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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Apr 21. 2021

엄마는 왜 이렇게 낙천적이야?

나는 현재 안과에서 6년째 근무 중이다. 4년 전, 부모님께 정밀검사를 권했다. 그래도 자식이 병원에서 일하는데 제대로 된 진료 한 번은 받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4년 후 엄마가 망막 질환으로 수술을 받는다. 속상한 것은 4년 전 진료에서 이미 망막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이 나왔음에도 내가 모르는 바람에 병을 방치한 것이다.




최근 엄마가 시력이 떨어진 것 같다면서 내게 진료 예약을 부탁했다. 오랜만에 엄마, 아빠와 회사에서 만나서 점심 먹을 생각을 하니 들떠 있었다. 아무 문제 없이 "노안입니다." 정도의 진단을 받은 후 갈비탕을 먹으러 가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그런데 검사를 다 마친 후 진료만 보면 되는 엄마에게 추가 검사 요청이 들어왔다. 게다가 망막 전문 원장님께 진료를 또 봐야 한단다. 왜 하필 망막일까. 안과에서 망막은 특수한 조직으로 한 번 손상되면 다른 조직보다 시력에 치명적이다. 긴장된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원장님이 엄마에게 격자 무늬를 보여드리며 "왼쪽 눈 가리시고 오른쪽 눈으로만 보실 때, 어떻게 보이세요?" 라고 물으셨다.


황반변성 자가진단으로 알려진 암슬러격자


안과 블로그를 6년 적으면서 수도 없이 포스팅한 암슬러격자. 사물이 왜곡되어 보이는 변시증 유무를 우리 엄마한테 테스트하다니! 가족이라 너무 친절하게 진료하시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요래요래 삐뚤하게 보이네예


엄마 시선에서 본 암슬러격자



엄마한테 변시증이 있다고? 아니, 엄마는 그걸 왜 여태 몰랐대? 아참, 내가 포스팅할 때 수도 없이 적었지. 한쪽 눈에만 이상이 있는 경우 환자가 반대 쪽 눈에 의존하기 때문에 증상을 자각하기 어렵다고.


엄마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원장님 말에 "그래요? 회사 일정을 좀 조정해야 겠네요."라며 웃었다. 원장님은 "어머님이 정말 낙천적이셔서 그래도 다행이네요."하고 같이 웃으셨다. 하지만 긍정과는 거리가 먼 아빠와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 이거 간단한 거 아니야!"라며 핀잔을 주었다. 걱정이 지나치면 별일 아니라고 얘기하겠는데 엄마는 "나이 들었는데 수술할 수 있지, 뭐!"라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사실 진짜 답답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안경 처방만 원한다는 엄마 말에 기본 검사만 진행했는데 원장님이 4년 전 엄마의 검사 결과를 보시고 망막질환이 있었음을 확인하신 것이다. 4년 전에 질환이 이미 시작되었는데 내가 왜 몰랐을까. 당시를 떠올려보니 내가 일한다고 엄마가 진료볼 때 함께 하지 못했다. 그때는 시력이 괜찮아서 원장님이 6개월 단위로 검사를 받아보시라 얘기하셨을텐데 엄마는 으레 하는 얘기겠거니 하며 그냥 넘겼을 것이다.


식사 후 엄마는 다시 병원에 와서 수술 전에 필요한 검사를 1시간 가량 받았다.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느냐 물었는데 엄마는 "이거 실명하는 병이가?"라고 물었다. 그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밝은 톤으로. 그래서 "무슨 실명이야! 황반변성은 위험할  있는데 이건 그런  아니야. 망막 수술 치고는 어렵지 않다는데 그래도 엄마가 - 쉽게 생각하는  같아서 내가 주의를 주는거지!"라고 답했다. 엄마는 걱정도 쌨다('많다'의 경상도 사투리)며 니 몸이나 잘 챙기라 했다.


수술 날까지 나는 수술 주의사항을 언급하며 잔소리를 해댔고 엄마는 귀찮아 했다. 크게 어려운 수술도 아니고 망막 수술을 잘한다는 원장님이 집도해주시기로 하셨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듣는다. 천 명 중에 한 명에게 나타난다는 부작용도 한 달에도 몇 백 명씩 진료 보는 병원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니 부작용이 우리에겐 오지 않게 해달라며 기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내가 갑상선암 수술할 때 아빠가 보였던 유별남이 이해갔다. 당사자는 태평인데 주변이 안달복달하는 모양. 가족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양상이다.




직원으로부터 어머니 수술이 끝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곧장 회복실로 가니 엄마가 따닷한 침대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표정은 밝아보이는데 엄마는  밝으니  표정을 믿으면  된다. 캐물어야 한다.


"괜찮아?"


"응, 근데 내 코 곤 것 같다..."


"예...? 아니, 그래도 수술인데 잠올 틈이 어딨어?"


"한 시간 넘게 너무 조용하니까 잠이 오잖아."


"참... 그것도 복이다... 아프진 않았고?"


"쪼매 아팠는데 괜찮네."


조금 있으니 원장님께서 회복실에 오셔서 세심하게 하나 하나 설명해주셨다.


"수술은 아주  됐어요그런데 황반 주변부가  약해서 마지막에 레이저를  쐈어요. 많이 아프셨을텐데  참으시더라고요."


그럼 그렇지.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프셨어요? 답답한 마음에 "엄마는 수술 중에 아프면 아프다라고 해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조치를 취해줄 거 아녀!"라고 하니 "조금 아프다고 하니까 마취 계속 해주던데 레이저하고 나서는 좀 많이 아팠어. 그렇다고 '아야 아야!'하면 얼마나 놀라겠노."라고.




엄마는 참는 데에 도가 텄다. 펄펄 끓는 국을 냄비째 그대로 몸에 쏟아 버려 상하체 깊은 화상을 입었음에도 내게 전화로 빨간약과 옷을 가져와 달라는 말만 했다. 만만치 않은 시아버지와 16년을 살면서 적잖이 속이 썩었을 텐데도 까맣게 탄 마음이, 그 재 가루조차 밖으로 새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다. 매사에 낙천적인 엄마라 건강에 소홀할까봐 걱정이 되면서도 그런 엄마이기에 마음은 나보다 건강한 듯하다. 나만큼 예민했으면 화병에 이미 많은 병을 달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엄마의 그 낙천은 본인 일에 한정된 것이지만. 자식에게 닥친 어려움은 그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그냥 웃고 넘길 수가 없는 사람이 또 엄마다.




"엄마는 참는 데는 아주 선수야. 나 같으면 아프다고 난리쳤을 건데."


"니가 무슨. 담석증 수술하고 그 아픈데도 토 안 할끼라꼬 무통주사 안 맞는 거 봐라. 어휴."


"무통주사 맞으면 토한다잖아. 안 그래도 수술하고 배 아파 죽겠는데 거기다 토하면 죽어, 진짜. 그건 참은 게 아니라 더한 고통을 피한거야."


"그런데 수술하다가 생각나는 게, 나는 괜찮은데 이게(나) 또 사무실에 있으면서 엄마 왜 안 나오냐고 마음 졸이고 있을까봐 신경이 쓰이는 거라. 니 수술하러 들어갔을 때도 얼마나 시간이 길던지 계속 마음이 졸이던데 그게 딱 생각나더라."


"맞아, 원래 당사자는 괜찮은데 주변이  심란하지. 난 전신마취해서 잠만 잘 잤다 ㅋㅋㅋ"




한때는 엄마의 낙천적인 성격을 닮고 싶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매사에 부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플랜비를 짜며 스트레스는 있는대로 받는다. 그러면 어쩔 수 없다. 이 예민함으로 엄마 건강을 계속 체크하는 수밖에. 아빠는 예민한데도 불구하고 참다 참다 병원 가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앞으로 엄마, 아빠 귀에서 피가 나도록 이 딸이 건강 체크를 해 드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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