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후문을 통하면 출근까지 3분 정도는 아낄 수 있다. 그래서 애용하고 있는데, 카드를 찍고 문을 나서면 두 사람이 지나가기엔 버거운 좁은 나무 계단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주택인 친정에 살면서 계단은 생각보다 위험한 이동수단이라는 것을, 특히 날씨가 궂을 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곳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혼자 오다니는 계단이라도 오르내릴 때 핸드폰을 하지 않고 아무리 추워도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는다.
그날은 부츠에 롱코트를 입고 출근을 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계단을 한 칸 한 칸 내려오는데,
삐끗 /
하...
놀래라.
사고로 이어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순간이었다. 계단을 다 내려온 후 심장이 조금 두근거렸을 뿐 감사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순간 다칠 뻔하고 죽을 뻔했는지. 그럼에도 지금까지 무탈하게 지내온 것이 기적이라는 것을. 교통사고 위험은 수없이 많았고 엄마가 가스불 끄는 것을 깜박하고 잠드는 바람에 집이 홀라당 날아갈 뻔 했던 적도 있다.
하나 하나 어떻게 다 나열할 수 있으랴마는 기억나는 몇몇 장면이 있다.
#1
경주에서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와 함께 자전거를 탔다. 그는 저 앞에, 나는 뒤따라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내리막길이 나왔다. 오랜만에 잡아 본 핸들이었지만 급경사도 아니었고 짧은 내리막이라 잘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돌부리가 있었는지 핸들이 갑자기 틀어졌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놀란 그는 달려와서 부축해 주었는데 다리엔 피가 나고 쇄골이 뻐근했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일어났는데 내가 넘어진 곳은 차도 바로 옆이었다. 조금만 더 멀리 가서 넘어졌으면 차도 쪽으로 넘어갔거나 바리게이트에 세게 부딪혀 크게 다쳤을 것이다. 다행히 별다른 소독도 없이 상처는 잘 아물었고 우린 몇 달 뒤 또 경주에 가서 자전거를 신나게 탔다.
#2
남자친구(또 현 남편)가 나에게 하루 보험을 넣어주고 운전 연수를 하자며 운전대를 맡겼다. 그는 이 도로는 차가 많지 않아 운전연습 하기에 딱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화물차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라 마냥 마음 놓고 운전할 수는 없었다.
초긴장상태라 어깨가 한껏 위로 치솟았지만 볼 수 있는 시야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주변을 보기 위해 눈알이라도 돌릴라치면 눈앞에 사람이든 신호를 놓칠 것 같아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한 30분 운전하다보니, 또 주변에 차도 없으니 서서히 '운전은 할만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며 수천 번 되뇌인 후 골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큰 도로에 들어서기 위해 우회전을 했는데,
"어어!?"
?_? 왜 구랭?
그는 얼빠진 모습으로 천진난만한 날 보았다. 그리고는 큰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우회전할 때 왼쪽에서 직진하는 차가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신호만 잘 보면 된다고 생각한 나는 빠른 속도로 커브를 돌았다. 무지한 나는 화물차가 많이 다니는 도로에서 냅다 핸들을 꺾은 것이다. 이후에도 남편은 날 도로연수 해주기 위해 애를 많이 썼지만 그만큼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더는 남편의 수명을 깎지 않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미안했어, 그동안.
#3
위 장면들은 어쩌면 살면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살면서 처음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꼈던 순간이다.
때는 2019년. 거제도에 1박으로 놀러갔을 때였다. 거제도에서 20분 정도 배를 타고 지심도라는 섬에 들어가서 잠시 관광한 후 돌아오는 코스였는데 그날따라 남편이 파도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며 불안해 하는 것이다. 나는 배를 타고 나갈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막 들뜬 상태였는데 남편의 한 마디에 흥이 깨져 버렸다. 그것에 또 화가 나 "표 이미 다 사놨는데 안 가?"라고 쏘아 붙이니 남편은 "아냐, 괜찮으니까 나가겠지. 가자"라며 날 달랬다.
내가 화내지 말았어야 했다.
배를 탈 때는 그냥 선선한 바람이었다. 살랑살랑 좋기만 하다며 신났었다. 그런데 10분쯤 지났을까. 배가 이상하리만치 좌우로 흔들거렸다. 지심도로 1박을 하러 가는 사람들의 캐리어가 눈앞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돌돌 굴러가는 광경이 이어졌다. 그래도 같은 박자로 좌우로 흔들리면 그래도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데 왼쪽으로 기울던 배가 갑자기 쳐올라오는 파도에 의해 오른쪽으로 갑자기 기울었다. 엇박으로 요동치는 공간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사람들. 흥미와 걱정이 섞인 미묘한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무서워서 남편을 봤는데 침착해 보이면서도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설마... 뒤집히진 않겠지?"
"모르지."
그때부터 멘탈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괜찮을 거라고 말했어도 무서웠겠지만 배가 뒤집힐 수 있다는 가정을 조금이라도 남겨 놓는 그 대답이 날 미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선박 관련 일에 종사하고 있다. 매일같이 바다를 보는 사람인데, 그가 '위험한 파도'라고 인지했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텐데 나는 왜 그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가.
붕괴된 정신으로 겨우 지심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린 내리지 않고 곧바로 거제도로 돌아가기로 했다. 안락한 우리 차로. 숙소로!
그런데 돌아가는 길은 가는 길보다 더없이 요동쳤다. 급기야 창문에 하늘보다 바다가 더 많이 보이는 상황에 다다랐다. 난 이미 미쳐서 혼이 나갔고 남편 손을 꼭 잡으며 어떻게 해야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난 수영도 못하는데 배가 뒤집히면 어떻게 나가야 하냐고 남편에게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뒤집히면 못 나갈거야...". 게다가 남편은 저 선장과 다른 사람들이 술 취한 것 같다고 했고 그제야 나도 술 냄새를, 그들의 벌건 눈, 벌건 얼굴을 발견했다. 지금 술 취한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거야? 설마. 아닐 거야. 운전하지 않는 저 아저씨가 취한 것일거야. 하지만 파도가 난리치는 도중에도 배 난간에 기대어 뒷짐지고 서있는 코 빨간 아저씨를 보니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 본 뱃사람이니 그냥 즐길만한 파도라 생각하기 때문에 저렇게 침착한 것이라며, 나도 그와 함께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그리고 남편은 "이렇게 파도가 세면 그냥 빨리 달리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천천히 달리는 게 뒤집힐 위험이 클거야."라는 말로 날 어떻게든 위로해보려 했다.
다 모르겠고 일단 배가 뒤집힐 수 있다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구명조끼가 있을거야, 싶어 주변을 보는데 각 의자 밑에 수납공간이 있었고 거기에 빨간 조끼가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조끼가 나올 구멍은 안 보였다. 자세히 보니 조끼가 담긴 수납공간은 의자와 케이블타이로 묶여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았으니 조끼를 빼낼 수 있는 구멍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뱃사람들은 한 번도 그 조끼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조끼를 빼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배가 실제로 뒤집혔다면 그 누구도 조끼를 빼낼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와 헝가리 사고가 생각나 어지러웠다. 뉴스를 보며 그들이 얼마나 두려움 속에 갇혀 떨었을지 걱정했던 것은 걱정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 그 상황에 놓이기 직전이니. 부모님한테 내가 어떻게 발견될까, 결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별 망상이 날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물론 이렇게 글을 소상히 적었다는 것은 난 잘 살아있고 정신도 멀쩡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날 밤 숙소에서 잠을 자다 파도에 몸이 기우는 느낌에 소스라치게 놀라 울며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나에게 일어난 몇 번의 아찔함이, 거기에서 살아난 몇 번의 기적이 순간순간 떠오른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도움의 손길이 날 보호하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은혜로워진다. 물론 사고가 났더라도, 그로써 이땅의 사람이 아니게 되었더라도 그 손길은 나와 항상 함께 할 거라 믿지만 그래도 건강히 살아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지금도 느끼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