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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Apr 08. 2021

결혼하면 밥은 잘할 줄 알았는데

결혼을 한다고 갑자기 요리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갑자기 철이 드는 것이 아니듯. 무엇이든 시간이 지난다고, 어떤 자리에 앉게 된다고 갑자기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겠지만 그 기회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철저히 본인 노력이다. 시간이 갈수록 느낀다. 저절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결혼한 지가 2년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도 요리를 좋아하지도, 실력이 늘지도 않는다. 퇴근길에 동료에게 ‘그냥 캡슐 하나 먹으면 영양소가 해결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를 반복한다.


결혼 1년 차 때는 집과 회사가 멀어 퇴근하면 7시 30분. 그때부터 어설픈 요리나 반찬 한 가지를 도전하면 1시간이 훌쩍 넘는다. 저녁 8시~9시에 먹는 식사는 내 위장에 무리였다. 그뿐 아니다. 피곤함에 절여진 몸을 겨우 이끌고 집에 도착해서 없는 에너지를 갈아 넣은 요리가 맛이 없으면 그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간과 에너지를 쓴 만큼 보람 있는 결과가 나와야 계속할 맛이 날 텐데 요리라는 행위는 나에게 그저 시간과 에너지를 땅에 버리는 몹쓸 짓이었다. 그래서 결혼 후 배달 문화에 눈을 떴다. 이토록 간편한 조작으로 음식이 시켜지다니. 이렇게 다양한 음식이 우리 집까지 배달되다니. 게다가 내가 망쳐버린 음식에 쏟아부은 재료값으로 배달 음식을 2번은 먹을 수 있다니!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도 나도 배달 문화권으로 묶어주는 그 하늘색 어플을 찬양했다.


삶의 질이 점점 올라간다, 고 여겼으나 그것도 잠시. 몇 달이 지나니 손톱에 가로줄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양 부족인 듯했다. 매번 배달 음식을 먹을 수는 없으니 중간중간 손에 짚이는 것들로 배를 채웠는데 그것이 내 몸을 건강하게 해주진 않았나 보다.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가로줄을 보며 집 밥의 힘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반찬은 없었던, 그래서 새 반찬과 메인 메뉴를 달라 소리쳤던 엄마의 식탁에는 내게 필요한 영양소가 모두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손톱 가로줄 + 벗겨지는 살갗


그럼에도 퇴근 후에는 요리할 힘이 남아있지 않아서 하루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그다음 하루는 엄마가 보내주신 음식들로 연명했다. 그러다 결혼 2년 차쯤에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왔고 비로소 음식을 할 체력이 생겼다. 2인 혹은 1인이 먹는 밥상을 만들어야 하니 자취생 레시피를 알아보다 한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요리를 잘 하지 않는 우리 집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재료와 양념으로 한 끼를 뚝딱 해낸다. 영상은 5분이 넘지 않지만 내 요리는 30분이 넘는다. 하지만 요리계의 응가손인 내가 한 끼라도 남편에게 제대로 된 밥을 제공할 수 있다는데 30분이 대수겠는가. 그렇게 쉬운 재료와 레시피에도 실패를 겪지만 어찌하여 얼추 식사라고 부를 수 있는 음식이 완성된다. 내 입맛에 안 맞는 음식도 남편은 남기지 않고 싹싹 먹어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이후 남편 손톱에는 가로줄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집 밥을 먹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최근, 그간의 내 요리 원동력이 되어 준 남편의 식사 시간이 사라졌다. 남편이 살을 빼겠다며 닭가슴살과 토마토로 저녁을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혼자 먹는 식사 시간에는 굳이 설거지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기름도, 불도 쓰지 않는다. 바삭바삭 과자를 먹거나, 촉촉한 빵을 먹거나, 아삭아삭 과일을 먹거나. 내 입에 들어가는 것에 굳이 힘을 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 오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만을 위해서도 요리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아니, 나만이 아닌 내 몸속의 새로운 생명을 위해서도.


2년간 둘이었던 우리 가정은 올해 셋이 된다. 결혼한다고 요리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듯 엄마가 된다고 ‘위대한 엄마 자신은 없다. 하지만 뱃속의 생명이 바깥세상을 보기까지는 아직  달이 남았다. 1 가까이 되는  시간은 앞으로 어떤 엄마가  것인지 생각하고 준비하라고 주어지는 시간이 아닐까. 손톱에 가로줄이  이상 생기지 않도록,    만나게  아이가 영양 불균형이 되지 않도록 나의 편식도,  짧은 식성도,  응가손도 하나씩 고쳐나가야겠다.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그러니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부디 내 노력에 성장으로 보답하는 요리 시간이 되길.


세상 단촐한 남편 생일상... 내년엔 갈비찜을 해볼게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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