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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 Dec 31. 2015

지여인이여 문송하지 마라

고질적인 한국교육의 문제가 가져온 문송해진 현실.

아버지가 곧잘 했던 말이 있다.

‘펜대 굴리는 사람들이 다 해먹는 세상이야, 너는 꼭 인문계로 가라’


항상 더러워진 옷으로 집에 오시는 아버지는 전기기술자셨다. 고등학생인 필자는 봉사활동 시간을 받기 위해 아버지의 일터에 간 적이 있다. 맨홀 뚜껑을 열고 지하로 들어가서 전화선을 연결하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악취 속에 일해야 했던 아버지는, 일한 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기술직에 회의적이셨다.




  - '취업학원'이 된 대학.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지여인(지방대,여자,인문계-취업 3대 악조건)


대한민국의 2030세대가  '15년 가장 많이 사용했던 단어들이다. 이공계에 비해 인문계는 취업문을 두드려볼 만한 곳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문송합니다.. (출처 : 인스티즈)

혹독한 취업난 이야기는 솔직히 인문계만의 이야기라고 말할 정도이다. 삼성그룹은 대졸 지원자 10만3000명 중, 6대4로 인문계 지원비율이 높았지만, 정작 85%를 이공계로 뽑았다. 

14년기준, 인문계의 46%만이 '취뽀'했다. 반면 이공계는 68%가 취업에 성공했다.


정부는 이에, 대학-기업의 미스매치를 해결하기 위해, 인문학과를 통폐합 구조조정하는 대학에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사) '1등 대학에 300억 원', 정부 프라임 사업에 대학가 구조조정 바람

정부는 학자금대출지원 제한, 산학과제 신규진입금지 등, 실질적인 제재조치를 통해 대학을 구조조정으로 내몰고 있다.



 -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인구론?!


경영대 신드롬이 불었던 시절이 있었다. MBA라는 단어가 꽤나 고급스럽게 미국에서 건너왔다. 대학도 앞다투어 MBA과정을 신설하고 경영대를 확대 하였다. 기업과 연계해 야간과정까지 개설하며 MBA를 퍼트렸다. 

경영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신문방송학과, 각종미디어학부 등 그럴싸한 이름으로 유명 교수를 앞세워 신입생들을 불러 모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88개 대학의 입학정원 중 48.4%가 인문·사회·교육계열, 38.5%가 공학·자연과학계열(의·약학 포함)이다. 지난해대학 졸업자 29만여 명 중 공학·자연과학계열 학생은 40.3%로 10년 전(47.0%)보다 되레 줄었다.



기업의 현황을 보면 조금 다를까?

10년전에 비해 산업구조가 바뀌어서, 인문계열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이공계열의 일자리는 늘었을까?

우선, 이해하기 쉽게 대기업 순위의 변동을 보자.

90년대부터 봐도, 현대, 삼성, LG(럭키), 대우, SK(선경), 한화, 한진등 순위의 차이가 있을 뿐, 현재와 유사하다. 대부분 제조,건설 위주의 공업을 근간으로 하는 기업들이다. 



그렇다면, 산업별 종사자의 구성에 큰 변동이 있었을까?

산업별 고용구성비 추이. 제조및 기타산업은 감소했다. (출처:통계청)


제조업의 소폭 증가가 있으나, 오히려 기타 산업전반의 구성비는 줄었다. 반대로 서비스업은 증가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마저도 2000년 이후엔 거의 변동이 없다. 


다시말해,

지금의 인문계 기피 현상이 갑자기 쑥 나타날 이유가 외부에선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총체적 상황


80-90년대 한국기업은 세계시장을 향해 내달렸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근로시간으로 근면, 성실하게 앞만 보고 뛰었다. 유수 기업들이 찾지 않는 산간 외지에도 물건을 팔러 달려갔다. 수지가 맞지 않는 제품도 우선 수주를 따내면 장땡이었다. 


없던것을 만드는 대신, 기존제품을 뜯어 따라 만들고, 실패하면 다시 하는 과정(Trial and Error)이 효과적이었다. 

반복하는 과정에 인문,이공계는 중요치 않았다. 상사의 말을 잘 따르고, 밤늦게까지 뛰어다닐 인재면 충분했다.

매출은 늘었고, 일손이 부족했다. 우선뽑고 어디든 가져다 썼다. 계열이나 출신보다는 깡다구 있고 버티는 자가 승승장구 했다.


2000년대가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먼저 바로 옆, 중국의 제조원가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우리가 $10를 부를 때, 중국은 $1를 불렀다. 기술력으로 승부해보려 돌아보니 쌓아둔 기술이 없다. 업무를 시작한지 5~6년만 지나면 다들 관리자로 전환해 버리기에 기술적 노하우가 축적되지 않는다. 이공계 출신 조차도 현장업무를 기피하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됐다


현장에서 기름 묻히고 납땜을 해야 하는 ‘기술자’는 늘 천대 받아왔기 때문이다.



 - 이제는 골라 받겠다는 기업들


그놈의 위기론은 한국 사회를 계속 짓누르고 있다. 기업은 너도나도 채용규모를 줄였다. 

소위말해, ‘괜찮은’일자리는갈수록 줄어들고 있다(출처:뉴스동아)


채용규모만 줄인게 아니다. 조건을 까다롭게 했다. 

일단 우리회사는 제조업이니까 관련 학과를 뽑아야지! 

라고 조건을 하나둘 추가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까다롭지 않았던 부문도 모두 제한사항을 추가했다. 그래야 더 지원자를 걸러내기 쉽기 때문이다.



 - 너무 많다, 대.학.생!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공대생은 과연 공대 4년 과정의 학문을 업무에 얼마나 활용할까.

미국, 일본에서는 고소득군에 분류되어 소위 말해 ‘대접받는’ 엔지니어. 과연 한국의 모든 공대생을 엔지니어 라 할수있나? 그리고 기업은 그 많은 엔지니어들이 필요할까?

24~34세 중, 대학생 비율이 OECD국가 전체 1위. 이공계 졸업생 숫자도 1위다. (출처:OECD)


필자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은 아무 고민 없이 대학생이 됐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도전해볼 시간도, 이유도 없었다. 어릴 땐 진학이 목적이었고, 막상 대학을 오니 취업이 인생최대 과제가 되었다. 운 좋게 취업을 하고 나면, 적성에 맞지 않아 퇴사를 반복하는 현실이다.


배워서 남주냐며 자식교육에 목숨을 건 부모 세대에게, 93년 '대학설립자율화' 정책은 기폭제가 되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대학생은 '캠퍼스 문화'를 만들었다. 남들과 다르면 불안해하는 한국인 정서상, 20대엔 대학생인게 그냥 정답인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 문송하지 마라, 그리고 포기하지도 마라


문송하기도 지친 그들에게 왜 고민하지 않았냐고 되물을 것인가.

아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백년을 내다봐야할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온 한국 교육이 가져온 참혹한 현실이다.



 - 부족하지만 대안이 없을까.


1. 일단 파이를 키워야 한다


이놈의 위기론이 기업의 채용규모 축소를 마치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있다. 기업유보금은 나날이 커지고, 위기 속에도 오너들의 주머니는 두둑해지고 있다. 

(기사) 쌓여만 가는기업 유보금, 투자 안하나, 못하나
(기사) 10대 재벌, 회사 어려워도 오너 주머니는 채워


기업은 채용규모를 확대 해야 한다.


인문계열의 채용규모를 확대하는 기업에 정부는 법인세를 감해주거나, 국책사업에 우선 참여하게 하는 등 정책적으로 가이드 해야만 한다.

얼마전 삼성이 시행했던, 소프트웨어 인력에 인문계열 채용과 같은 예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기사) SW 비전공자도 교육… 청년 취업 돕는다



2. 다양성이 위기를 해결하는 키워드.


이공계열로 한정하는 채용 시장은,
한국 제조업이 고착화 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더 많은 고민과 판로 확대는 다양한 인력구성을 통해 창의성을 유지하는데서 비롯된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도 '단순한 기술만이 아니라, 기술이 인문학과 기초학문과 만나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인문대 축소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현 정부도, '인문학적 소양이 창조경제의 밑거름'이라 수차례 공언했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공약 중에 한 개 라도 실천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출처:이슈메이커)


3. 교육, 그 본질을 보자


원론적으로는, 대학생의 숫자가 줄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많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20살, 대학교로 진학하지 않는 청춘을 호의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스터고 운영과 같은 제도는 굉장히 고무적이라 할만하다. 하지만 이들이 노동현장에서 느끼는 현실은 냉랭하다. 그들에게 안정적이고 여유 있는 생활이 가능한 일자리를 보장해줄 때, 사회적 시선도 바뀔 것이다.



교육과 대학제도의 개정은 멀고도 험난한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 교육 정책의 문제들이 지금의 '문송'한 현실을 낳았듯,
지금 바로 시작해야만 한다. 





또다시 추운 겨울이 되었다. 


교육이 국가의 미래라 한다면 신입사원은 기업의 미래다. 


코앞만 보는 기업채용 실태는 정부가 맨날 쏟아내는 위기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낮은 취업률에 조급해하는 정부가 누굴 탓하랴. 이 가운데 쏟아낸 대학구조조정안은 정말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다. 


긴 글이 되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문제이다. 하지만 피해서도 안되는 문제들이다.


미약하지만, 언젠가 아래와 같은 일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 날이 오게,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볼 글.

그들이 침묵하는 이유 - 삼성의 구조조정, 숫자로만 말할 수 없는 이야기
대통령을 잠못들게 한 노동법 개정안 바로알기 - 일명 '장그래법' 에 대한 올바른 이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11/30/2014113001264.html(주간조선 - '인구론' 관련)
http://news1060.ndsof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62(대학,고교 구조조정 선행되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65590(그들은 문송할 필요가 없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401&artid=201410212234495(문과, 길을잃다)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569607(뉴스토마토)
http://impeter.tistory.com/2700(아이엠피터)
http://news.joins.com/article/14128346(이공계 인문계 대학입학 비율)
http://danmee.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1/05/2013110503323_2.html(재벌순위–년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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