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rt of Worship
한국에서 원어민 교사로써의 첫 3개월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이렇게 스트레스인지는 몰랐다. 선생님으로써 경험도 거의 없었지만 아이들과 오직 영어로 대화해야 하고 거기다 학교에 남아있는 자료는 거의 없어 모든 것을 직접 만들고 레슨 까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그래도 잘 가르치려 발버둥 쳤고 그 가운데 보람 있는 일도 생기고 하는 재미까지 붙어 6개월이 금새 지났다. 6개월 후에는 내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최첨단의 영어 전용교실이 만들어졌다. 부족했던 영어 교재들도 다 구할 수 있었고, 교구, 영어 게임들, 터치 스크린 컴퓨터에 전자 칠판까지…… 나머지 6개월 더 신나고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풍요 속의 빈곤 이라 했던가? 3개월 정도 지나니 이상하게 무기력 해졌다. 아이들 레슨은 책에 있는 데로 준비하면 되어서 전엔 3시간 이상 준비해야 했던 것도 1시간이면 훨씬 양질의 레슨을 준비하고 나만의 시간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가 허전했다. 일 하는 재미가 없어졌다. 교사 생활 얼마나 했다고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Heart of worship 은 이러 식의 매너리즘에 빠진 예배자 들에게 구원과 같은 곡이었다. 온갖 음향 장치와 악기, 현란한 찬양과 편안한 환경 속에서 예배의 본질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이들에게 예배의 중심에 예수님께서 계시다고 말한다. 예수님만 예배한다는 고백, 참으로 귀한 찬양이다. 그럼 과연 이 곡을 지은 Matt Redman 역시 모두가 겪는 그러한 매너리즘을 겪고 이런 곡을 쓴 것일까?
처음 이 곡의 지어진 배경을 들은 것은 캐나다에서 섬기고 있던 청년회 예배 팀 멤버로부터이다. 작은 수였지만 예배 팀 모두 예배에 목숨 건다는 모토를 가지고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치열하게 준비하던 우리 역시 시간이 지나자 매너리즘에 빠졌고 하루는 “Heart of worship” 에 대해 나누게 되었다. 한 멤버가 말하길 Matt Redman이 찬양 팀이 매너리즘에 빠져있을 때 찬양예배를 드리다 다 끝날 때쯤 자연스럽고 즉흥적으로 (spontaneous 하게) 만들어진 곡이라고 했다.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곡을 만드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하면서도 ‘정말 그랬을까?’ 라는 약간의 의문을 가지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원어민 교사 생활 가운데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영어 찬양 레슨을 하며 이 곡을 가르치게 되었다. 준비를 해야 했기에 이 곡에 대한 배경 지식을 찾아 보게 되었다. 구글에서 찾다 못 찾고 결국 Matt Redman 의 홈페이지에서 찾았다. 답은 가까운데 있다고 했던가. 바로 그의 글 중에 ‘The behind story of Heart of Worship’’ 이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의 책 ‘The Unquenchable worshiper’[1] 에서 발췌한 글이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Matt Redman과 그의 찬양팀은 그들의 예배를 돕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구들, 음악이나 음향 시스템들이 오히려 예배에 뭔지 모를 방해가 되고 있다고 느꼈다. 겉에서 보면 모든 게 훌륭해 보였지만 예배를 돕고 있다는 것들에 너무 의존하고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는 걸 느꼈다. 특히 예배 시간에 사운드가 어떤지, 밴드는 어떤지, 선곡 한 곡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지를 먼저 보는 자신들의 모습의 모순을 발견하고 고민하다 결국 담임 목사는 모든 악기와 음향 시스템을 치워 버리는 극단적인 결정을 한다. 그리고 목사는 찬양팀에게 매 주 예배를 드리러 올 때 무엇으로 봉헌(offering) 하는가, 희생(sacrifice)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지며 그들과 예배의 중심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결정에 Matt Redman 은 처음엔 불쾌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찬양 예배를 인도하는 것은 그의 직업이었고 악기들을 없앤다는 것은 그의 자리를 뺏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맘을 누그러뜨리시고 그분의 지혜를 보이셨다. 처음 에는 모든 진행이 어색하고 긴 침묵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곧 음악에 엮이지 않고 진실한 마음의 재물 (offering) 을 드리는 법을 회복하고 결국 예배의 중심을 재 발견 한다. 그리고 모든 악기들이 제 자리를 찾았을 때엔 마음의 고백이 입술의 고백을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즌이 지나고 이 모든 일들을 다시 묵상하며 Heart of worship 이란 곡을 만들었던 것이다.
자 이제 Heart of worship 의 한글 번역 가사와 영어 가사를 한번 보자.
찬양의 열기 모두 끝나면 주 앞에 나와
더욱 진실한 예배 드리네 주님을 향한
When the music fades and all is stripped away and I simply come
Longing just to bring something that's of worth
that will bless your heart
한글 가사를 먼저 보자. 무엇이 연상되는가? 열정적인 찬양 예배가 끝나고 홀로 조용히 주 앞에 나와 다시 진실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왠지 Matt 이 설명했던 거와는 약간 다른 분위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자 이제 영어가사를 보자.
When the Music fades and all is stripped away 가 바로 무언가가 끝났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의역했나 보다. 직역 하자면 음악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없어질 때 이다. 의역을 하자면 모든 찬양의 열기가 끝난 것이라고 표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위에서 읽었던 Matt 의 간증으론 사실 여기서 쓰인 fades 와 stripped away 는 무언가 끝났다기 보다 없어졌다는 것이 맞다. 특히 stripped away 는 그가 쓴 background story 에서 직접 쓴 표현이다[2]. Strip away 의 사전적 의미 가 허세, 구실 등을 없애다, 폭로하다 (Naver 사전) 라고 되어있는데 이걸 보면 오히려 사전만 잘 찾아도 본 뜻에 더 가깝게 번역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사 중간 중간에 behind story 에서 이야기 했던 것들이 잘 배어 나온다는 것이다. ‘Longing just to bring something that’s of worth that will bless your heart’ (주님의 마음을 흡족(찬양)하게 할 어떤 존귀한 것을 것 주님께 드리고 싶음 맘이 간절하다) 역시 Matt 의 담임목사가 매주 예배에 올 때 어떤 봉헌이나 희생으로 드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 하나 보자. 2절의 가사이다.
영원하신 왕 표현치 못할 주님의 존귀
가난할 때도 연약할 때도 주 내 모든 것
King of endless worth, no one could express
How much you deserve.
Though I'm weak and poor
All I have is yours, every single breath
첫 줄의 번역은 큰 오역 없이 동일 한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2번째 줄 번역을 대충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사실 주객이 전도 되어버린다.
영어를 직역하자면 “비록 내가 약하고 가난해도 내 모든 것은 주님 것입니다. 내 모든 호흡(목숨)까지도” 이다.
자, 과연 “주 내 모든 것”과 “내 모든 것은 주님 것” 은 비슷한 의미일까? 이렇게 풀어서 이야기 해보자.
“내가 연약하고 가난해도 난 괜찮아요. 왜냐하면 주님은 내 모든 것이기 때문이에요” 와
“비록 내가 연약하고 가난해도 내 모든 것은 주님 것이에요. 내 호흡 (목숨) 까지도” 는 엄연히 다른 뜻이다.
전자는 “주님 이 내 모든 것”이라는 수동적 (passive)인 접근이고 후자는 “나 가진 것 아무것도 없어도 내 모든 걸 드리겠어요”라는 능동적 (active) 접근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부르라면 한글 가사가 더 양심의 가책이 적고 쉽게 불러진다. 하지만 후렴에서의 I’m coming back 과 I’m sorry Lord for the thing I’ve made it 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회심의 곡이다. 다시 주님께로 돌아가겠다는, 이전의 모습들을 후회하고 예배의 중심으로 돌아가겠다는 회심의 고백이다. 회개와 회심은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능동적인 결단이다. 능동적인 것과 수동적인 예배 자세에 대해선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겠다. 또 이 짧은 가사 때문에 한 사람의 예배를 향한 자세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역이었는지, 아니면 알고도 일부러 이렇게 번역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심사숙고 해봐 야 할 문제일 것이다.
“내가 연약하고 가난해도 난 괜찮아요. 왜냐하면 주님은 내 모든 것이기 때문이에요”라는 표현과
“비록 내가 연약하고 가난해도 내 모든 것은 주님 것이에요. 내 호흡(목숨)까지도”라는 표현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미의 차이가 분명하다.
첫 번째 표현은 주님이 내 모든 것이므로, 내가 부족하고 연약해도 괜찮다는 의미이다. 여기에는 나의 상태를 그냥 받아들이는, 다소 수동적인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반면 두 번째 표현은 내가 연약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결단의 메세지이다. 내 목숨까지도 주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능동적이고 헌신적인 태도다.
개인적으로 이 두 표현 중에서 첫 번째 한글 가사가 마음의 부담 없이 쉽게 불려지긴 한다.
하지만 이 곡의 영어 가사를 보면 "I'm coming back"이나 "I'm sorry Lord for the thing I’ve made it" 같은 표현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위로를 받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졌던 것을 뉘우치고, 다시 주님께 돌아가겠다는 회심의 고백이다.
회개와 회심은 결코 가벼운 태도가 아니다. 이것은 적극적인 결단과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다.
수동적인 예배 태도와 능동적인 예배 태도의 차이에 대해서 여기서 길게 다루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짧은 한글 가사가 실제로 한 사람의 예배 태도를 크게 바꾸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원래 영어 가사의 의미와 방향성을 생각할 때, 이 번역이 단순한 오역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이렇게 번역한 것인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후렴 부분은 그나마 그 가사가 단순하고 워낙 뚜렷하게 주제를 나타내서 번역에 큰 문제가 없지만 후렴만큼 중요한 절 부분의 디테일을 들여다 봤을 때 의도가 크게 빗나가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다. 절 부분의 오역은 Here I am to Worship 에서도 발견했던 개연성의 문제로 발전하고 찬양의 방향성의 문제를 드러낸다.
이 곡 번안을 천관웅 목사님께서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마 번안 하시면서 이 많은 정보를 한글로 간결하게 만드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을 듯 하다. 설명조의 가사는 한글로 표현하기 참 힘들다. 하지만 힘들고 추상적인 가사인 만큼 이 곡에 대한 검토를 더 해야 했을 것이고 만들어진 behind story쯤은 공식적으로 요청하거나 검색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곡이 번안 가사로써도 너무도 귀하게 쓰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검색을 하다 우연찮게 모던 워십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레함 켄드릭이 전하는 찬양 번역 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에 대해서 읽게 되었는데 그것을 나누고 이 글을 마치겠다.
그레함 켄드릭목사님께서 번역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조건을 팩스로 보내주셨는데.
첫 번째는 번역하는 사람이 번역하는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즉 영어를 능통하게 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는 번역하는 사람이 뮤지션인가, 즉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과, 마지막 세 번째는 이 사람이 성경을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가 하는 문제였다. [3]
이 세 영역을 모두 완벽히 소화할 수 있는 일인은 적을것이다. 하지만 각 영역에 능통한 사람 셋 이상은 분명히 있으리라 믿는다.
[1] The Unquenchable worshiper,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 (홍순원 역, 조이 선교회 출판부)
[2] Mike, the pastor, decided on a pretty drastic course of action: we´d strip everything away for a season, just to see where our hearts were.
Stripping everything away, we slowly started to rediscover the heart of worship. (Excerpt from Chapter 8 of ´The Unquenchable Worshipper´ by Matt Redman, Kingsway Publications.)
[3] http://www.ekosta.org/entry/조근상-영어찬양과-한국어-찬양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