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배변훈련 중인 로디. 일상생활에서 소변은 어느 정도 가리지만 대변은 꼭 기저귀에서 해야 한다. 그간 로디에게 많은 규율과 제한을 두며 키웠다. 불안이 많은 엄마라 혹여 다칠까, 남에게 피해를 줄까 싶어서. 그러니 배변훈련에서만큼은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고 천천히 진행하려 했다.
그런데 35개월이 되니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천천히 진행해도 괜찮을까. 조금 더 강하게 알려줘야 하는 것 아닌가. 강요해서는 안 되지만 스스로 용변을 가릴 수 있을 때까지 부모가 책임지고 가르쳐줘야 하지 않나.
생각이 ‘부모의 책임’까지 다다르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겠다 싶었다. 그간 아이가 아파 한 달간은 이유식 수준으로 밥을 먹여서 자극적이지 않은 간식도 굉장히 좋아할 시기다. 그러니 아이에게 과자, 음료를 허용하여 대변을 변기에 처리하도록 유도해 보았다.
훈련 첫 날. 로디는 물건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다. 블루베리라면 환장하는 로디에게 외할머니표 블루베리 머핀은 응가 프로젝트의 첫 시작을 빛내 줄 훌륭한 도구였다. 머핀을 이미 2개를 해치운 로디가 마지막 남은 머핀까지 탐냈다. 그런데 때는 저녁식사 직전이었고 이때는 당연히 간식을 안 주는 것이 원칙이나 이날은 간식으로 배를 채우는 한이 있더라도 보상 효과가 먹히는지 시도해보고 싶었다. 게다가 응가를 못한 지 이틀째였기에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과연 결과는?
“큰 변기에 응가 성공하면 머핀 줄게.” 한 마디에 “응가하고 싶어요!” 하더니 우다다다 화장실로 향했다.
드디어 유아 변기시트를 써보는 구나. 앉는 것도 거부하던 로디는 스스로 바지를 내려 계단을 타고 변기에 앉았다. 감격스러웠다.
“하나-아! 두우-울! 셋!”하더니 날 꼭 안고 힘을 주었다. 변기에 앉은 로디가 안을 수 있는 위치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함께 “으----------------응!”을 외치니 배변훈련은 내가 하고 있는 것 같았다. 5분쯤 지났을까. 힘을 주던 로디가 이번에는 제법 오래 침묵 속에서 힘주기를 이어갔다.
“읏-하.”
마침내 숨이 트인 로디는 환히 웃었다. 기저귀였다면 엉덩이에 다 묻었을 질감의 두 덩이를, 휴지 몇 장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해산했다. 그리고 로디는 엄마의 격한 칭찬과 머핀을 얻었다. 고생의 대가로 만족스러운지 행복하게 한 입 물었다.
이제와 알게 된 사실. 아이가 배변훈련에 성공했다고 해서 너무 격하게 칭찬하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한다. 대소변을 성공적으로 가리지 못했을 경우에는 부모가 그토록 칭찬을 해줄 수 없기 때문에 아이가 실망을 한다고.
하지만 ‘보상 전략’의 첫 시도는 효과가 대단했다. 그래서 다음 번 시도에서는 로디가 요즘 꽂힌 야구 놀이와 관련된 아이템을 선물로 준비했다. 나는 로디에게 “로디, 또 변기에 응가하면 엄마가 큰 선물 줄게.”라고 말했다. 로디는 매일 변기에 앉아 힘주기를 시도했지만 두 번째 성공은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았다. 선물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서 그런 걸까? 먹을 것을 준비했어야 했나?
그래도 층간소음 문제없고 사람을 때려도 아프지 않은 pvc소재, 그러나 풍선 공을 쳤을 때 타격이 가능한, 무엇보다 로디가 부담 없이 휘두를 수 있을 정도의 크기라는 모든 조건을 갖춘 제품을 해외직구로 구매했으니 밀고 나가는 수밖에.
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로디에게 계속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며 일러두고 ‘큰’ 성공을 기다린 2주. 로디가 변기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많은 노력을 한 날이 있었다. 로디가 선물을 기대하기에 나도 2주간 창고에서 펼쳐지지 못한 방망이를 꺼내야 겠다 마음을 먹고 “알았어! 로디 노력했으니까 엄마가 선물 줄게!” 당당하게 말하고는 창고에 들어갔다. 따라오는 로디에게 “아니! 거실에서 딱 기다리고 있어, 로디. 로디가 진짜 좋아할 거야.”라고 근엄하게 얘기했다.
왜 그랬을까. 이때의 내 말을 후회한다.
로디는 “응!” 외치더니 거실로 호다다 뛰어갔다. 창고에 들어가 방망이 풍선을 꺼내 공기 주입구를 찾으려는데 저 멀리서 “엄마, 언제 와요?”, “엄마, 다 됐어요?”라는 질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남편의 도움으로 배트를 완성해서 등에 숨기고 슬금슬금 거실로 향했다.
로디는 무려 한쪽 발뒤꿈치를 딛고 꽃받침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땐 좋아할 줄 알았지
너의 그 기대, 엄마가 꼭 충족시켜주리.
짜잔!
로디는 계속 웃고 있었다. 큰 눈망울에 입꼬리도 올라가 있는데 그대로 멈춰있는 모양을 보니 즐거워서 웃는다기보다 자신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몰라서 이전의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라 나도 좀 전의 흥분이 가라앉았다.
“이거 로디가 내내 노래 불렀던 방망인데. 이제 집에서 야구할 수 있어!”
아까와 같은 표정의 로디. 하지만 빛을 잃은 눈. 그제야 나는 로디를 만족시키지 못했음을 알았다.
“큰 선물 아니야...?”
잠시 주눅 든 내 말에 로디가 답했다.
“큰 선물 마쟈.”
그러고는 방망이를 들어 이렇게도 휘두르고, 저렇게도 휘두르며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엄마가 실망할까봐 좋아하는 척하는 건가 싶을 만큼 놀고 있는 중에도 텐션이 높진 않았다.
이 장면은 고스란히 남편 핸드폰에 담겼고 회사 동료에게 보여주니 사무실이 떠나가라 웃었다. 어떻게 로디 눈에 영혼이 하나도 없냐며. 그리고는 내게 말했다.
“이건 엄마가 잘못한 거예요! ‘크으으은’ 선물이라고 말하면 어떡해요. 이렇게 작은 장난감인데!”
그렇구나. 로디에게 큰 선물이란 부피도 크고 그야말로 선물 받은 기분이 나는 장남감이 큰 선물인 것이다. 주방놀이나 킥보드와 같은.
로디가 식단하는 한 달간 그토록 사랑하는 사탕을 일절 주지 않았는데 선물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지금은 사탕을 줘서라도 배변훈련을 이어가려 하고 있다. 아직 성공하진 못했지만.
남편의 말이 맴돈다.
“여보한테 큰 선물은 로디한테 허락하지 않았던 것을 허용해주는 건데 로디한테 큰 선물은 말 그대로 커야 하나봐. 방망이 사달라고 그렇게 노래 불렀는데 로디한테 그건 큰 선물이 아닌 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