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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Jun 02. 2021

잠든 남편을 보다 울었다


연예인의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세상에서 꾸려나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 이야기를 보면서 무슨 재미를, 유익을 느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프로그램에서 배우 소이현, 인교진 부부가 나왔는데 때때로 눈물짓게 만드는 포인트가 있어서 몇 편 챙겨보았다.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첫째 아이의 심리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육아 상담소에 갔던 일이다. 상담사가 아이에게 '착한 아이 컴플렉스'가 있고 그 영향은 엄마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는 말에 엄마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말에 밝게 웃어보이며 일어선다.  


그리고 또 하나. 소이현, 인교진 부부가 건강검진 차 수면내시경을 받았다. 남편이 먼저 깨어났는데 일어나자마자 아내 이름을 부르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직 깨어나지 못한 아내에게 '어쩜 자는 것도 이쁘냐'며 한참 보더니 갑자기 훌쩍이는 것이다. 제왕절개 후 힘들어하던 아내가 생각난다며. '그때 정말 힘들어했는데'라며.


사실 처음에는 그리 공감하지 못했다. 그냥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몇 년이 지나서야 '그게 이런 거였구나' 하며 마음이 미어지는 것이다. 잠자는 배우자의 모습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것. 얼마 전 주말, 나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버렸다.






보통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남편은 이미 출근하고 없다. 남편은 쉬는 날에도 출근하는 나보다 하루를 더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관찰할 일이 많지 않다. 하지만 그날 주말은 웬일인지 내가 남편보다 먼저 눈을 떴고 고개를 돌리니 남편이 아직 내 옆에 있었다. 잠들어있는 남편을 보고는 평온함 그리고 안정감을 느꼈다. 그 감정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 잠든 남편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갑자기,


뚝.


당황스러웠다. 무턱대고 흘러대는 눈물을 따라 올라가면서 그 시작을 찾아 나섰다. 임신하고 예민해지면서 감정 기복이 심해지더니 그 영향 때문인가.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꿈 속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나. 한참을 헤매다 알아낸 눈물의 이유는, 잠든 남편의 얼굴에서 그가 걸어온 삶의 무게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30대 중반인데.





잠든 그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무력해 보이기도 했다. 녹록지 않은 세상과 무리 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박히면서,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현실에 순응했던 순간들에 수없이 맞섰을 터였다. 학창시절엔 짧지 않은 유학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도움 없이 공부와 동생을 챙겨야 했고, 성인이 된 후 집에서는 착한 장남·사위·남편의 역할을 착실히 행하고, 회사에서는... 말해 뭐하겠는가. 피곤한 삶이겠지. 그럼에도 밤마다 뱃속의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임산부는 다리가 붓는다더라며 몇 주간 하루도 빠짐없이 다리 마사지를 해주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몇 분이 흘렀다. 엇. 잠든 남편의 표정이 바뀌고 있다. 입은 우물우물, 미간은 움찔. 무슨 꿈을 꾸는지, 꿈 안에서는 그 무겁게 가라앉아있던 피로함이 좀 가벼워졌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정면을 보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더니 눈을 떴다. 깜짝 놀라 나도 똑같이 눈을 크게 떴는데 빙긋 웃어주는 것이다. 나도 똑같이 빙긋 웃었다.


평온하게 비가 오던 그 주말에 남편은 나를 출근시키면서 맥도날드에 들러 아침을 먹이고 디카페인 커피를 챙겨 주었다. 그리고 퇴근 후 우리는 회사 앞 식당에서 만나 밥을 먹고, 카페를 가서 각자 과제를 한 다음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결혼을 해서 가능했던 아침 데이트에 꽤나 그리웠던 결혼 전 데이트를 더한 하루였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주말.






요즘 나는 호르몬 영향인지 원래 예민한 성향에서 까탈스러움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밤에 잠을 못 자거나 자꾸 깨고, 갑자기 열이 오르고, 우울해지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통제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매일이다.


그 모든 것을 매일 감내하고 함께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 본다.


엣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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