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은 비교적 별 일 없는 조용한 나날로 채워진다. 그런데 오늘 내 업적이 누군가에 의해 도둑맞았다. 여기엔 문제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 내부 직원이 아닌 외부 업체가 내 업적을 가로챘다.
둘. 내 직속상관은 어제 저녁 이 소식을 들었음에도 오늘 내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회사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엮여있다. 회사 내부 사람이 아니라 바깥사람도 내 밥그릇을 탐내고 앗아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오늘은 내가 그 피해자가 됐다. 그리고 ‘외부에서 내 업적을 가져간 상황’을 직속 상사는 어제 알게 됐다는 소식을 타부서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으면 나는 두 다리나 건너서 내 피해를 알아야 하는 건가.
그런데 내가 이 소식을 들은 때는 상사를 만나고 내려온 직후, 사무실에 앉자마자였다. 즉 내가 타부서 사람에게 “새벽 씨 작업, 업체가 가져갔는데 혹시 들으셨어요?”라는 말을 듣기 전 상사에게 이 소식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반응에 그 분이 당황하시길래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볼에 열이 울룩불룩 올라오더니 목이 굳는다. 곧 두통이 오겠군.
내 직속상사는 나와 9년을 함께 했고 개인사를 대체로 알고 있으며 날 동생처럼 대하시는 분이다. 아마 내가 이 회사를 다니면서 많이 아팠어서 안타까워서일지도 모르겠다. 회사가 어려워지고 몇 년째 동결인 상황이 미안한 탓에 업무적으로 스트레스를 안 주려 노력한다. 직급이 있는 이들이 모두 무급을 갈 때도 나만큼은 지켜줬다. (나와 같은 연차인 타부서 직원들이 나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으니 나까지 무급 보낼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애씀을 알기에 회사에 서운한 것이 있어도 (내 딴은) 가능한 입을 다물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상사도 안다면 내 밥그릇을 돌려주시든가 내게 상황을 먼저 설명해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조금은 억울하여 전화해서 한 마디 드렸다. 이건 좀 심한 것 아니냐고. ‘이것은 도둑질 아니냐’는 말은 전화 너머 머뭇거리는 입소리에 증발되어 전의를 상실하고 결국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회사에서 자아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던 세월은 3년까지였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상황에 체념하고 그냥 출퇴근했다. 일다운 일을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위치에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오랫동안 힘들었다. 늘 챙겨주겠다는 말을 듣지만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결국 허풍이 된다. 그 때의 마음이 진심이라도.
사실 이 소식을 듣기 직전 상사를 만나서 한 얘기는, 우리 팀원들이 입사하고 3년째 동결인데 다 그만둬도 솔직히 회사는 할말 없다고, 이제 대책을 좀 세워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평소와 다르게 소리를 높이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내 밥그릇도 못 챙긴 내가 누굴 챙길 위치가 아님을 깨닫고 정말 창피했다. 뭣도 없는 것이 정의 비슷한 것이라도 하나 챙기겠다고 쏟아낸 말들을 다 주워 담고 싶었다. 그걸 왜 하필 오늘 얘기했을까.
그래도.
그래도 우리 아기 좋은 거 먹이고, 우리 집 바닥 따듯하게 보일러 돌리고, 깨끗한 옷 입고 다니게 해주는 회사. 그 이유만으로도 다닐 가치는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삼킨 말들을 글로 배설하고 일을 해본다. 부조리를 참는 것도 월급에 포함된 일이라면 그 또한 ‘일단’ 받아들이리라. 그 받아들임에 짓눌리고 압착되다 결국 밀도를 못 이기고 모든 것이 쏟아질 때까지. 딱 그때까지만 참아보리라.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누구에게 위임하겠는가.
업무 시간 틈틈이 내 글을 쓰는 것으로 억울함을 풀어 본다.
(24.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