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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Dec 21. 2021

사랑 중력의 법칙

사랑은 내리사랑이라 했던가. 부모님은 요새 나의 모습을 보며 놀랍고 흐뭇한 반면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내 딸에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아이의 응가 냄새를 맡고 구수하다고 하질 않나, 어려서도 부리지 않던 재롱을 다 큰 어른이 되어 아가 앞에서 부리질 않나, 아이를 보며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피조물이 어떻게 내 뱃속에서 나올 수 있냐며 감탄하지를 않나.


이런 나를 보며 엄마가 한 마디 한다.


"니도 세상에서 유일하다! 니 말고 니가 또 있나?"


아빠가 한 마디 더 보탠다.


"새벽이는 아기 별로 안 좋아했는데 어쩌다가..."


사랑의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래로, 아래로.

어쩔 수 없이 아래로 흐르고 만다.


받은 사랑을 그대로 갚을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준 사랑을 그대로 받을 날 또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부모, 자식간의 사랑은 무심하게도 아래로만 흐른다.


그런데 사랑이 중력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그리 자연스럽게 흘러가진 않았다. 출산 후 달라진 나의 모습을 알게 되는 순간마다 눈앞의 아이보다 거울 앞의 나를 더 챙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조리원에서 나온 후 체중을 재니 얼추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와 있었다. 기뻤다. 그런데 아이 소아과에 가기 위해 열 달 만에 임부복이 아닌 이전에 입던 옷을 입어보는데 늘어난 살을 빈 공간에 구겨 넣어야 했다. 허벅지, 엉덩이에 생긴 몹쓸 주름을 보면서도 그 주름만큼이나 보기 싫은 몹쓸 자존심에 옷을 더 사지 않고 외출할 때마다 가장 큰 사이즈 바지 하나만 꾸역꾸역 입고 다닌다.


히죽 웃는 아이를 보자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 카메라를 켜면 생후 수십 일째인 '새' 아이 옆에 참으로 부조화한 '헌' 어른이 보인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 까맣게 번진 다크써클, 퍼런 상처로 얼룩진 튼 입술. 분명 아이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내 웃음이 잘못된 건지 웃음이 박힌 몰골이 잘못된 건지. 어쨌든 내가 남기고 싶던 아이와 나의 셀카는 결국 내가 빠져야 완성됨을 알게 된다.


옛 어르신들은 오래 전부터 산후풍이 무섭다며 찬 바람 쐬지 말고 최대한 손목과 무릎, 허리를 쓰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계절은 겨울이고, 아이를 매번 안고 앉았다 일어서야 하며, 아이를 케어할 때 수시로, 급하게 손을 씻어야 하므로 온수를 기다릴 수 없다. 그렇게 옛말을 하나하나 거역하다 보면 지금 나처럼 손목보호대가 없으면 아이를 안는 것이 어려워지고, 손가락 관절 사이사이가 시리며, 변기에 앉을 때 양쪽 무릎이 동시에 굽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다 잡아당기지 않아도 온 바닥을 수놓은 내 머리카락은 하다하다 아이가 줍줍하던 작은 주먹에서도 발견된다. 신체의 노인화가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 몰랐는데. 역시 선조의 말씀을 잘 지켰어야 했다.




그래서 아이가 미워질까. 그럴리가. 날이 갈수록 새로운 표정과 억양으로 나와 소통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언제 뒤집고, 언제 걷고, 언제 말할지 매일이 기대되고 그것을 성취시켜주는 아가가 더없이 사랑스럽다. (잠만 더 자주면 좋을 것을. 기대가 욕심이 되는 것은 한순간.)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아래로 더 흐르는 것이 사랑의 법칙이라면

더 많은 사랑을 쏟아내고 싶다.

아래로, 아래로.


사랑은 퍼준다고 고갈되지 않음을 새삼스레 느끼는 요즘이다.


내 캥거루 :)


+) 아이는 날로 사랑스러워져가는데 내 모습은 날로 미워져간다. 넘치는 사랑아, 내 안으로도 흘러라. 훠이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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