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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Feb 13. 2024

우울에서 건져줄 동아줄을 찾아라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터지는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 일주일을 지나 한 달에 접어들었다. 울음이 시작된 날은 알지만 비단 그 사건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11월의 나는 일기에 ‘우울, 울음, 겨울. 울의 행진이다.’라고 적어놓았다. 약 500자의 글은 완성되지 못하고 애매하게 끝이 났다. 그때도 이 우울을 이끈 시작을 찾지 못했나보다. 속에서 내리던 비가 눈으로 흘러나올 때가 되어서야 고된 마음임을 깨닫는다.


마음 상태를 읽기 위해 지난날의 글들을 뒤져본다. 마지막 문장은 대개 ‘괜찮아진다’, ‘잘 살아내 보자’ 등 긍정의 메시지가 적혀있으나 그 소망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희망 앞에 적힌 버스럭거리는 마음이 내내 축적되었나보다.


목 놓아 마음껏 울었을 때가 언제인가. 요 몇 달간 하루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서 연차까지 쓰고 슬픈 영화 목록을 뒤져보며 울 날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남편이 함께 연차를 써서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남편 앞에서 (의도하지 않았으나) 자주 운다. 하지만 그 앞에서는 습관적으로 참으려 하기에 내가 원하는 울음을 토해낼 수는 없다. 함께 연차를 쓰고 단둘이 점심을 먹고 아이를 등·하원 시키는 하루도 특별하지만 속을 비워내는 하루가 절실함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기침이 멈추지 않던 아들 로디는 결국 입원을 했다. 그에 따라 인풋이 될 읽기도, 아웃풋이 될 쓰기도 제대로 못한 채 배수되지 못한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낙엽마냥 갈 길을 잃은 감정이 어지럽게 쌓여간다.


나도 모르게 터지는 눈물을 수습하지 못했고 남편은 위로해줬다. 그리고 내가 고통과 슬픔을 잊을 수 있도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장난의 선을 탐색한다. 그 애씀을 알고 있다. 그래서 웃었다.


그렇게 내 울음이 또 한 번 달아났다.


남편은 내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내버려두기보다 해결시키려 한다. 그것이 상황이든 감정이든 거기서 빠져나오게 만든다. 지금껏 그렇게 도와줬기에 수렁에서 건짐 받아왔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다음 날 눈이 팅팅 불어터질지언정 마음 놓고 울고 싶다. 아마도 남편은 이 감정과 이를 표현하는 방식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랫동안 건짐 받지 못해도 어쩌다 한 번은 끝이 없는 구덩이에 빠지고 싶다는 위험한 욕구가 올라온다.


그럼 ‘그 구덩이에 빠져 평생 살래?’ 라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아니다. 그렇다고 남편에게만 구조 요청을 할 생각은 없다. 나를 구하려다 같은 어둠에 빠져 둘 다 살아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 울고 싶을 때 다 울어야 ‘울고 싶은 마음’이 끝날 것인가. 글쎄. 이유를 모르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혼자 살아 나와야 한다.


우울에서 건져 줄 동아줄. 내게는 ‘읽기와 쓰기’다.


글을 쓰면 어떻게든 마음이 반영된다. 글을 쓰면서 나를 탐색할 수밖에 없다. 내 생각을 적으려면 내 생각을 먼저 읽어야 하지 않나. 예를 들어 처음 의도를 가지고 글을 써 나가더라도 내 속의 어떤 것이 올라오면서 글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랐던 나를 발견하는 때다. 내가 쓴 글은 그때의 나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증거물이다. 일기에서도 날 속이는 현상이 간간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여기저기 배어있는 흔적을 모두 지울 수 없다.


쓰는 행위에서만 날 알아갈 수 있는 걸까? 읽기도 그렇다. 다른 이의 (일기와 같은) 글을 보는 것도 도움이 다. 나와 다른 상황과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보면서 지금 내 상태, 위치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로 ‘이렇게 마음 쓸 일이 아니구나’ 혹은 ‘내가 지금 힘들어도 괜찮구나’ 등. 나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보아야 더 또렷한 초점으로 볼 수 있다.


타인의 삶에 관심이 없어 그들의 일기를 읽는 것에도 흥미가 없다면 소설 속 가상의 인물에게 빠져드는 건 어떨까. 현실에서 조금 멀어진, 그럼에도 현실과 꼭 빼닮은 이들의 이야기에 나를 대입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지는 것. 이 또한 내 상황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다. 나의 고민을 해결해줄만한 사람을 찾고 싶다면 검색해보자. 지금 내 고민과 상황 속에 처한 주인공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읽고 써서 내 마음이 나아졌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 아직은 더 읽고 써야하나 보다. 그러면서도 ‘읽고 쓰기’의 효능을 함부로 말하는 것이 옳은가 싶지만 길지 않은 생을 살았어도 많은 도움을 받은 방법임은 틀림없다. 모든 삶의 영역의 문제를 해결해준 것은 아니지만 생각 정리에 메모가 도움 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복잡한 생각을 하나씩 종이에 떨어뜨리기만 해도 머리는 비워진다.


나를 아는 더 좋은 방법.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를 당장 어둠에서 구해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앞으로의 내가 더 단단한 한 발을 딛게 도와줄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 ‘읽고 쓰는 일’에 열심을 내보고 싶다. 이 일에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다 닳아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아무튼 쓰기.

아무튼 읽기.


이번 달 나의 투두리스트이다.


베개와 함께 일광욕 중인 로디. 너가 그냥 동아줄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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