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언제까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뻔한 이야기..
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
현재에 충실해야 하고, 그 모든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서 즐겨야 한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어왔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눈앞에 쌓여있는 일에 파묻혀서 그 순간을 온전히 집중하기가 힘들다.
같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을 일을 해내야 하니 멀티 플레이하는 사람이 능력자가 되는 세상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실시간 날아오는 업무 문자를 확인하고, 출장을 가는 기차 안에서도 노트북으로 자료를 만든다. 세상은 그렇게 바쁘게 사는 사람을 사회에서 필요한 사람으로 간주하니, 가을의 단풍을 하염없이 감탄하면서 바라보고 있거나 종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즐기는 일은 급한 업무를 끝내 놓은 뒤에 정말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사치스러운 일이 되었다.
작년에 영국에 1년 기한으로 연수를 가게 되었다. 사실은 재작년에 가려던 일인데, 하고 있는 일 중간에 나가는 걸 회사에서 허락해주지 않아 부득이하게 한 해 미루게 되었다.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하다 보니 지겨워져서 새로운 변화가 너무나 필요했던 시기였고, 원하는 기회였기에 정말 신났다. 신랑은 휴직할 수가 없으니, 아이를 데리고 둘이서만 갔다.
집을 구하고 아이 학교에 등록하느라 몇 주는 정신이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영국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고, 한국과 다른 부엌에서 요리하겠다고 낑낑거렸다. 아이 학교를 고르기 위해 몇 군데 학교를 방문해보면서 보고 겪은 영국의 시스템은 새로웠다. 아침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 또한 신기했다.
한국에서의 일상은 너무 익숙해서 아무런 기억도 느낌도 없는데, 새로운 환경에서의 일상은 하루하루가 이벤트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시차 때문에 일찍 일어난 어느 날 창밖으로 동이 트는 걸 보는데 내 입에서 "행복하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여행 혹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매 순간순간이 기록하고싶을만큼 경이롭다>
그리고 전 세계 모두가 알듯이 코로나가 터졌다!! 아이는 학교에 적응할 즈음 락다운으로 다시 집에서만 있어야 했고, 한참 신나게 다니던 테니스클럽, 수영교실 등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내가 참여하던 프로젝트도 모두 재택근무로 진행되어서 정말 사람 만날 일이 없었다. 결국 일 년 중 절반 가까이는 락다운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6개월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 영국에서 10년 지낸 한국사람들도 아직 못 가봤다는 구석구석까지... 주말 아침마다 아이를 깨워 차에 태우고 출발했다. 한국에서는 등산도 싫어하고 제주도 여행 가서도 조랑말을 안 탔는데, 영국에서는 일요일 아침 일찍 두 시간 운전해서 산을 오르고 pony trekking을 했다. 코로나가 걱정되어서 되도록 숙박은 하지 않으려고 3시간 거리 정도는 가뿐하게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거기서 오래 사신 한국분이 나보고 에너지가 넘친다고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러나 사실 내가 별나게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매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때 이게 우리의 인생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처럼 산다. 가족과의 시간, 내 인생의 만족감을 찾는 게 당장의 업무보다 중요한 걸 알지만, 우리에게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중요한 일을 미루게 된다.
그런데 내가 영국에서 지낼 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날짜가 정해진 것처럼, 우리의 삶이 끝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길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한다면 훨씬 오늘의 삶을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동해에서 보지 않아도, 1월1일에 뜨는 해가 아니어도 좋다. 당신 집 베란다에서 내다보는 일출도 충분히 이쁘다>
물론 한국에 돌아와서는 아이랑 여행을 덜 다니고 예전처럼 주말에 게으름을 피운다. 그러나 가끔 생각한다.
내가 1년 뒤에 여기를 떠나야 한다면, 이 삶이 1년 뒤에 끝날 수도 있다면
지금 이 집에서 창 밖을 보며 커피와 함께 글 쓰는 이 순간이 지루한 일상이 아니라,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또 하나의 이벤트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