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숨 Aug 23. 2024

분노는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


오늘은 아들 로디와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지난 한 달간 고민하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하려 한다. 내 감정과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던 동안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고민은 ‘왜 나는 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자꾸 화를 낼까’였다. 화가 나도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부모가 돼 가지고 미성숙한 아이처럼 화를 조절하지 못했다. 


아이를 향해 처음 부정적 감정을 내비쳤던 때를 기억해봤다. 아무리 모유를 먹이려 해도 뒤로 뻗대고 우는 아이에게 한숨을 쉬며 울음을 보인 것. 2~3시간마다 아이를 먹여야 할 때는 두세 달을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 하기에 아무리 내 새끼고 생후 100일도 안 된 아기이지만 아이가 울 때마다 피곤과 짜증이 밀려오고 급기야 수유 시간이 두려워졌다. 그것도 잠시. 아이가 잘 먹고, 잠을 잘 자기 시작할 때는 어떻게 이런 천사에게 화를 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 2개월 전까지 나는 아이에게 화를 냈다. 어른에게, 그 누구에게도 내본 적 없는 고성과 인상. 언제부터 아이에게 화다운 화를 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무서운 것은 한 번 소리를 지르고 나니 그와 똑같은 데시벨을 다시 꺼내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로써 알게 된 사실. 분노는 관성의 법칙을 따른다는 것.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은 고함, 찡그림, 한숨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이러한 부정적 감정 표현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한 번 차오른 한계를 유지하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새끼라도 감정이 따르는 관성을 떨쳐내는 것이 쉽지 않다. 


분노가 관성을 따른다는 사실보다 무서운 것은 엄마의 화를 받는 아이의 마음은 무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는 엄마가 주는 상처에 면역되지 않는다. 빠르고 강하게 날아오는 엄마의 분노에는 단련되지 않는다. 


이쯤에서 의아해진다. 왜 분노는 참으려 해도 쉽게 터져 나오는데 정작 아이에게 표현되어야 할 사랑은 마음에서 꺼낼 때 노력이 필요할까. 억울하지만 화는 든 자리가 보이고 사랑은 난 자리가 보인다. 100번 사랑해도 한 번 화를 내면 그 임팩트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분은 참고 사랑은 가능한 넘치게 표현하려 한다. 그래서 화는 쉽게 터지고 사랑은 노력이 따라야 된다는 압박이 오는 것 아닐까. 아무리 속으로 사랑해도 따뜻한 미소와 스킨쉽, 다정한 말투 등 아이가 알고 있는 '사랑의 방식'으로 표현되지 않으면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모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분노의 관성을 꺾기 위해 화를 억지로 참아야 하는 걸까? 아니. 그보다 사랑을 더 많이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도, 아들 로디를 위해서도 좋을 테다. 사랑을 이용해 화를 이끌려는 관성에 저항하는 것이다. 아마 평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 비지 않도록. 화가 들지 않도록. 화가 나도 다른 방식으로 승화되도록. 


이렇게 말하니 내가 매일 화를 내고 아이는 매일같이 내 화를 돋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로디와 한창 힘들었던 시기에도 즐거웠던 순간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만 3세를 앞둔 로디와 그간 함께 한 날들을 되돌아보니 앞으로 함께 할 날들을 더 따뜻하게 유지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몇 주간 ‘아이와의 관계’에서 내가 노력할 부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타고난 본성이 있으니 이런 다짐 백 번 한다고 쉽게 변하지는 않을 테다. 그런데 쉽게 변하지 않는 마음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 글의 능력도 믿는다. 수십 번 정돈한 생각을 글로 정제하는 동안 내 머리와 마음에 얼마나 많이 새겨졌겠나. 


‘사랑의 힘으로 분노의 관성을 꺾자’


참을 인 세 번 새길 시간에 사랑을 더 표현해보리. 




사랑하는 로디에게.


알고 있어, 로디. 

너가 훗날 이 글을 볼 때

‘엄만 글로만 반성하네’라고 생각할 테지. 


그래. 

엄마는 지금도, 그때도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야. 


그렇지만 이 모든 생각이 다 진심인걸. 

뜻대로 행동이 안 되어 그렇지. 


그렇다고 엄마가 잘했다는 것은 아냐. 

다만 엄마도 알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로디가 이 글을 읽고 있을 때도

아마 엄마는 알고 있고 노력하고 있을거야. 


경상도 엄마이지만(?)

사랑을 더 표현해보도록 노력하꾸마.

(지역 색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성장 환경을 살짝 어필해 보는거야.)


참, 글을 쓰는 오늘은

엄마가 로디에게 화낼 일이 없을거야.

오늘 넌 외갓집에 갈 거거든 :) 


아빠와의 단 둘의 시간도 

너무 귀하고 잘 누릴건데

그렇게 누리는 동안

너가 계속 떠오를 거야. 


진짜야. 


우리 내일 꼭 웃으면서 만나자!


오늘도 사랑해. 



배부르고 등따신 어느 날



* 표지 사진 출처 | Unsplash @ Dan Burton 

이전 16화 엄마 자존감을 높여주는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