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관심을 바라는 부모는 아이와 눈맞춤을 시작한 후부터 상호작용이 가능한 장난을 시작한다. 본격적인 장난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아이가 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부모는 각자의 방식으로 장난감을 흔들며, 아이와의 추억을 읊조리며 아주 난리법석을 떨면서 아이가 누구에게 가는지 서로 내기한다. 아이랑 논다기보다 부부끼리 하는 소꿉장난같은 놀이랄까.
시간이 지나 아이가 음식을 손으로 잡고 먹을 수 있게 될 즈음에는 “엄마도 한 입만.” 놀이가 시작된다. 그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고 줘도 안 먹을 거면서 꼭 물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마침내 아이가 음식을 본인 입에 들이밀면 "아냐, 너 먹어. 으구, 착한 것"이라 말하고는 뿌듯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가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아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에게 이런 질문을 할 테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아이들은 “내가 애야?”라고 대답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 틈만 나면 자식의 사랑을 갈구하는 부모에게 이 질문을 듣게 될 것이다. 부모의 말을 장난으로 여기고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면 내면이 성장하고 있는 것일테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물음에 말없이 살인미소를 보낼 수도 있고, "둘 다 좋아!"라며 이 순간을 빨리 넘기길 원할 수도 있고, "뭐 그런 질문을 하고 그래? 내가 애야!?"라며 핀잔을 놓을 수도 있다. 3단계까지 와버린 아이를 마주할 땐 부모는 내심 서운하다. 유치한 장난이라도 그 안에 (날 선택해주길 바라는) 진심이 들어있기에. 하지만 이와 같은 스토리는 필연적이며 바람직한 전개다. 언제까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에 난처해하는 반응으로 부모에게 웃음을 주는 아이로 남아있을텐가.
생각보다 우리는 아주 어려서부터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지 생각하는 훈련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게 부모의 장난으로 시작되었든 또래들과의 사회생활에서 시작되었든간에. 아이는 수많은 관계와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본인이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마음이 편안했는지 학습한다. 그리고 가치관과 삶의 방향을 정립해 나간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맞닥뜨린 현실은 어떤가. 차곡차곡 세워 나가던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뿌리채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비겁한 자가 될 것인가, 우스운 자가 될 것인가', '교활한 자가 될 것인가, 바보가 될 것인가', '결국 중도를 지키다 어느 곳에도 끼지 못하는 외톨이가 될 것인가'. 어떤 방향이 옳은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내게 유익한지 끝없이 재고 따져보지만 세상살이가 참 쉽지 않다.
그럼에도 무엇이 옳은지 알아내는 지혜가 찾아오길, 내면의 혼란을 잠재우는 평안이 임하길 바라며 한 순간, 한 순간의 선택에 진심을 다해본다. 그 선택들이 만든 내 모습이 부디 이랬으면 좋겠다.
1. 무례함이 난무하는 분위기에서 무해한 웃음을 던져 무례를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사람
2. 편 가르기를 요구하는 이들이 맞닥뜨리는 순간 전의를 잃고 마는, 포용력이 넓은 사람
3. 내면을 무너뜨리려는 세상에서 그 난폭함마저도 유치한 장난쯤으로 여기며 삶을 쉽게 다루는 사람
“엄마, 한 입만.”이란 요구에 눈알을 굴리다 허겁지겁 과자를 입에 쑤셔 넣는 아이를 보노라면 ‘곤란해 하는 반응조차 귀여울 수 있다니 놀랍다’는 마음과 ‘앞으로 이 귀여움은 시크한 대답으로 대체되겠지’하는 기우가 찾아온다. 그냥 대화하고 싶어서 일상을 물어보는 말에 냉랭한 대답이 돌아오는 시기가 분명 올 것이다. (사춘기가 뭐야, 이미 힘겨운 일춘기를 지났다.)
아이가 스스로 삶의 자세를 정립할 때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거칠 테다. 웃어넘기기도 했다가, 정면으로 돌파하기도 했다가,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울어보기도 했다가. 그때 내가 할 것은 날 선 조언도, 방치도 아닌 헤아림. 그냥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며 부디 옳다 생각한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도록 기도하는 것뿐이지 않을까. 이제 두 돌 지난 아이에게 밤에 뛰어다닌다고, 숟가락으로 장난친다고 “그마안!”하고 소리 지르는 내가 할 소리는 아닐 수 있지만.
그저 귀여움을 귀여움으로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약한 성미를 타고난 탓에 밤마다 반성하는 것이 특기가 되어버린 한 엄마의 한탄. 행할 의지도 없는 바람을 매번 적어서 무엇하나 싶어 글로 남기는 것이 부끄럽지만 글쓰기가 의식과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힘이 있다 믿기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