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는 단순한 춤이 아니다. 훌라에는 이야기, 감정, 그리고 자연과 신화가 담겨 있다. 훌라곡의 가사, 즉 멜레(Mele)는 단순한 노랫말이 아니라 하나의 서사다. 어떤 멜레는 하와이의 신들을 찬양하고, 어떤 멜레는 바람과 파도의 속삭임을 전하며, 또 어떤 멜레는 사랑과 그리움을 노래한다. 우리는 그 노래를 듣고 단순히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몸으로 그려낸다. 손끝으로 바람을 표현하고, 발의 움직임으로 대지를 느끼며, 골반의 흐름으로 파도를 그려낸다.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가 된다.
훌라 선율은 대체로 부드럽다. 훌라 동작 안에는 손끝에서 손끝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허공에 흘려쓰는 손짓을 보면 넘실대는 공기가 눈에 생생히 포착되는 것만 같다. 손은 공기를 타고 흘러가고, 발끝은 땅에 맞닿아 춤춘다. 발로 땅을 지그시 눌렀다가 이내 가볍게 밀려난다. 그 리듬이 다리뼈를 타고 골반으로 넘실댄다. 대지는 골반에서 풍요로움을 과감히 자랑한다. 호흡은 그 움직임에 맞춰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 순간, 나는 오롯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춤추는 내 심장은 희열을 느낀다. 기쁨의 미소는 내 코드가 나만의 생명력에 접합되어 하나로 흐르는 증거일테다. 더듬 더듬 배운 춤 동작과 순서가 차츰 소화되기 전까진 생각이 앞서지만, 팔다리에 자동적으로 춤이 표현될수록 춤 안에서 생각은 흐려지고, 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 그것이 바로 명상의 상태가 아닐까.
훌라댄스를 만나기 전 나는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 2000년 막 들어서 코로나 팬데믹을 난생 처음 겪었던 때가 엊그제 같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공포와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을 떠돌고 있으니 입과 코를 막고, 사람들끼리의 전파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거리는 텅 비었고, 한때 활기로 가득 찼던 공간들이 황량하게 변해갔다. 하루하루 확진자 숫자가 올라가는 뉴스를 보며 영화에서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에 정신이 얼얼했다. 그럼에도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던 직장인들과는 달리 사업자들은 충격이 더 컸는데 특히 헬스, 요가원, 필라테스 등 체육관련 시설들은 심각했다. 막연한 두려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안감 말고도 마이너스 수입도 매달 일어났다. 제로도 아닌 엄청난 마이너스를 계속 버텨야했다. 일이 줄어 몸은 쉬어도 속은 늘 녹초였다. 마음이 가시방석같았으니 그럴 법하다. 임대계약이 남았으니 사업장을 그만둘 방법도 없었고, 계약된 임대료를 성실납부해야 했다. 그 시기, 60평의 요가원을 운영하던 터라 임대료, 관리비가 엄청났다. 체육시설 운영 금지기간이 끝난 후 운영시간 제한이 생기고, 시간 지나 제한이 풀린 후에도 사람들은 쉽게 모이길 꺼려했다. 생각보다 큰 무력감 안에서 이 시간을 버텨야만 했다. 한때 따뜻한 온기와 오고가는 밝은 인사로 가득 찼던 내 공간이 삭막해졌다.
어느 날, 노트북을 열었지만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 물 한 모금 없이 고구마를 삼키려다 목이 막힌 것처럼, 나도 그렇게 숨이 막혀갔다. 글 몇 줄도 써내려가기 어려울 만큼 집중력이 증발해버렸다. 심한 집중력 저하 증상은 다름아닌 우울증 증세였다. '코로나 블루'라는 단어를 뉴스에서 보았지만, 그것이 내 일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울하다기보다는 무력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물렁하게 쳐진 듯, 세상의 모든 일이 같은 맛과 같은 식감의 신물 난 음식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명상도 하기 싫었다. 결국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난생 처음으로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2개월동안 아무런 개선이 없었다. 그렇게 2개월이 흐르고 나서야 조금씩 에너지가 돌아왔다. 다시 움직이고 싶어졌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훌라댄스가 떠올랐다.
2021년 여름, 나는 훌라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한 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번의 움직임 속에서 나는 익숙한 감각을 발견했다. 명상이었다. 훌라는 명상을 움직임으로 풀어낸 것 같았다. 손끝에 머무는 의식, 공간 속에 팔로 그리는 선율, 발과 지면이 나누는 교감, 음악에 담긴 이야기 속 세상. 새로운 감각들이 깨어난다. 경쾌하게 움직이지만 그 안에 고요함이 있다. 나는 하와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론 나는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기도 한다. 깊은 명상의 한가운데로 스며든다.
훌라는 내 안에 스며들었다. 코로나블루를 겪으며 수면 아래로 깊이 가라앉은 생기를 물 밖으로 구조해주었다. 음악이 흐르면 내 몸도 함께 흐르고, 손끝이 공기를 가르면 내 마음도 함께 움직인다. 생각이 떠오를 틈 없이, 나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그 춤 안에서 숨을 쉬고, 나를 느끼고, 평온 속에 머문다. 나는 훌라와 함께 명상을 한다.
* Ono_소메틱훌라댄스_인스타그램에 초대해요
https://www.instagram.com/hula_garden?igsh=ZDVwMjdubGo0ZGo1
#훌라댄스#하외이#명상#움직이는명상#코로나블루#우울증#나를찾는시간#회복탄력성#분당#성남#강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