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참 잘 살아냈다

갑상선암 일기 α

by 새벽숨

2017년 1월부터 많지는 않지만 큰일들을 겪었다. 갑상선암 수술과 외할머니 사고사. 전자는 나에게 그리 중요한 사건이 아니었고 후자는 세상이 무너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감정을 잘 추슬렀고 시간이 흘렀다. 금방 괜찮아진 듯했다. 그런데,


엄마가 다쳤다.


내가 수술한지,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불과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번 사건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꼭 물어봐야 했다, 하나님께. 우리 가족에게 어떤 재앙이 더 남았는지. 언제까지 어둠의 세력이 내 삶을 뒤흔들게 놔두실 건지. 얼마나 더 몰아붙이실 예정인지.


어느 주일, 엄마는 미리 교회에 가 있었다. 성도가 30~40명밖에 되지 않는 교회라 여 집사님, 권사님들이 매주 밥을 준비하시는데 엄마가 속한 구역 차례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찍이 식사 준비를 하러 가셨다. 나도 곧 교회로 가야 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엄마다.




“새벽이 곧 나오지?”


“응.”


“그러면 엄마 옷 좀 가져와 줘.”


“무슨 옷?”


“그냥 바지랑 위에 입을 만한 옷.”


“왜?”


“아, 그리고 빨간 약도 좀 챙겨와 줘.”


“다쳤어? 피났어? 옷에 피 흘렸어?”


“아니, 그냥 그것만 잘 챙겨와 줘.”


“하... 왜 또 다쳐, 진짜. 조심 좀 하라고, 요리 할 때! 알겠다, 일단.”




난 감정 수업을 다시 받아야 한다. 불안과 걱정은 분노로 표현되는 감정이 아닌데 감정에 이름표를 엉터리로 붙였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내 감정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에 맞는 표현을 꺼내지 못한다. 무슨 감정인지 모를 때는 화라는 표현만 꺼내놓기 바쁘다.


그날도 그랬다. 다쳤다는 엄마한테 화부터 났다. 주섬주섬 옷을 챙기면서, 빨간약을 찾으면서 도대체 얼마나 정신이 없었기에 피에 옷이 젖을 정도로 다쳤나 싶었다. 요리를 하다 자주 다치는 엄마에게 제발 조심 좀 하라고, 왜 그렇게 부주의하냐고 말하기 바빴다. 밥에 물 하나 제대로 못 맞추는 내가. 뭐 하나 거들어 드리지도 못하면서.


아빠 차에서 내리자마자 교회로 뛰어 올라갔다. 그런데 엄마는 두 할머니 권사님의 부축을 받으며 식당에서 나왔다. 피는 없었는데 걷질 못한다. 엄마 눈이 빨갛다. 넋이 나간 날 보며 집사님이 말씀하셨다.


“국을 끓이는데 냄비가 작아서 다른 냄비에 옮기다가...”



펄펄 끓는 국이 엄마 몸을 덮쳤다. 우리가 교회로 가는 시간 동안 엄마는 대체 왜 여기서 이러고 있었을까. 빨리 택시 타고 병원부터 갔어야 하지 않았나. 그런데 누군가 내 뒤에서 하는 말을 듣고 그 뒤로는 기억이 희미하다.


“화상 부위에 소주를 부을까 했는데...”


이렇게 얘기하기엔 그 누군가에게 죄송하지만 더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글로 옮기자면, 꼭지가 돌았던 것 같다. 교회였기에 망정이지, 일반 가정집이었으면 냉장고에 있던 소주를 엄마 몸에 부었을 것 아닌가. 교회에서 분노를 터뜨릴 수는 없어서 억눌렀는데 솟구치는 악한 감정을 계속 삼키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런데 웬일인지 엄마가 곧 돌아왔다. 병원에 입원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빨리 왔을까, 생각보다 괜찮았던 건가 싶어 긴장을 조금 풀려던 나였다. 얼토당토않았던 믿음이다. 응급실이라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내일 화상 전문병원으로 가야 한단다. 상태를 보니 아마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살이 벗겨져 피와 고름으로 번졌을 피부에 옷이 닿은 엄마 모습을 보니 바짝 마른 회색빛 입김이 새어 나왔다.


예배 전인지 후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새 난 주방과 화장실로 가는 통로에서 엄마와 마주 보고 있었고 그때 내 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왜 우리야! 내가 다 참았다고. 수술 받았을 때도,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도 우리라고 이런 일 없겠냐고, 괜찮아지겠지 하고 넘어갔다고. 근데 왜! 엄마한테까지 이게 뭐야!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인사불성 된 폭탄으로 변한 나는 20년을 쥐 죽은 듯이 다닌 교회에서 그렇게 터져버렸다. 그 폭발로 인한 잔해가 누군가에게 충격으로 꽂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 폭발 이후, 내 몸 상태와 할머니의 죽음이 자연스레 떠올랐고 처음으로 그 사건들과 직면했다. 울고 싶지 않아서, 내 처지를 비관하고 싶지 않아서 잊으려 했을 뿐이지, 정말 괜찮았던 건 아니었나보다. 곪다가 결국 터져버렸지만, 그래서 상처는 남았을지 모르지만 단단하게 아물어 건드려도 아프지 않을 만큼 치유가 되었다.






2017년, 평탄한 삶에 나름 작은 굴곡이 생겼지만 잘 이겨냈다. 그리고 2년 뒤, 나는 내 인생 두 번째 수술을 하게 된다. 하지만 몸이 아팠을 뿐 내 마음에는 타격을 주지 않았다. 그토록 여렸던 나도 단단해지고 있는 것이리라. 역시 고난에는 성장이 따라오고 그것이 성장임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시간이 지난 지금이, 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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