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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Sep 26. 2024

예민 기질을 물려받은 아들에게


아이가 손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먹을 때 양육자의 반응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다 먹인 후 아이와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 vs ‘그때그때 아이 손을 닦아주는 사람’


나는 후자였다. 아니, 지금도 후자에 가깝다.


로디는 밥을 스스로 잘 먹는 편에 속하지만 수저보다 손으로 음식 먹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로디. 앞에 숟가락 있네. 밥은 숟가락으로 먹는 거야.”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밥을 집어먹고 밥풀, 기름때 묻은 손을 옷에 닦는 로디다. 이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음식을 향해 뻗어나가는 로디 손을 낚아채고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말한다.


“숟.가.락.으.로.먹.는.거.야.”


이제는 테이블 앞에 물에 적신 손수건을 올려둔다. 그러면 로디는 기름 묻은 손을 옷에 닦으려다 손수건으로 옮긴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 했다. 교육이 잘 되고 있다면서.


로디는 손이나 발에 무언가 묻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면서 손으로 반찬 집어먹기를 즐긴다.) 옷에 물을 찔끔 흘리면 절반 이상은 당장 옷을 갈아입으려 한다. 크록스를 신고 밖에 나가면 혹여나 발에 모래나 돌이 들어올까 잔디를 밟지 못한다. 옷에 있는 태그를 불편해하고 음식을 먹다 입에 들어간 쪽파나 어쩌다 들어간 아주 작은 과일 껍질을 다 골라낸다. 무언가 혼자 힘으로 만들려던 것을 부모가 도와주거나 실수로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낸다. 신경이 예민할 때는 자신이 생각한 일련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처음부터 다시 하기를 고집한다. 예를 들어 목욕하다가 신경에 거슬리는 일이 발생하면 다시 몸을 더럽혀야 한다며 소리를 지르거나 다시 어린이집을 갔다 와야 한다며 달려나가서 나는 한동안 지쳐 있었다.


"쟤는 왜 저래, 진짜."라며 한탄했으나 그럴 것이 없었다. 로디의 이런 모습이 만들어진 책임은 90% 나에게 있었다. 집에 걸려오는 전화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햄버거나 짜장면 등 입에 묻힐 수밖에 없는 음식을 먹을 땐 항상 냅킨을 옆에 둬야 하며, 외출 시 가스불과 잠금 장치를 확인했음에도 뒤돌아서면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 의심스러워 가스밸브가 가로로 된 모습, 현관문이 잠긴 모습을 날짜가 기록되는 사진으로 남겼다. 그렇다고 결벽증이 있거나 병적인 신경증이 있진 않다. 그냥 예민한 영역에서 유연해지지 못할 뿐이다.


로디의 예민함 혹은 강박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뾰족한 물체에 덴 듯 순간적으로 마음이 따가워온다. 유연하고 푸근한 아이였다면 스트레스 역치가 높았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다 얼마 전 로디의 기질을 두고 어린이집 선생님과 전도사님이 사용하는 단어 선택이 달랐음을 기억해 냈다. 어린이집에선 로디를 예민하다고 표현했고 전도사님은 섬세하다고 표현했다. 모든 기질은 장단점이 공존한다. 아이 기질에서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고 단점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도와줘야 된다.


다음 주 일요일, 로디와 그 부모인 우리 부부는 기질 상담을 받을 예정이다. 미리 검사지를 받아 체크한 후 만나서 상담하는 시스템인데, 아이 기질의 경우 6살 이후 정확하다고 하나 미리 해봐도 괜찮다고 해서 가볍게 테스트해보려 한다. 나와 남편은 놀랍게도 각자 가장 많이 체크한 유형에 서로가 거의 체크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다른 사람이었구나. 알고 있었는데 역시나였다.


로디 기질 검사지는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과 부모 둘이서 체크해야 된다. 선생님께 부탁하여 받아 온 로디 검사지를 보니 선생님과 내가 바라본 로디의 기질은 비슷했다. 사실 나는 때때로 어린이집 선생님과 내가 생각하는 로디의 모습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내가 로디를 잘못 판단하고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하루 중 또래 집단에 속한 로디를 가장 많이 보고 경험한 분은 어린이집 선생님이니 그 분이 로디에 대해 생각하는 많은 부분이 실제 로디와 가장 닮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선생님과 내가 생각하는 로디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고 잠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와 같은 기질로 평가된 로디의 검사지를 보고 생각이 많아졌다.


로디의 예민함이 강화되지 않도록, 섬세함이 삶의 여정에 무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먼저 로디와 비슷한 나의 기질부터 살펴봐야 할 테다. 나는 30년 넘게 살면서 스트레스를 스스로 만들어내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위험 상황을 예측하면서 대비해보고 계획을 설정하고 수행하는 데에 능숙하다. 단체 생활에서는 이런 기질이 도움이 될 때가 많았다. 내 인생을 돌아보며 어떻게 이 힘든 성향을 다루며 살아왔는지에 대한 경험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테다.




사랑하는 로디에게.


어제 엄마가 회사 갔다 집에 오니

로디의 차가 예쁘게도 줄 서 있더라고.

그 가지런한 모습을 보니 얼마나 마음이 편하던지.


“모두 제자리! 모두 제자리! 모두모두 제.자.리!”

소리를 지르며 장난감을 정리하는 널 볼 때마다

아빠는 이렇게 말해.


“이거는 백퍼 엄마야.”


아빠 붕어빵인 줄 알았던 너에게

엄마의 한 자락이 보인다니

흐뭇할 때도 있지만

이러한 성격이 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그만큼 몸 건강과 기분 상태가

쉽게 안 좋아지는 것을 알고 있어서

엄마는 또, 또 걱정을 해.


그래도 기질은 바뀌지 않으니

잘 다루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어?


우선

‘스트레스 받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건전하면서도 너만의 방법으로

기분 전환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아.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하는데

정말 그래.

면역력을 떨어뜨려서

쉽게 몸이 아파 와.


로디가 한동안 힘들어했던

‘디피실’이란 나쁜 균도

로디가 그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찾아왔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로디.

무엇보다 너의 마음을 잘 살피고

악한 생각과 병이 틈타지 않게

건강하고 마음을 이완시키는 숨을

크게, 천천히 들이쉬어 봐.


엄마가 생각하기에

건강하고 마음을 이완시키는 숨이란

실제로 깊은 호흡이기도 하고

너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넣어주는 친구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없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야.


무조건 너의 편을 들면서

함께 우울해 하거나

부적절한 방법으로 감정을 방출시키려는 친구가 아냐.

너의 감정이 잘못됐다면서

좀 다르게 생각하라며 질책하는 친구도 아냐.


너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

그러면서 너가 올바르고 온화한 방향을 가도록

조언해줄 수 있는 사람이 분명 나타날 거야.


그 첫 사람이 엄마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도

엄마 스스로를 잘 파악해보고

마음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려 해.


그래서 엄마는 먼저

이것부터 도전하려 해.


엄마의 이전 실수를 용납하는 것.


그 이후에

엄마의 섬세함을 발동해서

이전의 실수를 어떻게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지

하나씩 뜯어 볼 거야.


완벽할 수 없어.

우린 하나님이 아니잖아.

최대한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매일 노력하면 되는 거야.


스스로를 용서하고,

무너지거나 틀어지면

거기서부터 다시 세우고 조정하고,

얼룩이 묻으면 빨고.

그러면 되는 거야.


성냄과 한숨보다

깊은 호흡과 옅은 웃음으로

긴장을 푸는

너와 내가 되길.


오늘도 여전히 사랑해.



내년에는 엄마랑 손잡고 이곳을 건너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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