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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Mar 31. 2021

굴욕 면접의 최후


나의 첫 직장은 대학교 졸업 후 약 한 달만에 들어간 편집디자인 회사였는데 그곳에 들어가기까지 약 5~6번의 면접을 보았다. 면접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그마저 대부분 내가 원하는 자리는 아니었다. 카피라이터가 되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구직사이트를 뒤져 보았으나 부산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범위를 조금 넓혀 광고, 홍보, 마케팅과 관련된 단어를 검색했다.


그런데 여러 번 면접을 본 후 깨달았다. 아무래도 부산에서는 글쓰는 직업을 구하기 어렵겠다는 것을. 그래서 영상 전문업체인 A회사에 이력서를 냈다. 영상 작업을 좋아하진 않지만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 도전은 해보고 싶었다. A회사는 홈페이지도 없고 지도도 이전 주소인지 전화로 안내받은 길과 달라서 길치인 내가 꽤나 헤맸다. 용케 도착하여 사무실 문을 열었는데 이 무슨 찌든 담배 냄새인지, 내 폐가 괜찮을까 걱정되었다. 팀장인지 부장인지 하는 사람이 날 기다리고 있었고 회의실로 인도했다. 질문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근무가 9시 시작이긴 한데 그래도 30분 일찍 오는 게 좋아요. 가능하면 내일 바로 출근하세요. 그런데 내가 저녁에 한 번 더 연락을 줄게요. 내부에서도 회의를 해야 해서." 라는 말은 기억에 남았고 그 중 "내일 출근하세요."라는 말이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취업을 성공했다고 말했고 저녁에 면접관의 전화를 기다렸다. 하지만 저녁 9시가 지나서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갈등했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하지만 난 패기와 군기가 넘쳤던 취준생이라 '연락하시는 걸 까먹으셨나보다'라고 받아들이고 다음 날 아침, 출근하라는 시간의 30분을 앞당겨 8시에 회사 건물에 도착했다.



그런데 건물이 통으로 잠겨있었다. 2월은 아직 추웠는데 원피스에 트렌치코트 하나 달랑 입고 핫팩도 없이 건물 밖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 사이 어떤 한의원 원장이라는 사람이 다음에 커피 한 잔 하자며 명함을 주고 가는 별 희한한 에피소드도 만들어졌다.


그러다 8시 30분이 되었고 (1분의 오차도 없이 딱 그 시간에) 누군가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이때다 싶어 후다닥 올라갔는데 여전히 A회사 문은 닫힌 상황. 조금 더 기다리니 한 아저씨가 회사 문을 열었고 날 의아하게 보았다. "아, 오늘 첫 출근하는 김새벽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원래 밝은 사람인 양 인사를 했다. 그는 여전히 날 이상히 여기며 정수기 옆에 포장마차 의자 하나를 꺼내 놓고 앉으라 했다. 그렇게 한동안 불편하게 앉아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직원들이 보이면 꼬박꼬박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던 중 아까 문을 열어 준 아저씨가 커피를 타러 정수기로 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제가 타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며 컵을 잡으려 했다. 그런데 그 분은 내 행동에 당황하시며 "아, 됐어요."라며 자신의 컵을 움켜 쥐었다. 내 손에서 멀어진 컵을 보며, 아니 뭣 모르고 뻗은 컵 모양의 내 손이 머쓱했지만 아무 타격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웃어 보였고, 어느새 9시가 되었다. 나에게 8시 30분에 출근하라던 면접관은 9시 정각에 출근했고 그는 30분간 포장마차 빨간 의자에서 대기 중인 내 소식을 듣자 난처해 하며 날 회의실로 불렀다. 그러고서는 하는 말이 "아, 내가 어제 출근하라고 했던가요...? 저녁에 다시 연락 준댔는데." 이제야 상황 파악을 한 나는 "아, 내일 바로 출근하라고 하셔서 그런 줄 알았어요."라고 대답했고 "근데 내가 연락 안했잖아."라는 말이 날아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제가 착각했다며, 죄송하다며 고개를 연신 숙이면서 서둘러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전 직원에게 허리 굽혀 인사한 낯선 여자'에게 쏟아진 눈동자들을 애써 무시하고 그 회사를 나왔다.



어제 엄마한테 '취직된 것 같다'고 전화했던 버스에서 "내가 잘못 들었대. 아니래"라는 말을 내뱉는 기분은 참 뭐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어제 받았던 전화 한 통이 기억났다. 내 이력서를 보고 연락 준 B회사. 대학교 모집요강을 만드는 곳 같지만 부수적으로 업체 사보도 기획하고 제작하는 듯했다. 취직이 되었다고 믿었던 어리석은 나는 어제 그 전화에 죄송하다고, 취업을 했다고 대답했었다. 


시간이 없었다. 어제 걸려 온 번호로 곧장 전화를 했다. 사정이 생겨 그 회사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괜찮다면 어제 그 면접을 오늘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상대는 좋다고 하면서 어느 지하철역에서 보자고 했는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곳이었다. 상관 없었다. 이 취준생의 꼬리를 오늘 내로 떼지 않으면 평생 족쇄처럼 차고 다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들어간 곳이 내 첫 직장이었다. 많은 축하를 받았고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자존감이 올라간 나날을 보냈다.


입사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A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직장을 구했냐고. 그래서 나는 최대한 직장인같이, 업무 톤으로 "네, 지금 근무중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결론적으로 B회사도 3개월 후 나에게 굴욕을 주었지만 뭐, 됐다. A회사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할 수 있었으니. 




+) 추가된 기억


A회사에 면접을 보기 전 C광고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면접을 가보니 외부 기관에 전화하여 영업을 따는 것이 주된 업무였고 글 관련 업무는 온라인광고 배너 글을 작성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기 당한 기분이었지만 취준생인 내가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못 되었다. 면접에서는 가방 속에 있는 물건을 팔아보라는 둥, 그간 써왔던 글 중 좋았던 걸 읊어보라는 둥 여러 가지 미션이 주어졌다. 전화로 사람을 응대해야 하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길과는 전혀 다른 자리였음에도 그마저도 간절했던 때였다. 면접 후 언제쯤 연락이 올까 하며 며칠간 핸드폰을 놓지 못했는데 결국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그 후 나는 B회사에 입사 후 3개월만에 잘렸고 한두 달 후 현 직장인 병원에 입사했다.


병원에서 일한 지 1년쯤 지났을까. 과장님 책꽂이에서 두툼한 서류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1년 전, 내가 면접봤던 C광고회사의 제안서였다. 병원을 어떤 식으로 광고해줄 수 있는지 아주 열심히도 작성된 문서였는데 생각해보니 그 회사가 우리 회사와 3분 거리에 있었다. 그 서류는 과장님 책장에 쑤셔져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쓰레기통에 안착되었다. 아마 나 외에 누구의 손에도 넘겨 봐지지 않았을 그 제안서에게 나는 '먼지 쌓인 책장보다 거기가 더 안락해 보이구나'라는 시선을 건넨 후 곧바로 거둬 들였다. 그리고 그날 내가 쓴 포스팅이 병원 공식 블로그에, 그것도 모두가 볼 수 있는 온라인에 게시된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블로그나 쓰는 게 내가 원했던 길일까, 라는 지금의 고민과는 전혀 달랐던 초심이다.




6년째 다닌 현 직장.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차분히, 성실히 유종의 미를 거두려 한다. 퇴사 후 내가 언제 또 직장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더없이 이 시간을 아껴주겠다. 여전히 싫은 일은 싫지만 취준생 삶에서 구원해 준 직장에서의 초심을 불러 들인다면 이 지긋지긋한, 최악인 업무도 그렇게 싫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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