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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Feb 16. 2021

마인드컨트롤의 유효기간

날 시험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던 한 달.


회사 다니면서 그만두고 싶었을 때가 한두 번이었겠냐마는 늘 지금이 제일 힘들고 다 때려치우고 싶지 않나.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지긋지긋한 이곳을 나가고 싶은 날, 바로 ‘오늘’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마인드컨트롤 할 상황이 생기면 각자 외는 주문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상황 1.
회사에서 이상한 일을 시킨다. 난 그런 일을 하려고 이 회사에 지원한 것이 아닌데.

대처 마인드 1.
누구도 책임이 없는데 아무도 할 사람이 없다. 그럼 현장직이 아닌 사무직인 사람들이, 그 중 상대적으로 업무 시간 조율이 쉬운 내가 하는 게 회사 입장에선 베스트다. 조직원인 이상 조직을 위해 일해야 하는 건 당연한데. 그 대가로 돈 받고 있지 않나.


상황 2.
대표의 사상에 동조할 수 없다.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건 대표의 마인드를 따라간다는 뜻이니 나가야겠다.

대처 마인드 2.
대표랑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돈이 필요해서 있을 뿐이지, 나가면 남이야.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만 아니면 따라야지.


이런 식으로 알고리즘을 만들어 버티고 있지만 요즘 그 약빨이 하루를 넘기지 못한다. 최근 회사에서는 처리되어야 할 더러운 뒤치다꺼리가 있다. 대표는 그것을 누가 하든 상관 없다. 대표의 관심 밖인 '뒤치다꺼리'의 주체는 종종 내가 되곤 한다. 그것은 나에게만 관심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그 피곤한 일을 마치고 온 날 밤에는 필요 이상으로 비관적이었던 하루를 깊게 묵상한 후 내일 출근을 위해 단념하며 마무리한다.


그래서 뭐, 나갈거야?
어쩔 수 없지


그렇다. 온갖 욕설이 튀어나오지만 그 모든 말을 가로막는 건 다름 아닌 월급이다. 회사는 우리를 누군가 투입되어야 하는 일에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면 응당 출동해야 하는 팀원 정도, 딱 그정도로 생각한다. 팀장이 왜 우리 팀만 이래야 하냐고 소리쳐도 달라질 건 없다. 늘 그랬으니.


날 괴롭게 하는 생각을 지우기 위함인지 일을 마치고 오면 온 몸에 힘이 없고 넋이, 기력이 빠진다. 그렇게 체념하고 생각을 정리하면 차분해진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기 전 혹은 그 다음 날 아침,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앞서 단념한 마음을 다 뭉게버리는, 해결되지 않은 근본적인 물음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그래서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냐고
&₩?!@#%*^


최근 나는 내 성향상 힘들어할 법한 일에 계속 투입되어야 했다. 뒤에서 팀원 정도로만 있었어도 덜 힘들텐데 팀장 마냥 그걸 꽤 적극적으로 해내야 했다. 한두 번으로 끝날 줄알고 최선을 다했으나 그 횟수와 기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만 해도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비대해져서 숨이 꽉 막힌다. 그래서 마스크를 내리고 급하게 큰 숨을 들이쉴 때가 잦아졌다.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마인드컨트롤은 다 했다. 분명 어제는 납득이 된 이유였는데 하루도, 아니 1시간도 안 되어 “그래서 남들은 다 지 업무 보는데 나는 왜 이딴 걸 해야 하는데. 전문직 아니라고 무시하는 게 이런 거지.”라는 생각으로 결론난다. 이 결론은 ‘내가 이 일을 한다해서 본업을 지킬 때보다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닌데 누구도 책임 없는 일을 왜 해야 하나’, ‘내 시간과 체력을 왜 이딴 일에 써야 하나’, ‘그냥 닥치고 하고 있으니 다들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구나’와 같은 생각들로 뒷받침된다.


더 쏟아부을 약이, 더 붙일 밴드가 없다. 이 정도면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지만 늦었다. 이직할 상황이 못 되고 돈은 필요한데 프리랜서 할 만한 능력도 없으니 그냥 닥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회로가 필요했고 마침내 만들었다. 변이된 바이러스때문에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는 백신을 다시 손봤다고 해야 할까. 코시국을 반영한 비유.

그냥 죽자
길면 3시간, 짧으면 2시간
지금 이 미친 감정은 3시간 뒤로 미루자


그 하기 싫은 일을 하는 동안 잠깐 죽었다 생각하며 감정을 지웠고 그 효과는 제법 오래 갔다. 사실 무슨 일인지 구구절절 이야기해도 그게 그렇게 힘들 일이냐고 되물을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입사 초기에 내가 해왔던 뻘짓보다는 체력적으로 훨씬 덜 힘든 일이다. 하지만 머리가 큰 건지 일에 대한 감사함이 사라진 건지 그깟 외근에 숨이 안 쉬어지는 신체적 반응과 그냥 잠깐 죽으면 된다는 극단적인 감정적 반응까지 올라오는 건 아무래도 정상이 아니다. 사실 외근 자체가 힘들다기보다 우리 회사, 그 직원들을 반길 리 없는 사람들과 2~3시간을 붙어서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수발을 들어야 하는 일이기에 곤혹스럽다. 그 사람들이 우리를 마냥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어느 정도 적응도 되어 반갑게 인사도 하는 사이이지만, 그래도. 아무리 괜찮으려 해도 그 일을 앞둔 몇 시간은 내면이 바닥을 치고 있다. 그것은 내 의지로 어쩔 도리가 없다.


그런데 오늘 대표(의 가족)는 우리보고 타부서가 힘드니 지원을 하라 한다. 본업은 제쳐두고 누구도 책임없는 일을 해결하러 뛰어다니는 우리보고, 그 더러운 뒤치다꺼리 하나 해결하지 않는 타부서를, 뭘 도우라고?


우리 본업에 대해서는 우리 외에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또 이렇게 확인 당했다. 병원 내 사무직, 특히 마케팅 관련 자리는 이런 취급을 받은 것이 낯설지는 않다. 일을 해도 겉으로 보이지 않으니 대표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쉽지만 그만큼 본업 없이 월급을 축내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 시국에 직업이 있는 것이, 내 책상이 있는 것이 감사한 것 아니냐는 생각으로 위로 받았던 알고리즘도 이제 끊어졌다.




결론 없고 교훈 없는, 독자에게 찝찝함만 안겨주는 주절거림을 공개적인 플랫폼에 공개하는 이유는 이 다음 오피스라이프가 오늘의 무력함을 극적인 아름다움으로 끝맺어 줄 것이란 허황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출근은 당분간 계속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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