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비움

Trivium

by 데이빛

이곳은 홈스쿨링 및 기독교 교육 전문 서점이었다. 작은 규모의 서점이라 책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책들이 생소했다. 원서책들도 많았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정신없이 구경을 하다 벽돌 두께의 시커먼 책이 눈에 들어왔다.


기독교적 고전교육 (Christian Homeschooling in a Classical Style)
이 책을 들고 나서자 직원은 나에게, '이 책 홈스쿨러들 책인데', 하며 말을 흐렸다. 아마도 아직 젊어 보이는 남자가 이런 책을 사가는 것이 무척 어색했나 보다.

고전교육이 뭔지 상세히 설명해 줄 것 같아 이 책을 집어 들고, 수업 자료로 쓸 수 있는 책들을 이것저것 집어 들었다.


왠지 컬트적인 느낌의 책들과 내용들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고민했던 것들에 대해서 또 다른 대안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삼학(Trivium)이라는 고전교육의 구조를 발견했다.


문법 (Grammar), 논리 (Logic), 수사 (Rhetoric)


이 세 가지를 삼학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는 삼학과 사학이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토도 들어있다. 《기쁨의 동산》(Hortus Deliciarum), 12세기


고대 그리스 시대에 교육 방법론으로 시작하여 중세 시대 체계화 되어서 그 시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다 이 방법으로 배웠다. 삼학 이후에는 사학(Quadrivium)을 배웠다. 현대의 대학원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언어 중심의 교육: 삼학(Trivium)

1. 문법 교육 (Grammar)은 가장 기초가 되는 단계로, 라틴어와 그리스어 문법을 학습하며 언어의 구조를 익히고, 정확한 독해와 작문 능력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학생들은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키케로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을 낭송했는데, 단순한 암송을 넘어서 억양과 운율, 표현 방식까지 모방하는 훈련이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교사가 읽어주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 적는 정확한 필사 연습도 반복되었으며, 이는 언어 감각을 정밀하게 단련하는 수단이 되었다. 중세 수도원 학교에서는 라틴어 성경과 고전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곧 모든 학문의 기초였기에, 문법 교육은 필수적인 첫걸음이었다.


2. 논리 교육(Logic / Dialectic)은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대화법 전통에서 시작되어,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 단계에서 학생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Organon'을 통해 삼단 논법, 귀납과 연역의 구조를 배우며 사고의 틀을 정리하고, 교사와의 문답을 통해 진리에 접근하는 소크라테스 대화법을 훈련한다. 또한 disputatio라 불리는 공식적인 논쟁 연습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고 반박하는 능력을 기른다. 이러한 훈련은 중세 대학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대표적으로 아퀴나스 같은 학자들이 이를 통해 신학과 철학을 논증하는데 활용했다.


3. 수사 교육(Rhetoric)은 고대 로마에서 가장 실용적인 학문으로, 정치와 법정에서의 연설 능력은 시민의 필수 교양으로 여겨졌다. 학생들은 키케로나 퀸틸리아누스의 수사학 저작을 통해 청중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구성할 것인가를 배웠으며, 실제 연설문을 작성하고 낭독하며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는 웅변 훈련을 반복했다. 특히 declamatio라는 공개 연설 훈련에서는 학생들이 실제 청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평가를 받는 과정을 통해 표현력과 설득력을 연마했다. 로마 사회에서는 이러한 수사 능력이 곧 정치적 생존을 좌우할 만큼 중요했고, 진리와 정의, 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자가 곧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Trivium은 고대와 중세 세계에서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진리를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사고하며, 아름답게 표현하는 인간의 전인적 교육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수 중심의 교육: 사학(Quadrivium)


사학(Quadrivium)은 산술 (Arithmatic), 기하학 (Geometry), 음악 (Music) 그리고 천문학(Astronomy)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학이 문과라면 사학은 이과와 같다. 산술은 수를 다루고 기하학은 공간에 놓여 있는 수를 다룬다. 음악은 시간의 수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천문학은 공간과 시간 안의 수를 다룬다.


1. 수의 본질을 탐구하다: 산술 (Arithmetic)

산술은 단순히 계산 문제를 푸는 과목이 아니었다. 고대 교육에서는 숫자를 세상을 이루는 근본 원리로 여겼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모든 것은 수다”라고 주장하며 각 수에 의미도 부여했다.

예를 들면,

1: 단일성, 시작, 신성

2: 이중성, 대립, 다양성의 시작

3: 조화, 완전한 수 (시작–중간–끝이라는 구조)

4: 안정, 우주의 기본 구조 (예: 4계절, 4 원소)

피타고라스는 특히 “3은 가장 단순한 완전한 수”라고 보았으며, 삼각형의 세 변이 가장 기본적인 닫힌 형태이기에 형태의 시작으로 여겼다. 그들이 중요하게 여긴 수는 10(테트락티스, Tetractys)인데, 이는 단순히 1에서 4까지의 자연수를 더한 값이 10*이 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주의 근원적인 질서와 조화를 나타내는 완전한 수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 점(1), 선(2), 면(3), 입체(4)의 합으로, 우주의 모든 차원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를 나타낸다고 여겼다.


2. 세상의 구조를 파악하다: 기하학 (Geometry)

기하학은 수를 공간 안에서 구현하는 방법이다. 선을 긋고, 도형을 만들고, 비례를 계산하면서 눈에 보이는 질서를 분석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자기 학교(아카데미)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 들어오지 말라”라고 까지 썼다. 그만큼 기하학은 철학과 진리 탐구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었다. 오늘날에도 건축, 미술, 물리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기하학은 형태와 질서를 설계하는 핵심 도구로 사용된다.


3. 시간 속의 수학: 음악 (Music)

고전교육에서 음악은 예술 과목이기 이전에 수학 과목이었다. 왜냐하면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은 정확한 숫자의 비율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옥타브 (도에서 도까지)는 1:2의 비율로 나타난다. 1m짜리 줄을 튕기고, 50cm 줄을 튕겼을 때 50cm 나는 소리는 한 옥타브 높은 소리를 낸다.

2:3은 완전 5도 (예: 도와 솔)

3:4는 완전 4도 (예 도와 파)의 화음을 낼 수 있다.


이처럼 고대 사람들은 음악이 단순한 감성이 아니라, 숫자들이 시간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울리는 현상이라고 보았다.


4. 수학으로 우주를 이해하다: 천문학 (Astronomy)

천문학은 수학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학문이다. 별과 행성의 위치와 주기를 계산하고, 그 운동의 규칙성과 비율 속에서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발견한다. 고대인들은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신의 질서가 자연 속에 새겨져 있다고 믿었다. 천문학은 오늘날의 천체 물리학으로 이어졌고, 여전히 수학적 모델링을 기반으로 우주를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문이다.


이 네 과목은 우주와 인간 사이의 조화를 이해하고, 세상을 단순한 물질이 아닌 의미 있는 구조로 바라보는 통찰을 주는 학문이었다.


이 삼학과 사학을 합쳐서 7 Liberal Arts (자유 학예)라고 하는데, 미국의 리버럴 아츠 학교라 불리는 그 리버럴 아츠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현대에는 인문, 교양 등으로 해석된다.


7가지 리버럴 아츠에서 삼학(Trivium)을 현대적으로 다시 재해석한 이가 있었으니, 20세기를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이자 영국 옥스퍼드의 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여성인 도로시 세이어스 (Dorothy Sayer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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