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the Eyes of My Heart
수능 금지곡이란 것이 있다. 노래의 한 자락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서 시험 보는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음악의 후크(Hook) 가 강력하게 있다는 것이다.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멜로디, 박자 그리고 반복, 하루 종일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돈다.
벌써 십년은 더 됐지만 손담비의 ‘미쳤어’, 원더걸스의 “Nobody”, 슈퍼 주니어의 “sorry sorry” 등은 아직까지도 쉽게 되뇌인다. 대중가요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빨리 어필하고 소비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한 번 들으면 잊지 못할 그런 후크송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사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교회 찬양은 벌써부터 후크송이 유행해왔다. 1-2분 되는 짧은 곡 길이에 반복되는 가사와 쉬운 리듬, 거기다 간혹 한 곡을 수 십 번씩 부르기도 하고 일정 부분 반복도 한다.
난 이렇게 쉽게 불러지는 후크송이 좋다. 쉽게 외워지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찬양에 후크송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좋은 가사들이 우리 입에 계속 맴돈다는 것 얼마나 좋은가? 아무 생각 없이 되뇌다 그 가사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정작 문제는 그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가사를 한번 더 생각 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 그냥 반복 하는 데에서 끝난다. 예배시간의 찬양이라면 대중 가요 가사와는 다르게 알고 불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후크송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가사가 입에서 맴돌다 쉽게 휘발 되어버린다.
Paul Baloche(폴 발로쉬) 의 ‘Open the Eyes of my Heart’ 라는 곡이 있다. 내 맘의 눈을 여소서 라고 한글로 번역되어 한국에서도 많이 불리는 찬양 이다. ‘Here I am to worship’ 과 같이 찬양 예배를 시작할 첫 곡으로 적절한 곡이다. 이 곡을 정확히 후크송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후렴을 제외한 부분에 많은 반복들이 들어간다. ‘Open the eyes of my heart(내 맘의 눈을 여소서)’, ‘I want to see You(주 보게 하소서)’ 그리고 마지막에 “Holy Holy Holy (거룩 거룩 거룩) 까지 찬양 인도자가 마음만 먹으면 무한 반복, 돌림 노래도 가능한 곡이다. 본인 역시 찬양 인도를 하며 집중이 안되고 예배로 들어가기 힘든 상황일 때 준비 된 길이보다 더 많이 불렀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내 맘의 눈을 여소서’ 라고 부를 때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우리는 보통 내 맘의 눈을 열어달라고 할 때 진리를 알게 하시고 특히 곧 들을 말씀이 이해가 되고 마음에 새겨지도록 하는 바람에 내 맘의 눈을 열어 달라고 간구한다. 눈을 뜬다는 표현은 무지함에서 앎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기도 하고, 영어의 표현에서 I see 가 I understand 의 뜻이 있듯이 I want to see You 역시 ‘주 보게 하소서’ 나 ‘주 알게 하소서’ 라고 의역을 해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Paul Baloche 역시 바울 사도가 에베소 인들에게 전하는 편지 중 (에베소서 1장 18절)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eyes of your heart would be enlightened) 라는 구절에 감명받아 이 곡의 첫 부분을 만들었다고 한다.[1] 단순 명료한 찬양 첫 부분의 번역은 지은이의 의도와 큰 차이점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후렴 부분에서 나타난다.
To see you high and lifted up,
Shining in the light of Your glory.
Pour out Your power and love
As we sing holy, holy, holy.
주 이름 높이 들리고
영광의 빛 비춰주시며
권능 넘치길 보기 원하네
거룩 거룩 거룩
하나하나 비교 해 가며 보자. 우선 영어 첫 두 줄의 “To see...” 부터 번역한다면 ‘하나님 영광의 빛이 비추고 높이 들림을 보기 위해서’ 라고 해석 된다.
만약 절 끝부분의 ‘I want’ 부터 이어서 ‘I want to see you high and lifted up…’ 으로 해석한다면 ‘하나님 영광의 빛이 비추고 높이 들림을 보기 원합니다’ 로 번역 가능하다. 특히 영어에서는 To see you 가 앞에 나와 절 마지막 부분인 I want to see You 와 연결되어서 무엇을 보기 원하는지 에 대한 전체 가사의 이해도가 더 쉽다. 음악적으론 ‘To see you’ 부분은 멜로디와 박자, 그리고 노래의 구조상 climax로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기에[2] 이 부분에 강조점이 있다.
이러한 음악적 구조 역시 마치 I want to see you 다음에 과연 “무엇을 보기 위해서” 를 설명하며 강조 하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한글에서는 언어의 구조상 ‘To see you’ 부분이 마지막에 ‘보기 원하네’로 놓여져 있다. 더군다나 한글 가사들은 그 문맥이 자주 끊어지고 나뉘어져서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기 쉽지 않다. 거기다 찬양 번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무엇 무엇을 해 주세요’ 식의 번역으로 되어있다. ‘주 이름 높이 들리고’ 까지는 괞찮지만 ‘영광의 빛 비춰주시며’는 원문에 하나님 영광의 빛 비추심 자체를 표현 하기 보단 ‘하나님께서 비춰 주세요’ 라는 간구의 명령형이 되어버린다. 마지막 두줄 번역인 ‘권능 넘치길 보기 원하네 거룩 거룩 거룩’은 오역에 가깝다. 원문은 Pour out Your power and love as we sing holy, holy, holy 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다 부를 때 당신의 권능과 사랑을 부어주세요” 라는 번역이기 때문이다.
사실 음악적 표현으로 가사를 강조하는 것은 작곡가로써 당연히 의도 되는 것이다. Paul Baloche 는 한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멜로디나 박자가 자신의 의도대로 불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었다.[3] “Shining in the light of Your glory” 부분이 많은 리메이크 버전들에서는 shining 부분을 정박으로 들어가는 예들이 많은데, (좋은 예로 Michael W. Smith 의 “Worship” 앨범에서 정박으로 부른다.) 사실 엇박 (syncopation) 으로 살짝 미리 들어가야 맞는 것이다. 회중들이 따라 부르기에 정박으로 부르는 것이 쉽기 때문에 일부로 정박으로 불렀을수도 있지만 엇박으로 만든 이유 자체가 그 부분을 강조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원곡대로 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듯 번역 과정에서 오는 음악성의 강조점과 의도의 엇나감은 음악과 가사의 적절한 조화로 만들어진 한 곡을 반쪽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실 이런 부분은 번역과 의역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 곡에서 볼 수 있듯이 번역의 과정 가운데 그 내용 마저 반 토막이 나서 찬양의 본 뜻이 왜곡 되어 버리고 한글 가사만 보자면 절과 후렴의 개연성의 이해가 쉽지 않다. 결국 결과물은 직역도 의역도 아닌 어중간한 오역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곡을 만든 Paul Baloche는 절에서 “하나님을 보기 원합니다, 알기 원합니다, 내 맘의 눈을 열어주세요” 라고 하다 왜 갑자기 후렴의 표현들을 하는 것일까? 그는 이 곡의 Song story 동영상에서 밝히듯 절 부분이 만들어진 후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봤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며 성경을 찾아봤고 이사야 6장에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한 것을 표현한 구절을 찾았다. 그리고 이사야 6장 1절부터 나오는 표현들 High and lifted up, 스랍들이 외치는 Holy Holy Holy 등의 표현들이 나타난 것이다. Shining in the light of Your glory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상상이 더해져 표현된 것이다.
전체적인 가사를 다시 보자. 분명 시작은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한 간구였지만 결국 무엇을 보기 원한다고 표현 하는가? 물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더하기 원하는 것이지만 우선 그 말씀을 이해 하기 전 이사야가 본 것 같이 빛나는 영광중의 거룩한 하나님을 보기 원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노래 부를 때에야 그분의 권능과 사랑을 부어 달라고 고백한다. 말씀 듣고 깨닫고 내 삶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고, 그 분의 거룩하심과 나의 허물 됨을 알지 못한다면 예배시간 선포되는 말씀들은 그저 내가 세상을 잘 살기 위한 지혜와 깨달음에 그치기 쉽다.
만약 내가 한글로만 이 찬양을 알고 불렀을 때 위와 같은 비슷한 은혜를 받았을까?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론 위의 깨달음은 영어 찬양을 봄으로 써 시작은 했지만 내 개인적인 상황과 신앙 생활 가운데에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굳이 영어 가사만으로 깨달았다고 말 하고 싶진 않다. 또한 찬양 가사를 보고 모두가 일률적인 생각을 하고 묵상을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각 사람에게 맞게 말씀하시고 일하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찬양의 만들어진 배경과 인용된 성경 말씀들을 더 깊이 알고 부를 때에 이 전에 수백 번 불러왔던 찬양이라도 시편의 기자들이 외치는 것 같이 많은 찬양들이 ‘새 노래’ 로 불러 지지 않을까? 분명 한 것은 진실로 마음의 눈을 열어달라고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 보고 싶은 사람들에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가운데 회개의 심령이 부어지고 이사야와 같이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라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이 생겨 날 것이란 것이다.
Paul Baloche 오리지널 버전
워낙 다양한 팀들에 의해 자주 불려지는 노래라 오리지널 버전은 살짝 생소하다. 특히 뒤에 화음 넣는 코러스가...
https://www.youtube.com/watch?v=Yr4tmqKzCkY&list=RDYr4tmqKzCkY&start_radio=1
Michael W. Smith 버전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우리가 평소 예배에서 자주 부르는 곡들을 Michael W. Smith가 웅장한 대형 예배 음악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 감동적인 콰이어, 그리고 풍성한 편곡이 돋보이는 명반으로, 예배의 감동을 한층 깊게 경험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Open the eyes of my heart 는 박자의 편곡이 들어갔다.
https://www.youtube.com/watch?v=HwKCvuorI9E&list=RDHwKCvuorI9E&start_radio=1
[1]http://www.leadworship.com/blog/?p=181
[2]To see you 부분의 음정은 E# G# B 로 올라간다. 특히 주의 깊게 볼 것은 박자이다. To see You 전 후의 박자를 살펴보면 모두 8 분음표에 엇 박자들이 많지만 to see you 의 see you 는 꾹 꾹 눌러주는 4 분음표 형태를 하고 있다.
[3] 아쉽게도 이 말을 한 동영상을 다시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