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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숨 Jan 30. 2024

27개월 아이, 언어를 창제하다


내 인생 진지한 덕질은 ‘이루마’가 유일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최애가 생기면 그의 모든 것을 수집하려 달려드는데 요즘 수집중인 것은 27개월 아이의 언어다.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는, 하지만 부모인 우리에게는 너무나 분명한 자기표현의 도구로 잘 사용된 아이의 언어가 매일같이 놀랍고 신비롭다. 비록 시옷 발음이 안 되어 이해에 버퍼링이 걸릴 때도 있으나 우리는 85% 소통이 되고 있다.


잘 들리지 않던 아이 말이 마침내 깨달아졌을 때 그 희열은 외국 식당에서 처음으로 음식을 주문했을 때, 그런데 메뉴가 제대로 나왔을 때의 기쁨과 맞먹는다. 


엄마 옹가락 엄마 옹가락 어디 인나요
요기요 요기요 안녀아세요 


멜로디도 처음 들어본 이 노래를, ‘옹가락’을 다섯 번의 시도만에 손가락으로 알아듣고 검색하여 끝내 찾아 낸 이 동요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아이 세계에서는 ‘두부’가 ‘만두’이고 ‘빠삐꼼’은 ‘버블껌’, ‘바비용베베’는 ‘맛있어’다. 알아듣는 우리가 대견할 정도로 변형된 이 단어들이 특별한 왕국을 건설했고 그 군주는 단연 이 언어를 만들어 낸 우리 아가다.


나라를 만들 때 필요한 단 하나를 꼽으라면 땅도, 국민도, 주권도 아닌 언어가 아닐까. 말이 통하는 이들이 모이면 세상을 건설하는 것쯤은 문제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바벨탑을 짓던 이들의 언어를 나누어 흩으신 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이가 두부를 두부라고 하고 옹가락을 손가락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되면 분명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만의 특별한 세상이 사라져버린, 나라 잃은 상실감도 찾아올 터. 


‘사랑해요’가 ‘다랑해요’인 나라에서 조금 더 오래 살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 세 가족이 누워있는 이 한 평도 안 되는 공간마저 꿈과 희망이 가득한 우리만의 세계일테니. 



브이가 보자기인 행복한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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