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사나 꼭 딸 가진 직원에게 “아들 올해 몇 살이랬지?”라고 묻는 상사가 있다. 상사는 그 직원을 볼 때마다 이 질문을 했을 테고 직원은 때마다 “이제 돌이에요.”, “이제 18개월 됐어요.”, “이제 3살이에요.”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각할 테다. ‘기억도 못할 거면서 뭘 물어봐.’ 그 직원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식당에 가서 우산이나 핸드폰을 두고 나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늘 모임의 마지막에는 떠나는 자리를 둘러보고 놓고 간 누군가의 물건을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출산 후 기억력에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심각하게.
지금도 충격적으로 남아있는 일은, 아이가 분유 먹을 때가 되어 젖병에 분유를 넣고 물을 부으려는데 아이 트림을 시키던 엄마가 “너 지금 뭐해?”라고 물었던 일이다. 조금 전 밥을 먹고 트림을 하는 아이에게 밥시간이라며 분유를 주려 한 것이다.
출산 후 하루아침에 달라진 뇌가 걱정되었다. 이 걱정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나보다. 회사 복직을 앞두고 있는 내게 엄마가 당부하셨다.
“절대 고집피우지 마라. 네가 틀림없이 맞다고 기억한 것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이 마음을 품고 복직을 했다. 내 기억이 맞다고 고집 피우는 일은 없으나 역시나 나는 직원들에게 ‘이 일이 처리 되었냐’고 두세 번 묻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직원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 일 얘기보다 사담을 건네 보았으나 직원의 눈빛을 보면서 깨닫는다. ‘아, 했던 얘기구나.’ 이전엔 이 깨달음이 부끄러워 어떻게든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야’ 뉘앙스를 더해 말을 이어갔으나 이제는 그냥 인정한다. “했던 얘기군요. 하하.”
출산하면 정말 기억력에 문제가 생길까?
한 기사에서 다뤄진 관련 연구에 따르면 출산 후에는 기억을 조절하는 ‘해마’에 구조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아이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그보다 덜 중요한 정보는 쉽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특정 대상에 대한 공감과 보살핌 능력이 향상되는 대신 자신을 포함한 다른 이들의 요구나 의무를 기억하는 능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 잘 모르겠다. 난 아직 전업주부가 아니라 아이와 24시간 붙어있는 상태도 아니거니와 잠깐 함께하는 시간 안에도 아이의 요구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일상생활에 불편을 줄 만큼 기억력이 감퇴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기사를 읽고 나니 생육 번식을 위해 몸이 변화하는 자연의 흐름에 충분히 따르지 못한 듯해 오히려 불경스러운 마음까지 든다.
어찌되었든 출산 후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사실이기에 ‘아, 맞다!’ 쳇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다. 비록 쳇바퀴에서 건짐 받는 구원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생각한다.
‘역시 인간은 당해봐야 안다.’
내가 집 안에서 수도 없이 핸드폰을 잃어버려 워치를 내 몸과 같이 여기는 일이 없었다면, ‘이미 들은 얘기예요’라는 속마음이 여실히 드러난 눈빛을 받지 못했다면, 내가 틀림없이 옳다고 했던 기억이 틀렸던 경험이 없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똑같은 것을 또 물어보는 이들에게 ‘기억할 의지가 없으면 물어보지 마세요’라는 마음을 품었을 테다. 또 물건을 두고 나오는 사람에게 “왜 자기 물건을 못 챙기는 거야.”라는 핀잔을 줬을 테다.
‘그럴 수도 있지’.
이 생각은 많은 상황과 마음을 접해봐야 자연히 싹을 틔우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