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숨 Jul 25. 2021

나는 솔직히 장애가 무섭다

몇 달 전 회사에서 두 명의 장애인 직원을 고용했다. 그 중 한 명인 지적장애인 A씨는 사회연령이 7세 정도 된다고 한다. 신입이라고 들어오는 20대 초반 직원들 중 자기 직속 상사가 아니면 옆에 직원이 인사를 하고 지나가도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는 (개념 없는) 직원들이 꽤 있다. 그런데 A씨는 얼마나 싹싹한지 그가 인사를 할 때마다 우렁찬 목소리와 큰 몸짓에 깜짝깜짝 놀란다.


A씨의 첫 인상은 귀엽다, 예의바르다 였다. 출근할 때 항상 M 카페에서 커다란 아이스 커피를 사오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가끔 그가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도 있지만 무언가 쑥스러워 도움이 필요한지 함부로 물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미 주변에서 해주고 있었기에 나는 한 걸음 뒤로 빠져 몰래 그를 지켜보았다. 정말 도움이 필요해 보일 때, 하지만 아무도 그의 필요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내가 물어보리라.


그러던 어느 ,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들어왔는데 A씨가  젖은  에어컨 바람  맞으며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비를  맞고  거예요?"하고 물으니 ".... !" 대답하는 A. 젖은 머리에서 떨어지는 빗물, 닭살이 돋아 파얗게 질린 , 티셔츠에 가린 부분 외에 전부 젖어버려 색이 진해진 청바지, 그럼에도 평소처럼 주먹을 쥐었다 폈다 상체를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있는 A. 점심시간에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얼마나 떨었을까 싶어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에어컨을 끄고 다른 직원 분께 수건  찾아와 달라 부탁드렸다. 일순간 사무실이 분주해졌고 수건을 받아  A씨는 머리부터 팔까지 ,  누르며 빗물을 차분히 흡수시켰다. 혼자 버스타고 회사까지 출근할  있는 사람이 비가 오는데  우산을  챙겼을까 싶어 물었다.




"우산은 안 들고 왔어요?"


"저... 저기, 두고, 왔, 습니다!"


"어디에 우산을 두고 왔어요?"


"회, 회사에 노란, 우산 두고 왔습니다!"




눈을 돌리니 벽에 세워져 있는 노란 우산이 보였다. 우산이 집이 아닌 회사에 있었구나. 안타까운 마음에 그를 가만히 보았는데 갑자기 그는 가방 지퍼를 살며시 잡더니 조금씩 열었다.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가글. 새 가글이라 점선을 따라 비닐을 뜯고 두 손으로 소중히 집어 들고서 화장실로 걸어갔다. 자리로 돌아온 그는 3시간동안 주어진 일을 마치고 퇴근했다. 그가 떠난 지 10여분 후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그의 자리에 그대로 남겨진 노란 우산이 보였다. 아직도 비가 많이 오는데. 나는 우렁차게 "수고하세요!"라고 말하며 퇴근하는 그를 봤음에도 왜 그가 두고 간 우산은 못 본 것일까.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A씨를 보며 처음엔 대견하고 과장된 행동이 귀여웠다. 그런데 장애가 있는 그를 20대의 장성한 성인이 되기까지 보살폈던 부모님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에게서 마냥 흐뭇한 인상만 받을 수는 없었다.


그가 식사 후 가글을 할 수 있기까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까지, 알아서 시계를 보며 출퇴근할 수 있기까지, 출근할 때마다 커피를 구매할 수 있기까지, 모르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낼 수 있기까지 그의 부모님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심적・육체적 고생을 감당하셨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아들은 자신의 노란 우산이 없어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다 맞고 출근을 했다. 집에 있는 다른 우산을 사용하지도, 밖에서 사지도 않고. 축축한 그의 몸과 가방이 생각나면서, 또 그런 그의 모습을 마주할 부모님이 그려져 내 마음도 젖어 갔다.




올해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문득 그런 생각에 빠졌다. 나는 어쩌다 사회적으로 생활하는 데에 문제가 없는 신체적, 인지적 기능을 가졌을까. 그리고 어쩌다 그것이 축복인 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고 불평만 늘어놓고 살고 있을까. 그 생각은 결혼 초 남편과의 대화 상황으로 날 이끌었다.




남편:

만약 우리한테 아이가 생겼는데 태어나기 전 기형아검사를 했어. 그때 기형아로 태어날 확률이 높으면 어떻게 할거야?


나:

글쎄... 임신도 하지 않은 결혼 초에 그런 걸 생각해야 해?


그러면 애를 없앨거야?


아니, 누가 없앤대? 그런데 계속 그런 말을 꺼내는 이유가 뭐야? 꼭 그런 일이 일어날 것처럼.




남편은 연애 때도 이와 같은 이야기를 두 차례 했었다. 덧붙여 우리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더라도 입양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가뜩이나 결혼을 늦게 하고 싶던 나에게 임신이니 장애를 가진 아이니 하는 주제는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운 소재였다. 나는 갑상선 기능에 문제가 있고 그러한 사람에게는 난임 확률이 높다고 한다. 내가 먹고 있는 갑상선 호르몬을 대체할 약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면 '내 병'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마땅히 사랑해야 할 우리 아이이며 설사 아이를 낳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였다. 하지만 내가 해석한 말은 '우리에게 아이가 없거나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강한 아이를 가지기에는 내 몸이 건강하지 않다'였다. 세 번째 물어본 그의 질문에 나는 "말에도 힘이 있는데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기형아 검사에서 문제가 있다 해도 무조건 낳아야지"라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임신을 했다. 손발가락이 10개씩 있는지, 심장과 뇌, 각 조직의 상태가 괜찮은지 매번 확인해도 불안하다. 뱃속에서 괜찮아도 후천적인 문제로 인해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임신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은 모든 이에게 있다. 당연히 지금 큰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어떤 이유로든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아니, 나에게 지금 장애가 없다고 할 수도 없다. 신체적으로는 일단 장기를 두 개 제거했으며 장기간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매년 장애인증명서를 발급받는다. 그렇다고 심리적으로는 안정적인가. 작은 자극에도 극도로 예민해져 몇 분 사이에 울고 웃고를 반복하는 지금의 내가 언제 장애의 영역으로 들어설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렇게 세상이 비장애인이라 일컫는 몸으로 태어나 살고 있는 주제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것이란 두려움을 갖는 게, 문제 없이 태어나도 후천적으로 장애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 하는 게 합당한가. 그럼에도 무서운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사실에 미안하다. 누구에게 미안한지도 모른 채.




이렇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지난 6월 11일부터 적기 시작했으나 7월이 된 아직까지 매듭짓지 못했다. 하지만 나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든, 누구든 장애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생이라 한 번은 떠도는 이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미래의 나에게 큰 과제를 던지는 마음으로 글을 발행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든 남편을 보다 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