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쓰기강좌'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시큼하게 끈적한 여름보단 달달하게 산뜻한 봄이 좋고, 분홍빛 들뜨는 봄보단 고동빛 차분한 가을이 좋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손끝에 물든 귤빛의 따듯함과 아랫목에 깔린 담요의 안락함을 가진 겨울을 따라올 계절은 없다. 그 중에서도 끝을 향하는 12월에 더 마음이 간다.
어릴 적에는 시작을 여는 1월이 소중했다. 1월1일에 뜨는 태양만이 새로운 해이고 새로운 마음이며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기대하며 기다렸던 1월이 끝나면 그 모든 새로움에 지겨움과 절망을 느낀다. ‘올해는 이전과 달라’라고 속으로 되뇐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나에게 1월은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그랬다면 죄책감에 시달리는 달이다.
이에 반해 12월은 달려오느라 수고한 스스로에게 쉼을 허락할 수 있는 달이다. 한 해를 살아내며 응축되었던 스트레스는 차츰 그 밀도가 낮아지고 그렇게 생긴 틈으로 포용과 평안 그리고 새 희망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간 단단하게 뭉쳐진 마음이 비로소 가벼워지는 때다. ‘마음의 안식달’이라 표현해도 좋겠다.
물론 본디 살갗이 아릴 정도로 추운 겨울인 만큼 시린 기억들도 있다.
2002년 12월, 작지만 따뜻했던 아파트에서 오순도순 잘 살던 우리 가족은 혼자가 된 할아버지와 같이 살 오래된 주택으로 이사 왔다. 할아버지에게 우리는 ‘정신 개조 대상’이었다. 그 때문에 겨울에도 보일러 한 번 마음 편히 켜지 못해 남쪽 동네인 부산에서도 나는 매년 동상을 달고 살았다.
그렇게 열다섯 번의 12월을 지나 드디어 이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다가왔다. 이 집이 이제 우리집이 아닌 친정댁이 되는, 바로 결혼식 날. 그런데 식을 세 달 앞둔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딸내미를 예식장에서 결혼시키는 정신 나간 놈’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의 상식으로는 잘난 것 하나 없는 ‘자신의 손녀’는 제 분수에 맞게 구청에서 합동결혼식을, 아니면 들판에서 흰 원피스를 입고 식을 올려야 했다. 딸을 위해 자신의 아버지와 목 터지게 싸워 준 아빠의 도움으로 난 예정된 장소에서 결혼할 수 있었지만 나는 식 전날까지 식장에서 할아버지가“이 결혼식은 무효”라고 소리치는 악몽을 꿔야 했다.
단둘이 1시간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은 사람과 17년을 살면서 우리 네 가족은 각자 마음에 방을 하나 만들었다. 아버지 혹은 시아버지 혹은 할아버지로 불리는 그 방은 12월 그의 방처럼 참으로 싸늘하다. 어쩌다 생각이 나 들어서면 금세 찬 기운이 몰려와 위축되고 그러다 훌쩍이게 된다. 추워서인지, 애통해서인지. 어쨌든 네 식구가 아닌 다섯 식구로서의 우리 가족은 웃음보다 슬픔이 많았다.
2016년 12월, 나는 갑상선암을 진단 받았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이야기한 의사 덕에 나도 아무렇지 않았다. 유독 공기가 맑고 청명한 날이었을 뿐. 그리고 다음 해 1월에 수술을 받았는데 그날 저녁,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거짓말같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막 수술을 마친 딸을 입원실에 둔 채 엄마는 일주일 후 설 명절에 만났어야 할 본인의 어머니를 영정사진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마음이 회복되나 싶더니 4개월 후 엄마는 사고로 심한 화상을 입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우리라고 왜 이런 일이 없겠냐’며, ‘다 괜찮다’고 어줍잖게 위로를 건네던 이성(理性)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마음은 그간 눌러 온 분노와 원망을 쏟아냈다. 꽤 오래도록.
날 작아지고 무너지게 한 12월들. 그런데 이때 생긴 아픔이 서서히 회복된 때도 다름 아닌 12월이다. 2018년 12월 8일, 누구의 방해도 없이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다. 하객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가니 먼저 외가 식구들이 환한 미소로 날 반겼다. 할머니 장례식에도 못 간 터라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이후 다른 이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친정 오빠가 파란 봉투 하나를 건넸다. 할아버지가 깜박했다며 오빠에게 대신 전해달라 부탁한 봉투 속에는 만 원짜리 서른 장이 들어 있었다. 같이 산 이후 처음 받아 본 용돈이었고 2년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사용할 수 있었다.
쉬이 사라지지 않을 아픔이 서려 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 모든 것을 평온히 덮어주는, 품이 넓은 12월을 여전히 아끼고 사랑한다. 화가 많던 지난 시절을 묵묵히 받아 준 나의 십이월에게 보내는 내 소박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