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20대가 된다면?

즐거운 기억에 갇히면 천국일까, 감옥일까.

by 새벽한시

초등학교 때 친구랑 지난밤 꿈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친구가 말했다.

"내 동생은 밤에 원하는 꿈을 꿀 수 있어. '오늘 하늘을 나는 꿈을 꾸어야지~'하면서 잠들면 진짜 하늘을 나는 꿈을 꾼대"

"완전 부럽다. 능력자네"


진짜 부러웠다. 사람은 인생의 1/3을 수면에 쓰는데, 밤에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다면 인생에서 1/3은 슈퍼맨으로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그 후에 나도 잠자리에서 자기 암시를 통해 꿈을 만들어보려 애를 썼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머리만 대면 자는 스타일이라 꿈을 거의 꾸지 않는다. 꿈을 꾸더라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만약 지금 내가 꿈을 조종할 수 있다면, 어떤 내용을 바랄까. 하늘을 나는 것? 직장이나 브런치 작가로 성공하는 것?

그런 것도 좋지만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면 밤에 내 생애 가장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가 그때를 다시 느껴보고 싶을 것 같다. 이를테면 늦게 일을 끝내고 귀가하신 아빠가 야식을 들고 와서 잠든 나를 살그머니 깨웠던 그 밤... 밤새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다 뜨는 해를 등지고 기숙사로 귀가했던 20대 초반의 아침들...


밤마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가족 혹은 친구들과 그 시절 그 모습으로 꿈에서 만나 같이 놀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행복하지 않은가?




<Netflix series Black Mirror: epi. San Junipero>


넷플릭스에서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Black mirror'의 San Junipero 에피소드는 그런 이야기를 다룬다. 나이가 들어 요양원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하루 중 일정 시간만큼 가상현실을 즐길 수 있다. 그 가상현실에서는 본인의 20대 모습 그대로 70년대 클럽에서 90년대 나이트까지, 다양한 시간대 다양한 환경을 골라 시간을 보내며 즐길 수 있다. 물론 같은 시간에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으니, 현실의 70대 할아버지 할머니가 밤에는 20대 남녀가 되어 소개팅을 할 수도 있고, 내 친구와 대학생 때 시절로 돌아가 똑같이 웃고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밤마다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낮의 일상들이 지겨워질까? 아니면 밤에 대한 기대로 하루를 보다 활기 하게 보낼 수 있을까?

만약 이 행복한 시간에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갇히게 되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낄까, 혹은 녹록지 않더라도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질까?




엄마가 요즘 부쩍 같은 말을 반복하신다. 엄마한테 자주 전화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사실 수화기를 드는 순간부터 내려놓는 순간까지 주고받는 대화가 똑같아서 지겹기도 하다. 내가 매번 하는 이야기를 엄마는 처음 듣는 것처럼,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대답을 한다.


며칠 전에는 언니랑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언니가 친구의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

"내 친구 엄마는 아들들 일이 잘 안 풀려서 멀쩡하실 때는 항상 아들들 걱정하느라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대. 종일 한숨만 쉬고 말이지. 그런데 치매가 심해지셔서 요양원 들어가시더니, 아들들 기억을 못 하니까 걱정이 없더란다. 그 어머니가 아무 걱정 없이 매일 거기서 노래 부르고 게임하면서 즐거우니까 얼굴이 피었대"


엄마의 기억이 점점 줄어들어서 언젠가 엄마가 단편적인 기억에 갇히게 된다면, 엄마가 가장 찬란하고 빛났던 시절의 기억에 머무르면 좋겠다.

거칠고 황량한 현실에 지쳤을 때 가만히 끄집어내서 들여다보기만 해도 입가에 웃음을 떠오르게 하는 안식처 같은 기억들. 원치 않더라도 엄마가 어느 순간 기억의 조각에 발목 잡힌다면, 매일 마주하더라도 행복하기만 한 기억 속에서 엄마가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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