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I feel like dancing
2000년대 초반. 한 창 찬양 예배가 유행했고, 수 많은 찬양들이 예배시간에 불러졌다. 새 찬양들이 쏟아졌고 찬양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음악이 좋았고 찬양이 좋았다. 기타 치는 것도 좋았고 다른 이들과 같이 매주 토요일 모여서 예배를 준비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매주 청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 인도자로써 콘티를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하다 하루는 자주 불렀던 I could sing of your love forever (나를 향한 주의 사랑) 의 가사에 이상하게 눈이 더 갔다. 특히 그 노래의 후렴 뒤에 나오는 브릿지 부분의 가사가 눈에 띄었다.
Oh, I feel like dancing
it's foolishness I know
but when the world has seen the light,
they will dance with joy,
like we're dancing now.
마지막 가사가 갑자기 걸렸다.
마지막 두 줄의 가사는 분명 선포의 구절인데, 그들도 주를 알게 되면 지금 우리처럼 이렇게 춤추며 기뻐할 것이라는 내용인데, 우리는 지금 그런 구원의 기쁨에 넘쳐 있는가? 아니라면 이 가사는 그저 그렇게 되길 바라는 소망의 선포로만 봐야 할 것인가?’ 라는 딴지를 거는듯한 질문을 내 자신에게 해 보았다.
분명 큰 집회나 우리가 익히 보던 유명 찬양 예배 팀의 동영상을 보면 그들은 기쁨에 넘쳐 뛰고 울부짖으며 정말 저 고백이 그들의 고백인 것처럼 보이고 또 선포 한다. 하지만 사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예배를 그만큼 사모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눈에 띄었던 저 브릿지의 고백이 지역 교회에서 쉽게 불러질 수 있는 찬양일까? 멀리 볼 것 없었다. 내 자신을 잠시 돌아보게 되었다. 우선 찬양을 인도하는 내가 그런 모습이 아닌데...
이런 질문들의 시작 후 찬양들의 가사들을 조금 더 면밀하게 보게 되었다. 또한 캐나다 이민 교회를 다니면서 한글 찬양과 영어 찬양을 모두 접하게 됐는데 그 와중에 많은 영어 찬양들이 번역되어서 불리는데 번역의 한계 때문에 원래 메시지들이 잘못 불려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어떻게 이렇게 번역을 잘 했을까? 정말 번역은 제 2의 창조 구나’ 라며 그 탁월함에 저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 때도 많았다. 특히 찬송가에서의 의역은 예술의 영역이다. 그렇게 많은 한글 번역 찬양들과 영어 찬양들을 비교 하고 부르고 느끼면서 찬양의 더 깊은 은혜를 누릴 수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대학원 준비를 하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다 한국에 원어민 교사로 1년 동안 일을 하게 되었다. 시골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라 군내 한 지역교회를 다녔고 그 와중에 많은 청년들의 영어에 대한 관심에 영어회화를 가르쳐 줄 수 있냐는 문의를 받았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영어회화만 가르치기엔 뭔가 부족한 것 같아 전부터 관심 있고 좋아했던 영어 찬양을 한 시간 가르치고 나머지 한 시간은 영어 회화를 가르치면 어떨까 해서 영어 수업을 시작했다. 사실 나의 궁극적 목적은 영어 회화 실력을 늘리는 것보단 영어찬양 가사를 되새기는 가운데 발견하는 찬양과 예배의 '재 발견' 이었다.
한 주 한 주 같이 영어찬양을 부르고 배우면서 전에 받았던 은혜들이 새록 새록 다시 다가오고 거기다 더해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 까지도 더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우리가 나눴던 내용들을 잘 정리해서 더 많은 사람과 나누면 어떨지 싶어 블로그에 남겨 보자 해서 글로 남기기 시작했다.
글 중에는 한글가사에서는 놓쳤지만 영어 가사에서 감명받은 지극히 개인적인 깨달음을 많이 설명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글 가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찬양 가사는 한 편으로는 시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그 시를 읽는 사람에게 다양한 해석의 방법이 존재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 한글 가사에서 받은 은혜 역시 헛된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것이 오역에 의해 생긴 걸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많은 해석 중에서도 조금 더 지은이의 의도와 가까운 해석이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 찬양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나 중심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조금이나마 나의 글들을 통해 지금도 많이 불려지고 있는 찬양들에 새로운 은혜가 더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궁극적으론 우리 정서와 한글에 더 적절한 많은 찬양들이 불려지길 소망한다.
참고:
앞으로 올릴 글들은 15년전 나의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다시 각색하고 요즘 사정에 맞게 다시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