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아빠 제사였다. 지난달에 엄마가 요양시설에서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면회를 한동안 하지 못했던 터라, 이번 주말에는 엄마를 모시고 나와 형제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언니네 집에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보는 손주들마다 옆집 아이를 보는 것처럼 "이 애기 참 이쁘게 생겼다", "참 잘생겼네"하면서 연신 이쁘다고 쓰다듬어주었다. 손주들이 "할머니, 저 누구예요? 저 이름 뭐예요?"라고 물으면 못 들은 척 은근슬쩍 대답을 회피한다.
누구인지 명확히 모르지만 완전히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는 건지, 혹은 아무런 기억도 없지만 그냥 분위기상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걸 파악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건 사위나 손주들이 나 누구냐고 엄마에게 물어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고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바라보기만 한다.
식사는 야무지게 잘하신다. 식사하실 때 음식을 손으로 만진다거나 함부로 식사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입맛이 변해서 완전히 아이 입맛이 되었다. 예전의 엄마는 나물이나 생선을 좋아하고 군것질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어린아이처럼 고기 위주로만 식사를 하고 달달한 간식을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가 평소 주무실 시간이 되자 피곤하실 듯하여 방에 이부자리를 깔아드렸다. 혼자서는 불안해하시길래 내가 옆에 가만히 누워 엄마를 토닥였다. 거실에서 언니들과 형부, 조카들이 모여 야식을 먹으며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엄마가 잠들어서 나도 거실로 가 같이 놀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는 막상 누우니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쉬이 잠들 모양새가 아니다.
"엄마, 얼른 주무셔"
"잠이 와야 말이지. 잠도 안 온다"
"눈을 감고 있어봐"
내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잠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를 재우면서도, 머릿속에는 아이가 잔 다음 해야 할 집안일과 내가 할 일의 목록이 한가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얼른 잠들어서 나머지 일을 해치우고 나도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럴 때면 말똥말똥 천장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꺼풀을 손으로 가리며 눈을 감아야 잠이 온다고 했다.
그날도 자꾸 불안한 듯 방 안을 둘러보는 엄마의 눈꺼풀을 가만히 손으로 가리며 피곤하니 얼른 주무시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엄마는 늦게까지 주무셨다. 요양시설에는 이미 일어나서 식사도 하실 시간인데 엄마는 다른 식구들이 조용히 자고 있으니 계속 잠을 청하신 건지 내가 중간중간 확인할 때에도 계속 주무시고 있었다.
9시가 다 되어서야 보다 못한 내가 엄마한테 배고프지 않냐며 식사하자고 했다. 아침을 다 드신 엄마는 피곤한지 이 집에 누울 데도 없냐고 물었다. 지난밤 주무셨던 방으로 다시 모시고 가서 "피곤하시면 더 누워계시라" 했다. 엄마는 당신이 밤새 주무신 방이데도, 아침 먹는 사이에 잊어버리셨는지 "누구 방인데? 이 방에서 자도 되냐?"고 물으며 몸을 뉘었다.
조카들은 늦게까지 자고, 언니들과 나는 커피를 마시며 평화롭게 아침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문틈으로 엄마를 들여다보면 주무시는 건지 눈을 감고 있기도 하고, 누워서 눈을 뜬 채로 방을 둘러보고 있기도 했다. 심심하시면 나와서 같이 놀자고 해도, 나와서 조금 지나면 누울 데를 찾으시길래 '오늘은 피곤하신가 보다'하고 방에 누워계시게 했다.
한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엄마를 깨우려 방에 들어갔는데 방에서 악취가 난다. 이것은 음식물 쓰레기나 뭔가 썩은 냄새가 아니라, 말 그대로 똥냄새였다!!! 아니 대체 왜 똥냄새가 나는 거지? 밤에 나도 같이 이 방에서 잤건만 밤에는 안 나던 냄새였는데 말이다.
이상하다 싶어 온 구석을 살피던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방구석의 행거 뒤쪽, 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똥덩어리 몇 개가 놓여있다. 엄마를 살펴보니 손가락 끝에 똥의 흔적이 있다.
일단 엄마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손을 씻게 했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찾아 방구석의 똥을 처리했다. 엄마가 뒤처리를 잘 못해서 옷에 묻었을 것 같아 엄마의 바지와 속옷을 갈아입혔다. 그런데 속옷은 의외로 깨끗하다. 상황으로 짐작해보면 엄마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낯선 공간에 혼자 있고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으니, 결국 방에서 혼자 일을 봤나 보다. 그리고 이걸 남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정도의 인지는 남아있어서, 손으로 집어서 방구석 눈에 띄지 않은 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요양시설의 보호사님이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했다. 화장실에서 자꾸 대변을 변기 뒤나 구석에 숨겨놓으신다고... 변기 사용법을 잊어버리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내가 직접 겪은 게 아니니 그 충격이 실제만큼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 엄마를 보면서 속이 상하기도 하고, '앞으로 더 심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다. 겨우 1박 2일 엄마와 같이 있는데도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하고, 씻지 않으려 하는 엄마 때문에 힘들다고 느꼈다.
그리고 급기야 방에서 똥을 싸고 이걸 숨겨놓은 엄마를 보면서, '아무리 엄마지만 치매환자를 모시고 산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오래 산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게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이제야 알겠다.
사실 난 비위가 약하다. 엄마의 똥을 처리하면서도 토할 것처럼 속이 불편했다. 내 아이의 기저귀를 갈 때 역시 역하고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내 아이라는 책임감으로 이겨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엄마와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일로 자꾸 힘이 드니 '시설로 모셔다 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내가 비위가 약한 건 엄마를 닮아서이다. 동생이 애기였으니 내가 서너 살 즈음이었나 보다. 엄마가 동생이 설사한 기저귀를 빨며 헛구역질을 했던 게 기억난다. 엄마는 나보다 비위가 더 약한데도 네 자식들의 똥기저귀를 빨아 키우셨다. 그런데도 자식인 나는 엄마의 똥 한 번 치우는 일에 온갖 생각이 다 든다. 요양보호시설이 없다면, 과연 나는 엄마를 뒷바라지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