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되려면 때로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

by 새벽한시

아이가 어릴 때 친구랑 싸우고 왔을 때

아이가 일방적으로 맞고 오거나 억울한 상황이 아니고,

쌍방이라면 예의 바르게 사과하라고 가르쳤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고, 아이가 예의 바르고 경우 있는 사람으로 보고 배우며 자라길 바랬다.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 납득이 안되고 억울한 상황이 있는 경우,

혹은 자신이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극성 엄마가 될지언정 때로 엄마가 적극적으로 나서 줘야 하는 게 맞았다.

가끔은 엄마가 나서는 게 맞나 싶은 상황일지라도 말이다.


욕은 엄마가 먹더라도, 손가락질은 엄마가 대신 받더라도

아이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 하는데

항상 예의 바르게 굴게 하고 손가락질 안 받는 방법만 가르쳤으니

아이가 자신의 욕구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것은 아닐까.



최근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며칠 전 엄마의 친구분이 엄마에게 좀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랑 언니가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좀 의아한 생각이 드는 정도의 부탁이었다.

크게 어렵지는 않으나 조금은 부담스러운 부탁이었고, 향후 반복될 수도 있는 것이라서 좀 찜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랑 엄마 친구 사이에 끝난 이야기를, 갑자기 우리가 나서서 조율하는 것도 이상해 보여서 넘어가야 하나..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엄마랑 통화하면서 슬쩍 물어보니 엄마도 그다지 내켜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엄마도 불편하지만 평소에 자신을 잘 챙겨주는 친구이니,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들어주는 것 같은 뉘앙스


엄마가 점점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묻는 경우도 많고, 돈 관리도 안 되는 상태이다 보니

혹시 그 친구분이 엄마를 이용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생겼다.


그냥 넘어가기에는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엄마도 대놓고 거절하기 힘든 상황, 언니도 엄마의 친구분을 익히 아는 터라 갑자기 대신 나서서 뭐라 하기도 힘든 상황..

나라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거나 거절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넘어가면 불편함을 오롯이 엄마가 부담해야 할 것 같았다.


"언니, 그냥 내가 그 친구분에게 말해볼게. 엄마도 별로 안 내켜하시는 것 같으니, 내가 악역을 맡아보겠어"


그리고는 엄마한테 그 친구분 연락처를 물어봤다.

사정을 설명하자 엄마는 "그냥 내버려두어라. 평소에 나 잘 챙겨주기도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셨다.

그러나 평소에 잘 챙겨주신 것을 감안해도 이건 넘어가기 애매한 상황이었고, 엄마도 강력하게 나를 말리지 않는 것을 보니 거절하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 친구분께 전화드려서 말씀드렸다.

"엄마 잘 챙겨주셔서 저희가 너무 감사드리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그분도 좀 과했다 생각이 들었는지, 허겁지겁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며 부탁을 거둬들였다.




언니는 "역시 집에 성질 안 좋은 사람 한 명 있어야 해. 우리 집의 지랄 전문가!!"라며 칭찬 아닌 칭찬으로 나를 치켜세웠지만,

사실 나도 어디 가서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성격이라 그분에게 전화해서 따지듯이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불편하다고 참고 넘어갔으면, 엄마 혼자서 그 몫을 다 가져가야 했겠지.

내 엄마를 보호하려면 내가 악역을 맡을 필요가 있는 것이었는데...

왜 내 아이를 키울 때는 울타리가 되어주기보다 예의 바른 모범이 되는 것에 더 치중했는지. 그러다가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풀어주지는 못했던 게 아닌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키울 때는 첫째 키울 때와 다르게 마음이 여유가 있어진다는데,

외동아이를 키우는 나는 엄마로서 겪는 여러 가지 과정이 모두 처음이었으니, 엄마가 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여전히 서투르기만 한 것 같다.


이렇게 다시 아이가 되어가는 엄마를 보며, 또 한 번 엄마로서 보호자로서 내가 성장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 같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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