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안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직원들이 환자들에게 발열 체크를 하며 마스크 착용 및 손소독제 사용을 안내하던 때였다.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이든 나같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이든 상관없이 부서별로 돌아가며 보초를 섰기에 평소 마주칠 일 없던 직원들과 2시간을 함께 앉아서 환자들을 맞이했다.
사무직이기에 환자를 만날 일이 잘 없는 나에게는 생소한 일이었고 잘 모르는 직원들과 몇 시간이고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는 게 낯설었다. 사람이 많은 부서는 한 사람당 차례가 늦게 돌아오지만 우리같이 몇 명 없는 부서는 2~3일마다 자리를 지켜야 했다. 특히 수술방 직원들은 종종 내려오지 못할 때가 있어 그 빈자리를 메우는 직원도 사무직인 우리여야 했기에 출산을 앞둔 난 환자와 자주 접촉해야 하는 그 시간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50~60대 정도의 점잖은 중년 남성분이 우리 앞에 오셨다. 안과 직원이냐 물으셨고 그렇다고 했다. 열을 재려 체온계를 꺼내는데 그 분 입에서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 나왔다.
“여기 눈 이식도 하나요?”
눈 이식. 지금 의료 기술로는 각막 이식 정도만 가능할 뿐 망막이나 눈 전체를 이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무슨 말을 하려고 ‘눈 이식’이라는 말을 꺼내셨는지 걱정되었고 의료진이 아니라 그 뒤의 질문들 또한 부담스러웠다.
“아... 지금 의료 기술로는 눈 이식은 불가능해요, 아버님.”
“아, 그래요... 사실은 내가...”
몇 초간의 침묵동안 옆 직원과 곁눈질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이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긴장하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내 동생이 지금 눈이 많이 안 좋대요. 황반... 변성이던가. 실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던데 내가 걱정이 돼놔서...”
황반변성. 말 그대로 망막 중심부에 위치하며 중심 시력을 담당하는 황반이 변성되는 질환이다. 시력 저하, 시야 왜곡, 중심 암점 등 시력에 치명적인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는데 방치하면 실명까지 진행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주로 노화가 원인인데 초기에 발견되면 루테인으로 황반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출혈을 일으키는 신생혈관이 발생하는 단계까지 가면 신생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주사를 눈에 맞으면서 병의 진행을 늦춰야 한다. 하지만 주사 치료마저 효과가 적다면 병의 진행을 막는 것이 쉽지 않다.
아버님 말씀만 들어봤을 때는 동생 분의 눈 속에 출혈이 발생하여 정말 실명 위험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의료진이 황반변성 질환을 설명하다 최악의 경우까지 언급한 것을 마음에 두고 미리 걱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명 가능성과 상관없이 동생이 아프다는 말에 본인 눈을 떼 주려 안과를 찾은 그 마음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본인 눈은 양쪽 다 건강하니 한쪽 정도는 줘도 된다고, 정말 방법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아버님 앞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AI같은 답변을 내놓은 나는 오래도록 더 좋은 답변은 없었을까 생각했지만 짧은 지혜로는 다른 답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쭙잖게 위로를 드리기도 어려웠다.
형제 사이가 어땠길래 눈까지 빼 줄 정도로 지극정성일까. 그 뒤로 종종 상상했다. 한쪽 눈이 없는 삶을. 양쪽 눈을 잃은 생활을. 자신이 없었다. 한쪽만 잃는다 해도 나이가 들어 남은 한쪽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상상을 관두었다. 상상만으로도 힘들었으니.
가족을 위해 간, 신장을 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수술 후에도 다들 잘 사는 듯해 보여 ‘준 사람, 받은 사람 모두 괜찮아 보여 다행이다’ 싶었는데 사실 수술 당시에는 다행스러운 결과가 100% 보장되지 않는다. 많은 고민과 불안을 안고 수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술이 잘 끝나 겉으로는 괜찮아보여도 수술하지 않았을 때와 비교해보면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후유증과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나만 해도 갑상선을 한쪽만 뗐지만 남은 한쪽은 제 기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아무리 약을 잘 먹어도 남들보다 빨리 지치는 편이다. 쓸개를 떼고 더 이상 담석증으로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담즙 역류로 자주 속이 쓰리고 심한 경우 명치 통증에 앓아눕는다. 그래도 겉으로는 멀쩡히 회사를 다니고 아이를 본다.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를 신체적 변화에도 남몰래 아픈 밤을 보내는데 하물며 눈이 사라지는 변화를 스스로 감당하겠다며 나서는 마음, 그럼에도 실현될 수 없는 그 각오 앞에 무너지는 마음을 잠시나마 받쳐드리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지만.
3년이 지났다. 서로를 아프지 않게, 평온하게 마주 보고 계실까. 부디 그러고 계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