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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Aug 26. 2023

돌봄구걸

우리 애, 아니 엄마 좀 봐주세요. 

엄마의 면회를 다녀왔다. 언니 집에서 온 가족이 모여 엄마랑 하루를 보낸 게 한 달 밖에 안 되었는데 그새 엄마는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 같다. 지난번에는 적절히 대답을 못할지언정 그래도 대화가 되었다. 

"식사하셨나"고 물어보면 "안 먹었다"고 대답을 했고, "지금 어디냐"고 물으면 "집은 아니고, 어른들이랑 잠깐 나와있다"라고 대답했다. 물론 손주나 사위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을 때는 대답하지 못했고, 그럴 때면 살짝 웃는 것으로 상황을 넘기기도 했다. 


이번에 만난 엄마는 혼자만의 세상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 버린 것 같다. 

엄마를 모시고 나와서 식사를 같이 하는데, 엄마는 계속 혼잣말을 하신다. 식당자리에 앉아서도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계속 쳐다보며 "저기 누가 지나간다. 저 사람 저기 아랫집 사위네"하며 중얼거린다. 


"엄마, 아랫집 사위? 그게 누구야? 엄마 아는 사람이야?"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 보려고 하면 의미 없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 있어. 키 크고 곱슬머리고.. 그런 사람 있어. 너희는 몰라. 지난번에 이사 갔다고 안 했나..."

우리에게 대답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생각의 흐름을 말로 표현하느라 앞뒤도 맞지 않고 때로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을 쉴 새 없이 한다. 


식사를 하면서도 눈은 계속 창 밖의 사람을 쫓아 바삐 움직이고, 그러다가 저런 의미 없는 말들을 계속 중얼거린다. 언니와 나는 "엄마, 오늘 정말 산만해. ADHD도 아니고 정신없이 왜 그래?" 하며 엄마에게 농담을 걸었지만, 사실은 치매증상이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음식을 상에 내려놓고 돌아서는 종업원에게 "식사 좀 하고 가시라"며 접대멘트를 날리기도 하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오랜만에 만난 지인처럼 반가워하며 말을 걸어서 처음 본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자식인 우리들을 헷갈리기 시작하였다. 언니를 보고 내 이름을 불렀다가, 다시 누구냐고 물으면 "이쁜 아가씨"라고 대답했다...


식사하고 나서 카페에 가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엄마는 연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혼잣말을 하느라 바쁘다. 오랜만에 엄마 얼굴 볼 생각으로 왔는데, 엄마랑 마주 앉아 같이 보내는 시간이 엄마에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요양원으로 엄마를 모셔다 드리는데 원장님이 상담하자고 한다. 

"아시는 것처럼 어머니가 씻으려 하지를 않아서 저희가 좀 힘들어요. 씻자고 하면 어찌나 화를 내고 몸으로 반항을 하시는지... 오늘은 외출하신다고 해서 옷을 갈아입히려는데 어머니가 또 화를 내면서 요양사 선생님 팔을 물어버리셨어요"


사실 지난번에도 원장님이 걱정스레 "엄마가 씻으려 하지 않으신다"길래, 우리가 엄마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에서 다들 옷 벗고 씻는 분위기면 같이 씻지 않을까 했는데, 엄마는 한사코 옷을 벗으려 하지도 않았다. 옷에 물기라도 묻으면 손으로 털어내고 불안한 듯 목욕탕 안을 빙빙 돌았다. 결국은 목욕을 포기하고 집에 다시 모시고 왔다. 

그런데, 옷 갈아입히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팔을 물어버리다니...  퍼렇게 멍든 선생님의 팔을 보니 죄송하고 속상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연신 사과하는 수밖에...


"저희 직원들이 힘든 건 괜찮아요. 원래 치매가 그런 병이니까 이해할 수 있어요. 근데 사실... 어머니가 다른 입소자 분들을 좀 힘들게 하는 게 문제예요. 어머니가 지금 붕 떠있는 상태인지 밤에 잠을 안 주무셔요. 안 주무시는 건 괜찮은데 요양원 방마다 다 들어가서 주무시는 어른들을 깨우는 통에 저희가 말리느라 힘들었어요.

직원들 힘들게 하는 건 저희가 고생하면 되지만, 다른 어르신들을 힘들게 하면 저희가 모실 수가 없어요"


시설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엄마가 여기서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 마지막 선택지는 요양병원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받아줄지는 미지수다. 


결국 안정제를 써서 암마의 상태를 좀 진정시키기로 했다. 

"안정제를 쓰면 어른들이 상태가 좀 가라앉다 보니 낙상사고가 생길 수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 보호자 분들이 그걸로 저희에게 문제 삼으면 저희는 안정제를 쓸 수 없고 지금 이 상태로는 여기서 모시기가 힘들어요"


엄마의 상태는 우리가 봐도 심하게 불안정했다. 이 상태로는 요양시설은 물론 가족이 돌보더라도 하루 만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였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몸도 건강하다 보니, 반항하는 힘도 세고 요양원을 종일 휘젓고 다니는 데에도 아무런 신체적 장애가 없다. 





당뇨가 없어 아무거나 잘 드실 수 있고, 거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복이라고 생각했다. 크게 아프신 데가 없어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는다고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치매를 그 모든 걸 무너뜨리는 병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는 방법을 아는가. 사람이 물에 빠져 숨을 쉴 수 없으면 자기를 구조하러 온 사람이라는 걸 알더라도 본능적으로 그 사람을 깔고 위로 떠올라 숨을 쉬려하기 때문에 둘 다 위험해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이 잡을 수 없도록 뒤쪽으로 다가가거나, 그 사람이 기진맥진해졌을 때 구조를 해야한다. 우리 엄마도 기운이 좀 빠지면 돌보는 게 수월하지 않을까.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하다는데....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우리 엄마에게 건강한 몸은 돌봄의 어려움만 가중시키는 것 같다. 이제 우리 엄마의 돌봄을 구걸이라도 해야하는 입장에서, 돌보는 사람이 편해지게 엄마의 몸이 조금은 불편한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못된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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