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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Sep 02. 2021

출산휴가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출산휴가 4일째 단상

3개월 인턴처럼 일했던 첫 직장을 제외하고는 2015년 7월 27일부터 2021년 8월 28일까지 딱 6년 1개월 1일간 직장인으로 살았다. 1년 3개월의 출산 및 육아휴직을 시작했으니 지금도 직장인이지만 직장 생활은 쉬어간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3년간은 엄마가 돌보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고 남편도 그리 생각하였다. 하지만 복직을 원하는 부인의 의사를 존중해 준 남편 덕분에 나는 향후 약 2~3년까지는 직장인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때까지 우리 부서가 평온해야 내가 마음 편히 회사에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하는데...


출산휴가를 2개월 남겨놓고 평온하던 우리 부서에 갑자기 불안한 기운이 스몄다. 10여년 일했던 디자이너가 출산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던 직원이 돌연 퇴사를 ‘통보’했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 디자이너는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상태에서 자신에게 인수인계하던 직원의 퇴사 소식을 접했다. 그것도 내가 휴가를 떠난 새 일어난 일이라 나보다 더 빨리! 그 당혹감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둘 사이에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되었을 것이 확실해보였다. 그 상태에서 퇴사를 통보한 직원을 대신할 디자이너를 한 명 더 충원하고 거기다 내 후임까지 뽑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복귀를 결정한 나로서는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새로 온 직원들이 잘 버텨줄 수 있을까’ 걱정되었다. 나는 실컷 인수인계를 하고 휴직에 들어갔지만 후임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린다면 회사는 인수인계 해 줄 사람 없는 황무지에 새 사람을 뽑아 줄까? 대표가 없어도 회사는 굴러가게 되어 있으니 회사 걱정은 하나도 안 되었지만 1년 3개월은 무조건 내가 아이를 돌보겠다고 가정에 선포한 상황에서 회사로부터 빨리 복귀하라는 압박을 받으면 남편에게 또 이해를 구해야 한다. 남편은 언제든 자신이 육아휴직을 쓸 마음이 있기에, 그것이 안 된다면 퇴사까지 생각하고 있었기에 남편 마음은 상관없었다. 남편 회사는 그것을 허용해 줄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이런저런 생각들로 두어 달이 흘렀는데 다행히, 정말 다행히도 새로 온 직원들이 서로 잘 맞고 일머리가 있었다. 입사한 지 한 달 만에 이 부서 실무자 중 최고참이 되어 버린 디자이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몸이 무거운 나를 배려하여 내 도움을 먼저 구하기보다 여기저기에 협조를 구하면서 일을 해결해 나갔다. 다시 깨달았다. 직장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주어진 업무를 잘 쳐내는 것뿐 아니라 돌발상황을 융통성 있게 해결할 수 있는 깡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에게 부족한 능력을 무장한 이 직원들에게 너무 감사했고 덕분에 마음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었다.




집에서 한없이 게을러질 내 모습을 용서할 수 없는 나는 출산 전 한 달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 중이다. 사실 회사에서는 출산 한 달 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일찍 들어간다’는 반응을 보였고 복귀도 빨리 하길 원했던 터라 조금 더 버텨볼까 싶었지만 출산, 육아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퇴근 후에 육아 공부를 해보았지만 체력도 달리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길래 그냥 집에서 쉬면서 운동도 하고, 공부도 하고, 아가 옷 빨래도 하고, 육아용품도 찾아서 구매하고, 출산 가방도 싸고, 이사짐 정리도 하고, 은행 업무도 보고, 동사무소와 구청 업무도 볼 예정이다. 평일 시간이 자유로워지면 관공서 업무를 쉽게 볼 수 있겠다는 작은 기대감도 있지만 출퇴근이 사라져서 바이오리듬이 깨지고 무엇보다 살이 찌면서 아이가 더 커질까 하는 걱정에 압박도 느낀다. 하지만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들은 한 마디를 마음에 품고 정말 편히 쉬려 한다.


"아이가 뱃속에 있는 이 한 달이 마지막 휴식이 될 거예요."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지만 잘 때까지 귀에 맴돌아 이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겠다고, 1년 3개월간 잠시 직장인의 삶을 내려놓고 아내와 엄마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과연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 의심됐던 내 출산휴가는 모두의 배려와 축하 속에서 아주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다들 꿀이라고 말하는 출산휴가에 접어든 지 4일째다. 나는 이 꿀을 어떻게 빨고 있는가.


...


아기 옷은 미리 빨아뒀어야 했는데.

- 아냐, 회사 다니면서 내 옷 빨기도 피곤했어.


출산 가방은 2주 전부터 싸 뒀어야 했는데.

- 매일 써야 하는 물건도 많이 챙겨야 하는데 안 그래도 돼.


육아용품이라도 미리 구비했어야 했는데.

- 조리원에서 사도 돼.


친정으로 이사갈 짐 정리는 미리 해뒀어야 했는데.

- 포장이사가 알아서 잘 해줄거야.


...


아, 됐어! 옛날엔 조리원이 어디 있었어. 애 낳고 상한 몸으로 모유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손으로 이마 열 재고, 바운서 없이 포대기에 업어서 둥가둥가했고, 빨래비누로 옷 빨아 입혔고, 애 업은 채로 일터로 나가고 다 했는데 이 좋은 세상에서 못할 게 뭐 있어!


...


그때랑 지금이랑 같지 않잖아. 그때 상한 몸으로 아이 키운다고 고생해서 지금 우리 엄마들 몸이 계속 상해있는 거라고. 환경이 다른데 내천에서 빨래비누로 옷을 빨아 입힐 수도 없고, 애 업고 일터에 나갈 수도 없다고. 우리가 망쳐 놓은 환경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이의 호흡기나 피부에 문제가 생길 텐데 그땐 어떻게 할 거야. 무엇보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아이도, 나도 지쳐가면 내 불안과 예민함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텐데 그때는 어쩌면 좋을까.




출산휴가 4일째인 지금, 꿀을 빨려던 나는 기가 빨리고 있다. 미리 준비했으면, 조금 더 부지런했으면 겪지 않아도 될 문제가 아이에게 나타났을 때 그것은 엄마의 게으름과 지식 부족 탓이라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몸은 쉬고 싶어서 회귀하는 생각을 끊어주는 무익한 활동(멍때리기, 유튜브, 팟캐스트)만 찾아 나서는 내 손가락과 눈과 귀가 원망스럽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놀고 먹으면서 차근차근 출산과 육아를 준비하는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다.


이제 혼돈의 시간을 멈추고 장기 여행 준비하듯 육아휴직을 준비하는 출산휴가를 보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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