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일요일. 마음 맞는 다섯 가정이 모여 캠핑장을 찾았다. 아이들이 충분히 뛰놀 수 있게 넓은 잔디밭이 있는 곳이었다.
자리를 세팅하고 고기파티를 하려는데 제대로 된 캠핑을 해본 적 없는 나는 일손 부족한 사람 티를 보란 듯이 내며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비들에 밝은 대낮인데도 동공이 절로 커졌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두 손은 어딘가 고장난 모양으로 허우적댔다. 이런 행사에서 나는 항상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사람 1’을 담당한다.
멀쩡히 있는 젓가락 위치를 바꾼다든가, 닫혀있어야 할 아이스박스를 열어 재껴본다든가 하는 의미 없는 움직임만 해대던 중에 옆에서 얼른 먹어보라며 내민 젓가락. 노동 없이 먹어도 되겠냐는 죄송한 마음도 잠시. 세상에! 밖에서 구운 고기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집에서 못 먹는 불향 입힌 고기. 우리 아가 입에도 넣어줘야지 싶어 아이들이 모인 저 들판을 향해 시선을 멀리 두었는데 우리 아들 형상은 없다. 더 먼 곳을 향해도 보이지 않자 레이더 폭을 점점 좁혀보니 어머, 얘가 내 다리 옆에서 까치발을 하고 테이블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아닌가.
'말소리라도 내라, 얘야.'
다른 아이들은 모두 들판을 헤집고 다니는데 우리 로디만 테이블 밑에서 ‘이 어른들이 뭘 하고 있는 건지’, ‘틀림없이 먹을 것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인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지인 “(로디를 보며) 로디는 항상 어른들 먹을 때 옆에 같이 있다니까.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진짜? (나를 보며) 너무 부러워요. 우리 애는 안 먹어서 걱정인데.”
로디 “꼬기. (큰 조각 가리키며) 이거, 이거!”
로디도 다른 아이들처럼 노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노는 것에 관심이 없어서 먹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음식과 놀이를 택하라면 역시나 음식이다. 입에 한 움큼 물고 우물거리면 "빠비요베베('맛있다'는 로디 언어)"를 외칠 때 보면 그저 천사같은 아기 로디다.
어른들 틈에 껴서 고기를 받아 먹는 로디가 예뻐서인지 한 분이 작은 의자에 로디를 앉히고 아이스박스 뚜껑 위에 로디 개인 접시를 올려 주셨다. 이제 테이블 밑에서 엄마에게 받아먹는 아기 새가 아니라 제 의지로 먹을 수 있게 된 사람 로디는 접시 위에 놓인 구운 파인애플과 고기를 번갈아가며 포크로 꽂았다. 그리고 얌!
김으로 밥 싸먹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을 적에도 밥에 김을 올려 집게손으로 싸 먹었고, 엄마를 보며 상추 조각 위에 밥과 고기를 올려 먹던 아이다. 오동통하고 작은 손이라 다 흘리는 탓에 떨어진 쌈을 보며 울기 일쑤이지만. 이제는 과일과 고기를 산적처럼 꽂아 먹을 수 있는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고기를 작게 잘라주면 큰 조각을 달라며 소리 지르는 이 아이는 식당에 가면 성인 1인분을 해내는 어린이 로디.
고기 타임을 종료하고 어른들은 식도까지 찬 고기 탓에 배를 굽히지도 못하고 빈 자리에 앉았다. 시간이 도와 줄 소화를 기다리면서 아이들을 체크한다. 잠에서 깬 아가에게 분유를 먹이고, 자려는 아이에겐 쪽쪽이를 물리고. 아이가 하나인 나는 가만히 앉아 로디를 보는데 어찌나 무해하게 웃는지. 떠다니는 비눗방울을 잡아 다니고 공중에 날아다니는 캐치볼을 따라다닐 때면, 방해물 하나 없는 들판 저 멀리까지 퍼지도록 꺄르르 웃을 때면 누가 뭐래도 우리 로디는 때묻지 않은 아가가 틀림없다.
그러다 형 씽씽이를 뺏어가서 혼을 내니 “안 타!”하며 씽씽이를 밀쳐내고 꼬장을 부린다. 비눗방울 물이 다 떨어진 것을 보고 어른들을 따라 통에 세제를 더 넣으려다 손에 세제를 부어버린다. 마시멜로를 직접 녹이겠다고 불로 달려간다. 웃을 때와 달리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나타낼 때의 목소리는 가히 '다 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우렁차다. 비닐만 가지고도 잘 놀던 아가를 지나 이제는 형들이 가지고 노는 것들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다시 보니 로디는 영락없는 어린이였다.
유아기에서 유년기, 청소년에서 성인의 경계는 나이로 구분된다지만 아기에서 어린이의 경계는 정확히 어느 지점일까. 옷 사이즈가 토들러에서 주니어로 넘어가는 시점? 아니면 아기띠를 졸업한 때? 카시트를 바꿔줘야 되는 시기?
아직은 아기와 어린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로디다. 아가일 때는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어린이일 때는 귀여움, 사랑스러움에 딱밤 한 대만 딱 때리고 싶은 미움도 묻어있다.
지난 주말. 캠핑장의 기억이 좋아서 로디와 함께 원터치 텐트로 공원에서 캠핑 흉내를 내보려다 나는 영 따라와주지 않는 로디에게 화가 났고 로디는 모든 걸 하지 못하게 하는 엄마를 원망했다. 서로에게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로디의 오열에 "다시는 너랑 캠핑 안 와. 알았지?"라며, 32개월 아이에게 유치한 엄포를 놓은 엄마였다.
로디를 향한 내 마음이 삽시간에 변하는 것을 보니 미움과 사랑의 경계도 참으로 흐리다. 발자국에 지워진 땅따먹기 금처럼.
그럼에도 사랑하는 내 새끼인데.
아무리 아기를 넘어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부모가 되어도 내 새끼인데.
사랑하는 로디에게.
어제 밤에는 엄마 입에 뽀뽀를 쪽 해주던 아기 로디야.
오늘 아침에는 옷을 안 입겠다며 엄마를 밀어버리는 어린이 로디구나.
경계에 걸쳐 아기인지 어린이인지 모를
한참 어린 로디이지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해.
그와 동시에
뚜렷한 경계 속 완전한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넌 나의 사랑이 필요한 아이야.
로디가 아기든, 어린이든, 학생이든, 어른이든 그 어떤 존재든.
넌 내가 많이, 많이 사랑하고 아껴야 할 내 새끼야.
함께 있다 보면,
익숙해지다보면
이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자꾸 잊어버려.
없어봐야 아는 사랑 말고
함께 있어도 늘 느껴지는 사랑이 되고 싶다.
사랑해, 내 새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