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되신 주

Here I am to wosrhip

by 데이빛

“Here I am to Worship” by Tim Hughes


대학 1학년 신입생 시절 KCCC (Korean Campus Crusade for Christ) 라는 단체에 가입했다. 캐나다 대학에 있는 1.5세와 2세들을 주축으로 한 캠퍼스선교 단체였는데 (모체는 한국의 CCC) 그곳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간단한 코드가 적혀있는 찬양 책 하나를 만났다. 그 안에는 이전엔 불러보지 못했던 수 많은 영어 찬양들이 들어있었는데 - 사실 이 시기엔 영어 찬양을 하나도 모를 시기였다- 한창 기타를 시작했을 때라 코드만 적혀있었던 그 책 하나만 있어도 노래 찾아 들어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곡 한 곡 찬양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때 자주 헷갈렸던 두 곡이 있었는데 “Here I am to worship” (빛 되신 주)과 “Heart of worship” (마음의 예배) 이었다. 지금이야 어떻게 이 두 곡이 헷갈릴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찬양이나 CCM 에 큰 관심이 없던 난 이 두 곡이 연속으로 한 페이지에 있었고, 둘 다 H 로 시작하는데다가 worship 으로 끝나고 거기다 코드까지 비슷하니 뭐가 뭔지 무지 헷갈렸다. 하지만 두 곡 다 너무도 아름다운 멜로디와 은혜로운 가사 덕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찬양 둘이 되었다. 이 두 곡은 만들어 진지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수십년간 CCLI[1] 차트에서 상위권에 있고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 찬양들이다. (2025년 6월, 미국에서는 아직도 각각 35위, 47위에 있다.)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는 멜로디, 그리고 “Here I am to worship” 의 제목에서 나타나는 것 같이 ‘지금 이곳에 예배 드리러 왔습니다’ 란 가사가 예배로 들어갈 때 얼마나 적절한 가사인지 모르겠다. 나 역시 몇 년 후 청년회 예배 인도자로 섬기며 무수히 많이 불렀던 곡이다. 그렇게 많이 부르던 곡을 하루는 ’here I am to worship’ 을 반복해 부르다 예배에 집중이 안되기에 내가 지금 무엇을 예배하러 왔는지, 내가 왜 이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봤다. 그렇게 질문하며 묵상하는 가운데 1절 가사가 내 가슴에 박혔다.


Here I am to worship 1절 가사중,


Light of the world

You stepped down into darkness.

Opened my eyes, let me see.

Beauty that made this heart adore You

Hope of a life spent with You


진한 글씨 부분인 과거형의 고백이 눈에 띄었다.


“빛 되신 주님께서 어둠 가운데 오셔서 내 눈을 열어 주셨고 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고 하는 작사가의 고백시를 보며 내 인생에 역사하시고 구원하신 주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고백이 자연스레 나의 고백이 되었고 내가 이곳에서 Here I am to worship 이란 응답을 하는 것 자체가 은혜이자 기쁨으로 다시 다가왔다.


특히 라이브 버전으로 들으면 Here I am to worship 앞에 so(그래서) 나 and(그리고) 를 붙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지금 내가 엎드리고 예배 드리는 이유는 바로 빛 되신 주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1절에서 고백 한 것 같이 어둠의 세상 가운데에서 내 눈 뜨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 하는 응답의 성격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연찮게 한글 번역을 보게 되었는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한글 가사 1절을 보면


빛 되신 주 어둠 가운데 비추사

내 눈 보게 하소서

예배하는 선한 마음 주시고 산 소망이 되시네


라며 ‘내 눈 보게 하소서’의 간구 형이 되어버린다. 앞의 문장에서 봤을 때 ‘let me see’ 는 ‘You let me see’ 의 뜻으로 하는 것이 옳다. 즉 주님께서 내 눈을 여셨고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라고 해석 해야 한다. 하지만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라 오역인지 아님 의도적으로 그렇게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번역을 1.5세, 2세의 미국 선교 단체 멤버들이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한국말이 서툰 그들이라도 한글에 더 능통한 사람이 검토를 했을 것이고 어쩌면 회의를 통해서 한국 상황에 맞게 일부러 이렇게 간구형으로 번역되지 않았나 싶다.


‘예배하는 선한 마음 주시고 (beauty that made this heart adore You)’ 역시 원본은 선한 마음을 달라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아름다움에 내 맘이 주님을 사모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님 아름다움으로 인해 나로 하여금 주를 사모하게 하셨다. 라는 과거형 이다.[2]1절 마지막 부분인 ‘Hope of a life spent with You’ 도 산 소망 되신 주님을 말하는 것보단 소망의 삶을 당신과 함께 보냈다 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의도야 어쨌든 문제는 전체 번역을 쭉 읽어봤을 때이다. 그냥 글처럼 한글 가사를 읽게 되면 마치 ‘빛 되신 주님께서 어두운 내 눈을 밝히사 산 소망이 되신 주님께서 내게 예배 하는 선한 마음을 주세요’ 라고 간구하는 내용이 된다. 사실 주님께서 내게 행하신 일에 대한 고백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조금씩 번역이 의역이 되고 의역이 오역이 되자 찬양의 방향성이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난 영어 가사를 먼저 접했기에 이러한 시행착오가 적었지만 한글로만 부르던 분들은 한글 가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부르셨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방향성의 다름은 원작자의 의도와도 대립되는 부분이다. 팀 휴즈 (Tim Hughes) 와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이 곡은 팀 휴즈가 대학생 시절 빌립보서 2장에 예수님이 수치 당하심과 그분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의 순종에 대해서 묵상 하는 가운데 만들어졌다고 한다. [3] 이 영감이 곡 만드는데 시발점이 되어 절 부분은 금방 썼지만 후렴부분을 절에 대한 응답 형식으로 쓰려고 하다 막혔다고 한다. 그래서 6개월 후에나 절 부분을 다시 묵상하며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를 예배하고 경배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라 지금 우리가 부르는 곡의 후렴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원작자 역시 이 곡의 주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심과 희생, 그리고 순종이라고 밝힌다. 내가 이 찬양을 하다 문뜩 '왜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거지?' 란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내 생각이 응답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번역 가운데 불가피하게 빠지는 내용들이 있는데 잠깐 짚고 넘어가 보겠다.


2절 가사에 보면


Humbly you came to the earth You created
All for love’s sake became poor
만유의 높임을 받으소서 영광 중에 계신 주
겸손하게 낮고 천한 이 땅에 사랑으로 오신 주


가 나오는데 “주님 당신께서 지으신 그 땅에 겸손히 오셨습니다. 사랑 때문에 당신께서는 초라해지셨습니다 (혹 낮아지셨습니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You created 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왜 일부러 자신이 지으신 이 땅으로 오실 필요가 있으셨을까?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직접 자신이 지으신 이 땅에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오신 모습을 저자는 강조 하기 위해서 You created 를 넣은 것 같다. 하지만 한글에서는 그 부분을 생략 한다.


절 부분에서 시제의 변화와 오역은 개연성의 모호함을, 개연성의 모호함은 주제의 변화를 가져다 주었고 마지막으로 번역에서 생략된 부분 역시 주제를 강조하는 부분이 사라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난 이 곡을 그저 멜로디가 좋고 많이 부르기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성숙을 겪고 나선 가사가 보였고 그 가사에 큰 은혜를 받고 그 과정에서 우연찮게 번역에서 놓친 부분을 발견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원작자의 인터뷰까지도 읽을 수가 있었고 한 곡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대해서 그 배경 이야기를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내게 이 곡에서 얻은 유익은 말씀에서 직접 받는 은혜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유익을 얻을 순 없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은혜를 나누기 위해 영어 찬양을 한글로 번역하여 부르게 된다. 영어를 한글로 번역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다 영어 곡은 멜로디와 박자라는 틀에다 시적인 형태까지 가지고 있기에 번역은 더욱더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어려운 작업을 하시는 분들은 그만큼 기도 하시며 신중하게 번역을 하시리라 믿는다. 한 찬양 곡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만큼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을 피하고 더 발전적인 찬양과 예배 문화를 위해선 순수 한글로 만든 좋은 찬양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불러져야 하겠지만 말이다.[4]


두 번째는 Matt Redman의 “Heart of Worship” 을 보며 원작자의 의도를 아는 것이 번역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Note.

1.하나님을 지칭 하는 대명사는 대문자로 시작한다.

예) Light of the world, You step down into darkness 에서 You 는 예수님을 지칭하기 때문에 you 대신 You 로 표기함.


He 나 God 같은 대명사 역시 하나님을 지칭하면 대문자로 표현한다. 성경에서 god 으로 표현된 것은 다른 이방신 들을 말하는 것이고, God 은 여호와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다. Lord 혹 lord, 즉 주님이란 표현도 있는데 Lord 는 주님, lord 는 하인이나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씌인다. 이런 것들을 주의 깊게 보면 많은 대명사들 중에 어떤 것이 하나님 혹 예수님을 표현하는지 더 쉽게 알 수 있을것이다.


2. 선곡한 곡들은 되도록 한국에서 많이 불려지는 번역곡들과 CCLI (Church Copyright License, CCLI.com) 에서 나온 통계에 맞추어 북미나 다른 지역에서 오랫동안 많이 불려지고 있는 Top 25 찬양들 중에서 골랐다. (2009년 기준)




[1] CCLI (Christian Copyright Licensing International, CCLI.COM) 는 기독교 음악 저작권을 총괄 하는 곳이다. 각 교회에서는 이곳에 가입해서 예배 곡을 사용하고 악보를 복사하는 등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더불어 다양한 콘텐트의 혜택을 받는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의 나라가 참여하고 있다.



[2] ‘내 눈 보게 하시네’ 를 ‘내 눈 보게 하셨네’ 로, ‘예배하는 선한 마음 주시고’ 를 ‘예배하는 선한 마음 주셨고” 등으로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어감과 발음상 그런 번역을 피하지 않았나 싶다.



[3] https://en.wikipedia.org/wiki/Here_I_Am_to_Worship_(song)



[4]그래도 이전 보다는 한글 창작 찬양들이 많이 나오고 또 워십 앨범에 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순수 한글 찬양까지도 번역 찬양의 영향에 가사가 어색해 버리는 상황이 생길때가 있다. 이것은 가사의 문제도 있지만 우리가 자주 듣는 음악 스타일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할 문제 인 것 같다. 우리가 자주 듣는 예배음악의 박자나 멜로디 자체가 영어에 맞게 만들어 졌기에 무의식 적으로 한글 찬양에도 영향을 주는 듯 하다. 한글 찬양에 맞는 멜로디와 박자가 따로 구분 되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영어와 어순 자체가 반대인 한글 가사 전달에 더 적절한 것은 있다고 본다. (이점에 대해선 Open the eyes of my heart 에서 짚고 넘어 갈 것이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