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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Jun 27. 2024

"32개월 아이한테 심리상담을요?"


2주 전 목요일. 로디가 아파 수액을 맞아야 했다. 다음 날 등원은 어렵겠다는 판단에 친정엄마께 아이를 맡기고 약을 타러 나온 사이를 이용해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선생님으로부터 꽤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요지는 로디에게 심리상담을 한 번 받아보게 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


로디는 종종 다른 아이들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기도, 때리기도 한다. 이런 행동이 반복된다면 선생님도, 친구들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로디는 하기 싫은 활동에는 영 참여하는 것을 꺼리기에 단체 활동에서 종종 벗어나기도 한다.


안 그래도 지난 학부모 담 때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유치원으로 올라가면 가만히 앉아서 진행되는 활동들이 많은데 로디는 대개 그러한 활동을 좋아하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놀이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하셨다. 이런 모습이 계속된다면 로디가 버거워할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은 나에게 로디의 상담 이야기를 하신 후 혹 놀라셨냐고 물어보셨다. 안 그랬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날 읽으셨는지, 로디에게 문제가 있어서 상담을 받으라기보다 본인의 아이도 가볍게 심리 상담을 받아봤는데 나쁘지 않았다며, 아이의 기질이나 지금의 마음 상태를 전문적으로 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래. 어른으로 따지면 MBTI 해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받아보자 싶었다. 사실 최근 들어 로디와 아침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일단 옷을 갈아입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그런 아이들은 많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으나 옷을 거부하는 강도가 매우 강해 남편과 내가 함께 입혀도 꼭 누군가는 로디의 발길질에 차여야 했고 그 누군가는 화가 났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대부분의 말에 로디는 ‘싫어’, ‘안 해’, ‘미워’, ‘가!’로 대답했다. 자기주장이 강한 시기라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우리 가정에 변화가 필요했다.


상담센터를 가야할지, 정신의학과 병원을 가야할지부터 난관이었다. 둘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로디의 현 상태를 살펴보니 걱정과 불안이 더 커졌다.


혹시 로디에게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갑상선이 많이 안 좋은 엄마에게서 태어나 ADHD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 내 말을 이해하고 표정을 읽는 아이인데 왜 고쳐지지 않을까.


얼마나 더 강하게 이야기해야 행동이 교정될까.


그렇게 이틀이 지나 주말이 왔다. 요즘 남편은 토요일 하루만큼은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려 로디와 나를 어디로든 데리고 다니려는데, 이번 주는 공원에서 텐트를 쳐 놓고 잔디밭에서 공을 찰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무직인 우리 부부는 6월 오후의 자외선 세기를 간과했다. 살이 타들어갈 정도의 햇살 탓에 도저히 바깥 활동이 어려웠다. 그래서 텐트에서 한숨 자고 저녁쯤 되어 놀려고 했는데 로디가 낮잠을 심히 거부했다. 이제야 엄마, 아빠와 함께 놀 기회가 생겼는데 잠으로 시간을 버리기 아까웠겠지.


결국 낮잠을 재우려는 부모와 자지 않으려는 로디 사이 갈등은 깊어졌고 결국 좋은 마음으로 나간 피크닉은 로디의 오열로 끝났다.


귀가 후 병원이고 상담센터고 상관없이 종일 찾아봤다.


부산 아동 심리센터

부산 어린이 정신의학과

부산 어린이 상담센터

부산 만 2세 상담 병원


온갖 검색어를 동원하여 우리 아이 정서가 정상적인지 확인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남편이 당장 상담센터에 가는 것보다 교회 영아부 전도사님을 먼저 찾아가보지 않겠느냐 물었다. 남편 말로는 우리가 출석하는 교회 영아부 전도사님이 아이 성품, 정서비전이 있고 관련 교육을 받으신 분 같단다.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었지만, 우리 로디와도 제대로 된 교류가 없었던 분 같지만 그래도 남편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여쭤볼 수 있는 분이니.


일요일 오전. 영아부에 들어가자마자 언제쯤 전도사님께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어슬렁거리다 정말 적절한 장소인 수유실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대에 마주쳤다.




전도사님, 혹시 3분만 시간 내주실 수 있을까요? 긴히 여쭤볼 게 있어서요.


(놀란 듯한 표정) 아, 네. 무슨...


사실 로디가 어린이집에서 조금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단체 활동에 잘 참여를 안 하려고 해서 담임선생님이 심리 쪽으로 상담을 한 번 받아봤으면 하시던데 혹시 부산에 믿을만한 곳을 아시려나 해서요.


교회에서는 그런 모습을 전혀 안 보였는데 어린이집에서 그런가요?


네... 그래서 혹시나 ADHD나 정서불안같은 게 있지 않은가 해서요...


일단 어머니. 유명한 병원은 대기가 1~2년인 곳도 많구요. 상담센터는 영업을 목적으로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어서요. 큰 문제가 없어도요. 미술 치료같은 것도 로디 나이대에 진행하기엔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구요.


아, 네...


그런데 조심스럽지만 로디가 어린이집에서 보인다는 행동들은 그렇게 문제 있어 보이지 않는데요? 로디가 체격이 큰 편이니까 다른 아이들과 같은 행동을 해도 더 크게 보이고 힘 조절이 부족하니 로디 입장에서는 억울한 상황이 생길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침 꼴깍)


공격적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 1년 정도 참여해봤는데요. 보통은 억압적인 환경에 놓여있을 때가 많았어요. 혹시 부모님이 로디 행동을 강제로 억제하거나 규제를 많이 둔 건 아닌지 먼저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울컥) 네... 어린이집에서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최근에 많이 혼을 내긴 했는데...


터져버린 울음 탓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진 전도사님 말씀. 자신의 아이도 예민한 편이라 중학생인 지금도 전날에 다음 날 입을 옷을 미리 다 꺼내두고, 다음 날에 어떤 스케줄로 하루가 진행될지 브리핑하듯 아이에게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깨달았다.


아이에게서 문제를 찾으려 했으나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었음을. 그리고 내 행동을 어떻게 교정해야 할지 감이 왔다.


마지막으로 전도사님이 한 마디 덧붙이셨다.


로디가 예민한 것도 맞는데 똑똑해서 그래요.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하고, 눈치도 있고, 자기 감정을 표현할 줄도 아는 아이에요. 숨어서 아이들 때리고 화내는 아이들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눈에 보이는 곳에서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오히려 건강한 거예요, 어머니. 조금만 더 지켜봐 보세요.




로디와 별 교류가 없었다고 생각했던 전도사님도 나보다 로디를 더 잘 파악하시는 듯했다. 제 3자로서 아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란 생각으로 로디를 향한 나의 믿음이 부족했음을 덮을 수는 없었다.


로디가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아이라니.


아이의 이해 능력, 표현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문제면 이제 아이에게 본인의 마음을 물어봐야 할 차례다.


그날 저녁. 로디를 재우면서 조심스레 물었다.




로디. 어제 엄마, 아빠랑 놀러 갔을 때 엄마가 로디한테 많이 화냈었잖아.


응.


그때 마음이 어땠어?


이후 로디의 말과 행동은 내게 심한 충격을 안겼고 한동안 주변 소음이 안 들릴 만큼 날 깊은 우울에 빠뜨렸다.


로디가, 어, 로디가 마음속에서 (자신의 뺨을 세게 치며) 머리도 때리고, (입을 세게 치며) 입도 때리고, (허벅지를 세게 치며) 다리도 때리고! 막 때렸어.


이 말과 행동은 스스로를 때리는 로디의 손을 내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내 심장도 어찌나 빨리 뛰는지 목소리까지 떨렸다.


(떨린 목소리로) 로디가 속상해서 스스로 때렸어?


응. 막, 마악 때렸어.


엄마한테 속상한 게 아직 남아있어?


업써.


엄마 안 미워?


엄마, 아.




말도 못하고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때리면서 엄마를 향한 화를 다스려놓고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이 남아있지 않다는 로디였다. 남편 말 한 마디에 3일은 삐쳐 있는 엄마로서 부끄럽고 마음이 무너졌다.


다음 날부터 등원할 옷을 전날에 미리 꺼내놓고, 다음 날 일어날 일을 미리 이야기해줬다. 아침을 항상 체할 것처럼 먹어서 늘 말렸는데 양껏, 만족할 만큼 먹게 해줬다. (그렇게 해보니 배부르면 알아서 턱받이를 뺄 수 있는 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내 기상시간을 30분 앞당겨 나의 출근 준비를 미리 마쳤다.


그러니 적어도 집에서만큼은 로디의 무분별한 떼, 억지가 매우, 많이 사라졌다.


단 하루만의 변화였다.


물론 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어제 로디는 여러 가지 (엄마 생각에) 억지를 부렸고 난 딱 세 번을 참은 후 화를 터뜨려 버렸다. 아마 새벽 4시에 일어난 로디로 인해 잠을 설쳐 인내할 힘이 부족했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잡고 로디에게 사과한 후 다시 다짐한다.


로디는 다 듣고 있고, 알고 있음을.


이해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혼나는 순간에도 터뜨리는 웃음은 부모 말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노력임을.




사랑하는 로디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표정과 행동은 그렇지 않아 미안해.


엄마는 자라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도, 들어본 적도 많지 않아

그 어색함을 깨보려 노력 중인데

아직 표정과 행동에 묻어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나봐.


엄마는 다 큰 어른인데도

이해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데

2년 8개월이 평생인 너는 오죽할까.


로디는

아무것도 모르고,

표현할 줄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엄마면서

한 번 말하면 딱 알아듣길 바랐던 것이 모순이네.


오늘 밤은

반성보다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길.


오늘도 사랑해.



열심히 즐기자, 아들아



* 표지 사진 출처 | Unsplash @ Charlein Gra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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