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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Oct 15. 2021

태어난 지 10일된 아들에게

D+10 | 2021.10.14

잠잠아.

이제 태명 말고 너의 이름을 따서 '로디'라고 부를게.


로디야. 너가 태어난 지 10일째 되는 오늘은 내가 엄마가 된 지 10일째 되는 날이기도 해. 열 달간 뱃속에 있던 너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엄마 가슴에 안겼을 때, 그 체온이 너무 따듯해서 엄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단다. 초음파로만 보다가 색이 입혀진, 입체적인 널 보고서 처음 든 생각은 어처구니없게도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었구나'였어. 엄마 몸에서 10개월을 살아 온 너였지만 엄마가 너의 무게를 느끼고 피부를 만져보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던 사실이야. 엄마의 기도대로 로디가 아주 건강하게 이 땅에 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10일이란 시간은 엄마의 삶을 완전히 달라지게 만들 만큼 아주 긴 시간이더라.


아니다.


태어난 지 10일 된 로디는 엄마의 생각과 감정을 이렇게나 변화시킬 만큼 정말 큰 존재더라. 엄마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 그런데 조그마한 생명인 너를 안고 있으면 그동안 중요했던 것들이 중요하지 않게 되고, 그렇게 지키고자 했던 것들은 너에 비할 바가 아닌 아주 초라한 것이 돼.


그래서 염려가 돼.


널 향한 걱정과 집착이 점점 지나치다 너를 옭매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너의 마음을 듣지 못하고 엄마의 마음만 말하지 않을까, 하고. 놀랍겠지만 엄마는 벌써 그렇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아.


로디에게 꼭 모유를 먹이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로디는 어쩐 일인지 엄마 가슴팍에 다가오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울어. 발을 뻥뻥 차면서, 가누지도 못하는 고개를 마구 흔들어대면서,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소리지르는 너를 볼 때면 엄마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차올라. 로디가 감정 표현을 하다 너무 힘들면 어쩔 수 없이 모유를 먹을 때도 있고 결국 젖병으로 우유를 먹을 때도 있는데 그렇게 한바탕 너가 엄마를 밀어내다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보면 가슴이 미어져.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데도 엄마는 태어난 지 10일밖에 되지 않은 로디에게 너무 힘든 방법으로 밥을 주려 하니 말도 못하는 너가 얼마나 힘들까 짐작도 안 돼. 안 그래도 세상살이가 쉽지 않을텐데 태어나자마자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 하나 쉽게 해결해주지 못하는 엄마구나.


단순히 엄마의 욕심일까, 너의 건강과 인내를 위해 필요한 과정일까 수도 없이 생각해보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 사실 이뿐만 아니라 엄마는 아직 로디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모르는 것 투성이란다. 그런 엄마라서 벌써 무섭고 너에게 미안해. 담담하게, 용감하게 널 키워보려고 열 달이나 마음을 단련시켰는데 며칠만에 무너지는 엄마의 모습에 엄마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매일을 보내고 있어.


그런데 로디야.


넌 이미 엄청난 인내력과 담대함을 지니고 있는 아이야. 넌 열 달간 한 번도 엄마 뱃속에서 말썽 부린 적이 없고 태어날 때도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게 세상에 나와줬어. 그리고 아이가 태어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아이를 낳는 엄마의 스트레스보다 7배나 많다던데 넌 그 고통을 태어나면서부터 용감하게 이겨내 줬단다.


앞으로도 엄마가 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엄마 때문에 로디가 어제처럼, 또 오늘처럼 많이 고생할지도 몰라. 로디가 살아가는 내내, 어떻게 해도 부족한 엄마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보지 않을래? 너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엄마만큼 로디도 엄마로 인해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길 기도해.


사랑해, 로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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