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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Mar 04. 2024

완벽한 남편이지만 때로는 날 외롭게 한다

결혼 후 남편과 며칠 동안 대화를 안 하거나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운 적은 없다. 주로 내가 화내거나, 울거나, 소리를 높이고 남편은 그저 들을 뿐이다. 안정된 사람. 내면이 평안한 사람. 그래서 자주 요동치는 날 다잡아주는 사람이지만 때로는 내 말에 강한 반응을 보여줬으면.


술, 담배 안 하고 긴 유학생활로 한국에 친구도 얼마 없어 꼬박꼬박 집에 오는 착한 남편이다. 난 주말을 우리끼리 보내고 싶은데 자주 우리 부모님을 불러서 밥을 사드리고 추억을 쌓아야 한다며 어딜 모시고 간다. 그는 처가에서 재주 많은 곰을 담당한다. 난 시가에서 퉁명스럽고 무게 잡는 곰인데. 이러니 친정 부모님은 사위 사랑이 대단함과 동시에 당신들의 딸이 못 배운 며느리로 자란 것을 부끄러워하신다. ‘시부모님께 밥상 한 번 제대로 못 차려드린 며느리’라는 말은 매년 명절마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남편은 완벽하다는 것이다. 누가 보기에도. 친정 부모님께 무한 신뢰를 얻는 사위니 오죽할까. 그런데 앞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이렇게 완벽한 남편이지만 요즘 난 남편이 내 말을 듣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나와 대화할 때 그의 눈이 공허함을 느낀다. 보통 글에만 쏟던 불안과 걱정을 한 번씩 내비칠 때 내 눈을 보고 있는 그가 내 말을 이해하는지, 내 감정이 이해는 되는지 몹시 궁금하다. 분명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허용하고 세심하게 내 몸 상태를 체크하며 아껴주는 남편이 옆에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온다.


언젠가 그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여보는 참 스트레스를 받으려 노력하는 것 같아.”


그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애써 스트레스를 받으려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어쩜 이렇게 잔잔하고 낙관적인 사람이 나 같은 예민한 여자와 결혼했을까. 어쩌면 이제야 우리의 관계가 어느 정도 동등해짐을 느낀다. 이전에는 내가 늘 그를 힘들게 하고 그는 내게 안정이 되어주는, 균형이 무너진 관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이제는 내게 외로움이 더해지면서 누구 하나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게 되었다. 아니 둘 다 무거운 상태가 된 것일까.


남편과의 관계에 전에 없던 고민이 생긴 와중에 시아버님 생신을 맞아 내일 아침 일찍 먼 길을 떠나야 한다. 친정 부모님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지워드리기 위해 편스토랑 불고기 레시피를 배워 양념을 만들고 고기를 재워놓으니 밤 12시, 짐을 챙기니 오전 1시가 넘었다. 사실 요리랄 것도 없다. 양념에 고기만 넣는 것임에도 음식에서만큼은 지능이 뚝 단절된 모습이 나타나기에 느린 손은 어떻게 교정이 안 된다.


아, 잠깐 해명할 것은 내가 아무리 똥손이라도 친정 엄마가 야채를 다 손질해주셨기에 불고기 재우는 시간은 40분 정도였다. 이렇게 늦게 잔 이유는 다음 날이 휴일이라 회식이 집행되었기 때문이다. 시댁에 가야 한다는 핑계로 1차만 하고 나와서 약간의 비아냥은 감수해야 했지만 술을 안 마시는 나에겐 2차는 고된 스케줄이다.


아무튼 그렇게 뚝딱이고 있는데 아이를 재우고 잠들었다 깬 남편이 거실로 나왔다. 서로 오늘 하루 고생했다고 이야기하며 작은 일상을 나누는데 짐 챙기느라 분주한 내 손을 가만히 보더니 그가 말했다.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해.”


미리 시댁에 갈 짐을 챙겨주기로 했는데 아이 옷, 물건을 제대로 찾고 준비하는 것이 당연히 어려울 테다. 그보다 내가 훨씬 많이 했던 일이니 내가 더 빨리, 힘을 덜 들이면서 할 수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아이를 재워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니. 역시 그 다운 마음이고 예쁜 말이었다.


그저께 그 앞에서 질질 짜면서 내 마음을 읊조려도 그는 별 타격이 없길래 결국 나는 그에게 ‘앞으로 우리가 괜찮을 수 있다고 확답을 달라’며 긍정적인 대답을 직접적으로 이끌어냈다. 허나 그의 태도를 보았을 때 이 대답은 그의 의지가 아닌 내 강요로 만들어진 답변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게 우리 관계가 대등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따듯한 말 한 마디로 다시 불균형한 관계가 되는 걸까.


아니. 우리가 오랫동안, 사이좋게 지내려면 마음의 무게를 대등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결코 짐을 지우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이제는 내가 변하여 균형을 맞출 때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그에게 불안을 전가시키는 것을 멈추어야 겠다고. 불안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그가 나만큼 신경 쓰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길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이어질 우리 형편을 생각하면 당장은 갑갑하다. 그 걱정을 쥐고 있으면 너무 힘들어 그에게 떠넘기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란 사람은 공동으로 분담한다고 해서 걱정이 줄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제는 털어버리려 한다. 걱정을 덜어 내고 생긴 자리를 그가 기댈 수 있는 안락한 공간으로 단장하고 싶다. 부디 여유롭고 잔잔한 구석이 되었으면.


- 24.03.01로 넘어가는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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