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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 Dec 25. 2015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

삼성의 구조조정, 숫자로만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이사가 한창이다.

지원인력들은 분주히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하는 여행자가 된다.


삼성이라는 이름아래 친구가 되기도, 때론 적이 되기도 했던 우리는, 이제 뿔뿔히 흩어진다,


1.

 - 경영진단이라는 이름아래..


15년, 대한민국을 관통했던 구조조정의 바람은 이곳에도 세차게 몰아쳤다.


작년, 경영진단이 불씨를 당겼다. 일찌기 사업이 호황을 이룰때는 말도 없더니 실적이 떨어지자 바로 등장했다.

그룹사에서 나온 분들은 건물 회의실 3개를 모두 잡고 3개월여 동안을 머물렀다. 하루에도 수많은 팀장들이 밤을 새워 작성한 자료를 들고 들락날락했다.


숫자로만 얘기하는 이 조직은, 빨간색깔의 숫자를 보이는 사업들을 일제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불과 10여개월 동안 4개의 사업이 정리되고 약 900명의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 복직 약속 없는 무한휴직.


첫번째로 된서리를 맞은 H사업쪽은 결국 팔리지도 않아 그냥 폐기되었다. 수십명의 직원이 기약없는 휴직에 들어갔다.


두번째는 필자가 있는 P사업이었다.

나이든 사람부터 압박이 시작됐다. 인사팀과 감사팀은 어느때 보다 분주했다. 예상대로 대대적인 내부 감사가 한차례 돌았다.


출장비 정산, 근태 내역 문제사항, 교육이수 현황 등. 너무 사소해서 말하기 민망할 정도의 내용도, 문제를 삼으니 문제가 됐다.

수건돌리기 처럼 누가 뒤에 왔다 간 사람들은 책상이 사라지고 다시 볼 수 없었다.


사업분사가 결정되고 신생회사로 떠날 인력과 남을 인력이 나뉘었다, 주어진 두가지 선택지 모두 그리 나이스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했다.



 - 떠난자와 남은자, 나뉜 기준은?


마침내 진통 끝에 신생사업은 분사되었다. 남겠다고 선택한 이들은 삼성 소속으로 신생회사의 업무를 단기간 도와주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 기간이 만료되었다. 150여명의 지원인력은 삼성의 남은 조직 안으로 흡수되거나 기약없는 휴직에 들어갔다.

(출처 : 브릿지경제)

70여명의 무한휴직.

떠난자와 남은자가 나뉜 그 반나절동안, 남은 인력들의 면면을 통해 나뉜 기준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고졸' 입사했거나, '40세이상' 이거나, 고과 'NI'가 있거나.


블라인드 면접, 각종 열린 채용을 내세우는 삼성의 인력 분류 기준은 결국 줄세우기에 불과했다.




2.

 - 혹은, 팔아버리거나..


업무상 '삼성SDI' 담당자와 동석하게 되었다.

업무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사원증에 달린 근조 뱃지에 눈길이 간다.

 "김영삼 대통령과 친분이 있으신가봐요?"


불쑥 물은 질문으로 그의 이야기는 봇물처럼 쏟아졌다,

 "죽었잖아요, 회사가, 직원들은 다 그렇게 생각해요"

씁쓸하지만 현실이다.


삼성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직원은 자신의 회사소식을 네이버 뉴스로 접한다.

그것이 '관리의 삼성'이 말하는 관리능력이다.



"저희도 하도 찌라시가 돌고, 외부에서 듣는소식이 있어서, 사장님에게 물었었죠. 3일 전이였어요, 그게, 기사나오기 전,

 그때 사장님이, 그럴일 없다. 우리는 계속 지금처럼 삼성그룹에 있을것이다. 현업에 충실해 달라. 라고 말했었어요. 그러고 3일뒤에 휴대폰으로 기사를 보고, 폰을 던져 버렸죠."

SDI화학 부분은 롯데케미컬로 인수되었다. (출처:국민일보)


 - 자회사,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들의 셈법


삼성 그룹의 대형 그룹사는 거의 노조가 없다.

노조가 있다고 해도 단순히 근로자 협의체 정도이다. 실질적인 사측과의 협상권한이 없다.


SDI는 현재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했다. 여러방면으로 삼성과 롯데의 가운데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끝난 거래를 뒤집긴 어려워 보인다.

당장, 'SDI-케미컬'이라는 '자회사'의 발족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 내년 1월부터 자회사가 된다하네요, 그것도 삼성도 롯데도 아닌 반반이 섞인 애매한 형태로요. 문제는 이런 애매한 형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기약이 없다는거에요"


롯데측에서는 자회사 형태로 묶어둔채 근무조건을 바꿀 수 있다.


여기에 정부의 노동5법 개정까지 된다면, 상황은 더욱 안좋아 질 수 있다.
-  노동법 개정안 관련 글


"벌써 주변에 이직을 준비하는 분들이 수두룩해요. 그런데 근무조건이 나빠지면... 저도 장담할 수 없죠."

인력이 충분히 줄어들어 롯데로 흡수하기 편해질때를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


삼성에서 소유권을 행사할 일이 없기에, 100% 롯데 자회사가 아니여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SDI는 자체적으로 사업방향을 정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을 안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태로 계속 가는것이다.




3.

이사가 한창이다.

분주하게 저마다 짐을 챙겨드는 모습이 명절 열차 대합실 같다.


열아홉, 회사라는 글자조차 생소하던 나이. 부딪히고 넘어지고 아파했던 어린날.

누구 하나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았던 애증의 기억.


22년, 남도의 시골뜨기 인생에 갑자기 들어와 40여년 인생의 반을 보낸 이곳.

다양한 업무와 오랬던 회사생활이 다 좋았다 말은 못하지만,

나의 자존심이었고, 열정의 근거였고, 가족의 희망이였다.


복직에 대한 기약없는 휴직이라 마땅히 악수를 청해 인사하기도 애매하다.


매일 다닌 이 퇴근길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22년을 가족처럼 생각했던 내게,

이 조직이 몇일, 몇시간만에 소모품으로 취급해 주었기 때문이리라.


다시 원점이다.

당장 다음달 애들 학원비 걱정에 발길이 무겁지만,

그것보다 지난 내 인생의 절반이 부정될, 알수없는 미래의 그 어느곳이 두렵다.


아쉽다.

화려한 축하인사를 받으며 퇴장하길 바라진 않았지만,

그동안 알게모르게 서로 힘이되어준 동료에게 따뜻한 인사 한마디 건낼 시간조차 주지 않았던,

이곳, 내 일터였던, 삼성이라는 그 푸른색이 오늘 더욱 차갑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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