기 편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새내기의 학교생활은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아주 즐거웠다 - 4년이 지난 지금도 이 생각은 여전하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과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좋은 형들, 친구들, 동생들을 많이 만나서 대학생활중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입학하고 1년 쯤 지났을떄,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 나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똑같은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고 학식 또는 음식을 시켜 먹고, 같이 게임을 하고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한다. 물론 나는 유별나게 더 많이 하긴 했다, 공부만 하던 놈의 천성은 어디가지 못하니까 -독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 라는 말도 장난식으로 많이 들었다. 나도 몰랐지만 내가 왜 그렇게 열심히 해야 하는지 신입생이 끝나고 깨달아 버렸다.
부자가 많드라. 아니 뭐랄까.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엄청난 건물주, 청담, 강남에 으리으리한 집에 사는 부자들이 아니더라도, 졸업만 하면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으면 되는 사람들, 졸업만 하면 자기 이름으로 된 건물 월세를 받고 살 수 있는 사람들, 적당히 공부해서 적당한 곳에 취직하면 집, 차 등은 가족이 해결 해 줄수 있는 사람들, 또는 쇼핑을 하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에 돈이 부족하지 않은 사람들.
처음에는 그 갭을 뼈저리게는 느끼지 못했다. 동경심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도 마냥 따라서 돈을 악착같이 벌어서 좋은 옷을 사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곳에 놀러가서 돈을 쓰며 나도 같은 삶을 앞으로 쭉 누릴수 있는 사람인 것 마냥 착각 또는 깨닫지 못하고 1년을 보냈다.
2학년이 되고 깨달음을 얻었다.
학교에서 사람들과 1년을 지내다보면, 나와 맞는 사람이 있고, 어긋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다. 내 기준에서 도덕적이지 못하고, 본인의 능력이 부족해 남에게 기생해야만 하며, 하지만 결국 본인의 이득은 어떻게든 얻어가는 그런 사람들이 현재 열심히 사는 나보다 앞으로 더 편하고 앞으로 더 나은 삶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현신을 자각하는 순간은 끔찍했다.
다행히 자격지심은 없었다. 좌절하지도 않았다. 단지 그 순간 느낀 감정이 이상했을 뿐.
뒤틀린 감정 속에 내 머리속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단지,
"나는 열심히 살아야한다. 지금보다 더"
그래서 나는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