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무성(無性)인가

엄마도 여자였다... 가 아니라 여자이다.

by 새벽한시

몇 해 전 엄마를 모시고 해외여행을 갔는데, 운이 좋게도 공항에서 발권할 때 항공사에서 내 좌석을 업그레이드해주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좌석을 바꾸는 건 원래 안 되지만, 엄마를 이코노미석에 두고 나만 비즈니스를 탈 수는 없어 엄마를 비즈니스로 가시게 했다. 긴 비행시간 동안 넓은 자리에서 엄마가 편안했을 거라 생각해서 나름 뿌듯했는데, 막상 비행기에서 내릴 때 다시 만난 엄마는 그리 편해 보이지 않았다.


"엄마 잘 못 쉬었어? 별로 안 편해 보이네?"

"내 자리 양쪽이 다 어른들이라서 불편하더라. 잠자기도 좀 그렇고"


알고 보니 엄마의 자리가 비즈니스석 가운데 자리인데, 양쪽에 남자 성인이 앉았으니 엄마는 불편하셨나 보다. 왼쪽으로 누워도 옆에 낯선 남자, 오른쪽으로 누워도 옆에 낯선 남자가 있으니 뒤척뒤척하다가 마음 편히 못 쉬었다고.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이도 지긋하신데 뭘 남자, 여자 그렇게 따지고 불편해하시나. 엄마가 조금 유난이시네'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나이 드신 분들을 중성 혹은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생각했나 보다.


따지고 보면 나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그러한 인식을 많이 볼 수 있다. 40, 50대까지야 이혼이나 사별하면 재혼을 생각해볼 수 있다지만, 60대 이상의 노인이 재혼한다고 하면 일각에서는 '망측하다'라는 표현까지도 나온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서로 만나면서 위로가 된다한들, '재혼이라는 공식적인 과정을 굳이 거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겨우 예순여덟 살의 나이었다. 평균 수명으로 계산해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혼자 살아야 하는데, 한 번도 엄마가 남자에게 관심이 있을 거라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게 나랑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 일을 내가 직접 당해보니 참 기분이 별로였다.

그 이후 또 다른 해외여행에서는 엄마를 모시고 아이와 함께 셋이 여행을 갔다. 관광지 중 한 곳은 차로 5시간 넘게 운전해서 가야 하고 근처에서 하루 숙박해야 하는 일정이라, 이틀 코스만 여행상품으로 신청했는데 당일 도착해서 보니 같은 여행팀은 모두 20대 젊은 남녀였다. 7명의 여성, 2명의 남성, 그리고 우리 가족 3명.

관광지 근처 숙박시설도 거의 없는 곳이라 캠핑카 2곳에서 나누어 자야 했다. 캠핑카 1대에 8명이 잘 수 있었는데, 남녀로 나누면 여성이 9명이 되어버리고 나는 어린 아들이랑 떨어져서 자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이드가 "어떻게 나눠서 주무시는 게 좋을까요? 가족분들은 같이 주무셔야겠죠?"라고 물었고, 남자 여행객 한 명이 "저희가 2명이니까 가족분들이랑 같은 캠핑카 쓸게요"라고 대답했다.


캠핑카에 방이 2개로 나뉘어있다지만, 사실 나도 낯선 남자들이랑 같은 캠핑카를 쓰는 게 너무 껄끄러웠다. 그런데 그 미혼의 젊은 남녀들은 가족으로 묶인 우리를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하는 느낌이라 당황스럽고 씁쓸했다.


'여자로 봐달라'. '우리도 사랑하고 연애할 수 있는 나이이다'.

뭐 이런 게 아니다. 사랑을 하는 것과 별개로, 나이가 들었다고 해도 엄연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진 존재이고 그에 따른 예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니랑 TV 뉴스를 보다가 강간사건이 나오면 "나쁜 놈"이라고 "사형을 시켜야 한다"라고 욕을 한다. 그런데 피해자가 노인이라고 하면 한 마디가 더 붙는다. "미친놈, 할머니한테 그러고 싶을까?"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가지고 있는 '노인 = 무성적인 존재'라는 시각이 노인에게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성별에 관계없이 대중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는 나이의 기준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남자아이가 엄마나 할머니 손을 잡고 목욕탕을 갈 수 있는 나이가 일곱 살에서 다섯 살로 낮아졌고, 최근에는 더 낮추라는 여론이 많다. 우리가 아이들의 성 인지에 민감하게 생각하는 만큼, 노인들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는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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